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동두천 소요산

종로3가에서 1호선으로 갈아 탄 전철은 1시간20여분을 더 달린 후 동두천역에서 멈춘다.

소요산까지 다니는 전철이 뜸한 관계로 동두천역까지 가서 전곡행 버스에 환승한 후 소요산 입구에서 내렸다. 여기서 일주문까지는 약 2㎞ 남짓. 아침부터 날씨는 흐렸다 개였다를 반복하고 길가에 늘어선 식당들은 한가롭기만 하다.

소요산관리소에 들어서니 나들이 나온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요석공원에서 쉬고 있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의 부인이었던 요석공주와 인연이 깊은데서 이름지어진 요석공원. 신라 29대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는 아버지인 왕의 주선으로 원효를 만나, 후에 대유학자인 설총을 낳았다. 요석공주를 만난 뒤 원효는 파계승이 되어 각지를 돌아다니다 이곳 소요산 원효대에 머물면서 다시 수행에 전념한다. 이때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으로 와 조그만 별궁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원효가 수도하는 원효대를 향해 예배를 올렸는데 그 봉우리가 공주봉이다.

잠시 후 매표소를 지나는데 ‘소요산 관광지는 국립공원이 아니라 자재암(自在庵)의 개인 사유지이므로 표를 끊어 입장하세요’란 현수막이 붙어있다. 그 옆에는 동두천 시민은 신분증을 보여주고 무료입장권을 받아 가라는 안내문도 있다. 얼마 전 시민들이 소송하여 이긴 덕분에 동두천시민에 한해서만 무료통과다. 이래서 타향살이 서럽다는 말이 나왔는가?



매표소를 지나니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단풍터널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상쾌함을 제공한다. 소요산 관광지도 앞에서 오늘의 산행코스를 점검한다. 1코스는 일주문에서 자재암-전망대-하백운대-중백운대를 거쳐 포천 가는 갈림길에서 선녀탕 방면으로 내려와 다시 자재암으로 돌아오는 1시간30분 길.

전날 꽤나 많이 마신 막걸리의 취기가 아직도 남아 몸 상태가 영 좋지 않다. 하지만 주봉인 의상대를 안오르면 독자님들께 면목이 서지 않을 것 같아 4시간 여 소요되는 종주코스를 택한다. 하기야 종주에 4시간 정도는 그리 긴 코스가 아니다.

중백운대에서 선녀탕으로 꺾지 않고 상백운대를 거쳐 칼바위 암릉-칼바위 정상-밧줄길-나한대-의상대-공주봉-구절터-원효폭포-속리교-일주문으로 오는 길이다. 명색이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답다하여 경기의 소금강이라 자랑하는 소요산인데 두루두루 살펴보고 가야지, 이 한 몸 안위를 챙겨서야 되겠는가.

일주문에 들어선 시간이 오전 11시30분. 길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쉴 새 없이 흘러간다. 바라보는 마음 또한 상큼해진다. 잠시 후 나타나는 속리교 옆 원효폭포는 시원한 물줄기를 연신 뿜어내고 있다. 이어 자재암 가기 직전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은 선녀탕, 공주봉을 질러가는 길이다.



자재암에 들어서니 주변 공사로 인해 집중이 안되고 마음이 어수선해 진다. 조선 세조 10년(1464) 간경도감에 의해 발간된 ‘반야바라밀다 심경약소 언해본(보물 제1211호)’과 대웅전, 보타전(향토유적 제8호)을 소장하고 있는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고려 광종 25년에 왕명으로 각규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6.25때 폐허가 되었다가 그 후에 대웅전과 요사, 포교당, 원효대, 삼성각을 건립했다.

대웅전 앞 계곡은 옥류폭포에서 쏟아지는 물대포를 맞고 연신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요즘 어느 정당의 내분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왜? 인간은 태생이 그런 것인지, 만나서 싸우고 시기하고 험담하고 반목하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나….



정녕 이 시대 광풍제월(光風霽月. 빛나는 바람과 맑은 달. 가슴 속에 맑은 인품을 지닌 사람을 지칭함)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자재암을 지나 하백운대 가는 길은 깎아지른 암벽길이다. 천신만고 끝에 하백운대를 거쳐 중백운대에 도착하니 온 몸이 땀범벅이다. 우선 물부터 찾아 마신다. 물통 두 개를 준비해 왔으니 제법 많은 양을 들이킨다. 휴∼ 이제야 정신이 나는 게 숙취는 바야흐로 완전소멸. 무슨 바퀴벌레 소멸인가…그러게 대충 마시지!!! 사실 기자는 술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데 주변이 그냥 두지를 않는다(이 대목에서 둘 중 하나는 거짓이다.). 전날은 정말이지 타의에 의해 자의가 술독에 기어 들어갔었다. 해장하실 분들은 배낭 매고 산을 오르는 게 특효중의 특효다. 괜히 술로서 술을 달랜다고 아침에 해장술 드시는 분들 나중에 큰일난다.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중백운대 산기슭에서 한 쌍의 중년부부가 오순도순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다정다감해 보인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시장기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벌써 정오를 지나 한 시 가까이 되었다. 상백운대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 재촉한다. 중백운대를 조금 지나면 포천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선녀탕 가는 소요산 제1코스다. 상백운대 못 미쳐 등산로 옆 나무숲 속에서 한 부부가 뭔가를 열심히 따고 있다. 가까이서 확인하니 산뽕나무 잎이다. 약재로 쓰이는 나무니 몸에 좋을 테지.

드디어 상백운대에 도착했다. 한 시가 조금 지난 시간, 서너 팀이 자리 잡고 식사중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식사할 채비를 한다. 삶은 계란 3개, 토마토 2개가 오늘 중식의 총 메뉴다. 아래에서 김밥을 사 올까 생각하다 그냥 왔다. 탕 종류를 먹고 싶은데 마침 한우 소머리국밥집이 눈에 뜨이기에 찜 해놓고 온 상태다. 그나저나 배는 고프고 갈 길은 머니 가히 식소사번(食少事煩)이란 표현이 딱이다. 생기는 것도 없이 헛되이 분주해 고달프다는 말이다.



10여 분의 휴식을 취하고 제2봉인 나한대를 향한다. 이어서 나타나는 칼바위 능선의 울퉁불퉁한 암릉들이 등산화 밑창을 뚫을 듯이 조여 온다. 자칫 맥 놓고 가다간 넘어져서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있는 길이다. 조심조심 지나간다.

산 아래 군부대에선 사격연습이 한창인지 총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하필 이럴 때 공포분위기 조성하고 난리야, 기분 찜찜하게 시리….

오후 2시경 나한대를 정복하고 계속해서 10여분 후 주봉인 의상대에 다다랐다. 먼저 온 등산객에게 기념사진 부탁하고 포즈를 잡아 본다. 땀에 찌들고 허기진 모습에 영 표정이 안 잡힌다. 자세를 고치고 다시 폼 잡아 봐도 아니다. 에이~ 아무렴 어때, 여기서 부킹할 것도 아닌데. 공주봉 가는 길이 한없이 내리막이다. 제일 높은 의상대에서 가는 길이다보니 예측은 했지만 너무 내려간다. 이러다 다시 오르막이 나오겠지?

아니나 다를까 약 20여분 후 거의 직각에 가까운 절벽이 눈을 어지럽힌다. 땅 속에 박힌 스테인레스 봉을 잡고 밧줄 당기듯 낑낑대며 위로 오른다. 이제껏 남은 체력을 완전히 소진시키는 극기 훈련 마무리 단계다.

드디어 공주봉(526M)정상. 좀 전의 힘든 표정은 어느새 미소로 변했다. 주변이 의외로 넓다. 헬기장도 갖춰져 있고, 꼭 평원의 목장 같다.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전망쉼터를 지나 구절터로 내려가는 길이 데크로 잘 만들어져 있다.

오후 3시30분, 요석공원 내 ‘소요산 작은성(031-867-1551)’에서 한우소머리국밥(6000원)과 포천동동주(6000원)를 주문하고 오늘 등반을 마무리한다.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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