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수락산 편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에 내려 1번 출구를 빠져 나온 시간이 오전 10시30분. 날씨는 잔뜩 찌푸려 한줄기 소나기라도 뿌릴 기세다. 미주 백운아파트를 끼고 돌면 수락산 입구 길이 열린다. 왼쪽으로 은빛식당(02-951-7222), 늘봄(937-8266), 수락산감자탕(930-0346), 고기굽는마을(934-9292) 등이 있고 우측은 포장마차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입구의 등산 안내판에 서서 코스를 살핀다. 제3 등산로(김시습로)를 올라 제4 등산로(천상병산길)로 내려오기로 마음을 정한다. 기사 마감 후 나온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붐비지도 않고 주위가 고요한 게 기분 나이스다.


수락교(水落橋)밑을 흐르는 맑디맑은 시냇물이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앙증맞게 흘러간다. 장락교(長樂橋)와 벽운교(碧雲橋)를 차례로 지나면서 숲체험로로 들어섰다. 왼쪽은 숲해설로로 계곡능선을 이용하여 정상을 가는 길이다.

배드민턴장이 있는 체력단련장을 지나 신선교(神仙橋)를 건너니 각종 나무들이 양쪽에 즐비하게 서 있다. 개암나무 다릅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물푸레나무 국수나무 노린재나무와 생강나무 등이다. 생강나무는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동박나무를 가리킨다. 내친 김에 어디 ‘정선아리랑’ 한 곡 뽑아 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명사십리가 아니라 며는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 삼월이 아니라면 두견새는 왜 우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릿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얼쑤 기분 좋다. 역시 우리 가락이 흥을 돋구는 데는 그저 그만이다.

한 시간 여를 올라가니 어김없이 나타나는 깔딱고개. 이 고개를 정복하면 정상이 불과 1㎞ 남짓 거리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들 힘이 드는 모습이다. 사방이 헐떡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헉헉…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드디어 트이는 시야. 정상 부근 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때마침 불어오는 동서풍의 시원한 바람. 이마에 맺힌 땀을 남김없이 뺏어간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바람과 함께 들이키는 물 한잔, 너무 시원하다.


약 1분 정체 후 나그네 다시 길을 재촉한다. 이곳에서 정상 가는 길이 무척 험하다. 와이어가 없으면 오르기 힘든 코스다. 낑낑대며 오르고 또 오른다. 독수리바위를 지나는데 청설모 한 마리가 마침 식사중이다. 과일껍질을 양손(?)에 잡고 집중하여 먹고 있다. 사진을 찍든 말든 상관없다. 하기야 상관해 본들 초상권침해로 얻을 것도 없을 테니….

다시 올라간다. 정상 턱 아래 철모바위가 웅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옆 공터에는 막걸리를 파는 산상 주막이 길손을 유혹한다. 너무너무 먹고 싶은 탁주 한잔. 아뿔사 오늘 길을 나서면서 지갑을 집에 두고 왔다. 해서 막걸리 한통 사 들고 정상주 즐기려는 생각은 이미 접은 지 오래다. 헌데 왜 또 생각나게 하는 거여. 그것도 이 첩첩산중에서. 미치고 환장하게 시리. 두 눈 딱 감고 정상 앞으로 나아간다.


12시30분 수락산 정상이다. 수락산은 높이 637.7m로 도봉산과 함께 서울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 주말이면 도심에서 몰려온 산악인들로 항상 붐비며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과 함께 서울 근교의 4대 명산으로 불린다. 수락산 정상에서 남쪽에 있는 불암산(佛岩山)으로 능선이 이어지며 동쪽에 수락팔경(옥류폭포, 은류폭포, 금류폭포, 성인봉 영락대, 미륵봉 백운, 향로봉 청풍, 칠성대 기암, 불로정 약수)이라 불리는 금류계곡(金流溪谷)이 있다. 서쪽 비탈면에 쌍암사(雙岩寺)·석림사(石林寺), 남쪽 비탈면에 계림암(鷄林庵)·흥국사(興國寺), 동쪽 비탈면에 내원암(內院庵)이 있고, 내원암의 법당 뒤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2m의 석조미륵입상이 있다.

1996년 시민 휴식공간 확충을 위해 삼림욕장이 조성되었다. 서울의 북쪽 끝에 의정부시와 남양주시를 경계로 하고 있다. 산세가 웅장할 뿐만 아니라 산 전체가 석벽과 암반으로 되어 있어 도처에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젊은 친구에게 사진 한 컷 부탁하고 양껏 폼 잡아본다. 주변 경치 카메라에 담고 다시 철모바위로 내려와 자리 잡는다. 배낭에서 나오는 건 삶은 계란 두 개와 토마토 한 개. 그리고 교통카드 겸용인 신용카드 한 장, 오늘 양식의 전부다. 사전 준비 소홀한 죄로 배고픔을 견딜 수밖에….


하산은 철모바위에서 우측, 제4 등산로 쪽으로 잡았다. 코끼리바위와 하강바위를 거치니 도솔봉(540m)이 나타난다. 주변의 경치가 온통 절경이다. 탱크바위를 뒤로 하고 계속 내려가니 학림사 갈림길이 나온다. 다시 구암약수터를 지나 노원골약수터에 다다른다. 인근 계곡물에 등산객들이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내려가 양말 벗고 물에 발 담근다. 시원한 기분이 온 몸을 엄습하면서 피로가 싹 가신다. 그 옛날 지리산 천왕봉 등반 후 하산 길에 백무동 계곡에서 발 담굴 때도 이렇게 시원했었지. 그게 아마 십 수 년 전이지…. 세월이 하수상하여 오락가락 하누나.

산에서 내려와 천상병 문화마당에 들어서니 고인(故人)의 시(詩)들로 가득하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출생한 천상병은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 여사가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 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내기도 했다.

길가에 먹거리 집들이 즐비하다. 김삿갓 막국수(932-5917), 정읍한우마을(3392-9292), 황금오리 참숯구이(951-5171), 진할매 칼국수(951-1507), 제주바당(3391-8844) 등등.

눈에 들어오는 집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수락꼼장어화로구이’집이다. 막걸리 한 통에 꼼장어 한접시(1만원) 주문하여 피로를 삼킨다. 마지막 잔을 다 비울 즈음 평소 술 잘 사는 우리 데스크에게서 문자 들어온다. “형님, 막걸리 한 사발 하게 사무실로 들어오슈~.” 즉시 문자 날린다. “바쁜 사람 오라 가라야, 어디 보자…무조건 들어갈게!!”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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