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전광훈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북한산 삼천리골

오늘 산행의 출발점은 북한산 삼천리 골이다. 버스(송추행 704번, 의정부행 34번)를 타고 삼천리 골 입구에서 내리면 제56보병사단 앞 입곡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하면 북한산성 유원지와 송추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삼천사, 연신내역 방향이다. 입곡삼거리에서 진관천교를 건너 삼천사까지는 약 40여분이 소요된다.

은평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 지도가 완전히 바뀐 느낌이다. 아파트 숲 사이로 새로운 길들이 생겨 예전과는 딴판이라 잠깐 당황스럽다. 삼천사를 향해 아스팔트 도로를 쭉 가다 보면 왼쪽에 진관천교가 보이는데 이 다리를 건너야 비로소 산길에 접어든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난 주말 낮 시간, 유원지 양쪽의 식당들은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

꿩집(381-0140) 인수봉가든(381-9270) 사슴집(381-6688) 토속정(381-9506) 돼지집(381-3800)…. 주된 메뉴는 옻닭, 토종닭, 오리로스, 묵사발, 유황오리 등이다. 시장기가 느껴지니 괜히 발걸음 빨라진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삼천사 절 입구에 있는 약수터에서 우선 물로 배를 채운다. 저 멀리 의상봉이 삼천사를 바라보며 위용을 자랑한다. 경내에 들어서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현재 ‘삼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1481년(조선 성종 12) 편찬된 ‘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한때는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따오지 않았나 추측된다.

건물로는 대웅보전과 산령각·선실·요사채·인덕원복지관 등이 있다. 산령각은 정면 2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다른 사찰의 산신각보다 규모가 커서 북한산의 산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이 절을 ‘산신이 보좌를 튼 절’이라고도 부른다.

유물로는 대웅전 위쪽에 있는 마애석가여래입상이 보물 제657호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양각과 음각을 섞어 조각한 독특한 작품이다. 전체 높이는 3m이고, 불상 높이는 2.6m이다. 그밖에 경내에는 대형 석조(石槽)와 대지국사(大智國師) 목암찬영(木庵粲英:1328∼1390)의 비명(碑銘)이 남아 있다.

삼천사를 뒤로하고 무거운 발걸음 옮긴다. 잠시 후 눈앞에 나타나는 푯말. 한쪽은 비봉 3㎞ -사모바위 2.8㎞, 다른 쪽은 문수봉 2.9㎞-부왕동암문 2.1㎞이다. 어디로 갈까나? 문수봉으로 가면 부왕동암문과 문수봉 중간에 나월봉과 나한봉 그리고 청수동암문을 거쳐야 하는 코스다.



평소 암봉은 되도록 우회하는 기자인지라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비봉을 향한다. 불광동 구기동 쪽에서 오르는 비봉과는 또 다른 묘미가 이곳 북쪽코스에 있다고 애써 자위해 본다. 사실 이 코스는 서울 도심에서 접근성이 떨어져 등산객이 크게 붐비는 곳이 아닌 관계로 비교적 한적하고 주변이 잘 보존되어 있다. 최소한 산에서 인파에 시달리는 일은 피할 수 있다.

최근 서울시민과 함께 살아온 북한산이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다. 1000만 명 등산객 시대를 맞아 무분별한 샛길 산행으로 600여 개로 조각난 북한산 동·식물의 장벽이다. 거미줄을 방불케 하는 샛길로 인해 더 이상 다람쥐도, 산새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수많은 탐방객들의 무질서는 공원자원이 훼손되고 야생동물의 서식처가 파괴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녹색허파인 북한산국립공원을 살려야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측은 되도록 ‘혼잡코스’를 피한 ‘추천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도봉산 주 등산로(19번 종점)를 대신하여 ‘원도봉코스(1호선 망월사역)’, 망월사역-망월사-포대산불감시초소-범골능선-안골통제소, ‘회룡코스(1호선 회룡역)’, 회룡탐방지원센터(회룡역)-회룡폭포-회룡골-사패산-안골통제소, ‘우이코스(4호선 수유역 3번출구에서 120번 종점), 우이남능선-우이암 등이다.



북한산성-백운대의 주 등산로는 ‘삼천사 코스(3호선 구파발역에서 704번 버스)’로 삼천사로터리-삼천사계곡-사모바위-응봉능선-삼천사-삼천사탐방지원센터로 현재 기자가 사모바위를 가고 있는 이 코스다. 사람은 추천해 줄 때 못 이기는 체 응해 주면 대우 받고 사랑 받는다. 또 다른 곳은 구기계곡 주 등산로 ‘향림당코스(4호선 불광역에서 7022,7211번 구기터널 입구하차)’, 구기터널통제소(구기터널입구)-비봉-향로봉-향림당-선림통제소(독바위역)를 내려오는 코스다. 북한산국립공원을 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두발 벗고 나서야 할 때다. 상수리나무 흑느릅나무 개옻나무 등이 위치를 바꿔가며 주변을 장식한다. 계곡물이 오른쪽에서 흘러가는가 하면 어느새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흘러간다. 등산로를 따라 좌우를 반복한다. 내려오는 산행인은 많으나 오르는 사람은 불과 몇 안된다. 공기가 너무 상큼하다. 나무그늘 아래 바위에 걸터앉아 커피 한잔 청한다. 고소한 커피 향에 떠오르는 얼굴. 얼마 전 서거한 전(前) 대통령. 그렇게 떠나 갈 거면 차라리 삿갓처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살다 가면 될 것을….

대나무 시 (金笠)

此竹彼竹 化去竹(차죽피죽 화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風打之竹 浪打竹(풍타지죽 낭타죽)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 生此竹(반반죽죽 생차죽)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是是非非 付彼竹(시시비비 부피죽)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賓客接待 家勢竹(빈객접대 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 歲月竹(시정매매 세월죽) 시장에서 사고팔기는 세월대로

萬事不如 吾心竹(만사불여 오심죽)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然然然世 過然竹(연연연세 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한참을 올라가니 사모바위를 앞둔 데크가 나온다. 이곳만 올라서면 비봉능선이다. 왼쪽은 승가봉, 문수봉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비봉을 400M 남긴 지점이다. 사모바위 꼭대기에서 젊은 남녀가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다. 가까이 비봉이 있다. 그 너머 족두리봉도 보인다. 뒤돌아 승가․문수․보현봉이 미소짓고, 노적봉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손짓한다. 나월봉 나한봉 상원봉이 눈을 흘긴다.

오후 3시, 사모바위 부근에서 때늦은 점심을 챙긴다. 민물게장, 삶은 계란, 토마토, 부추김치, 직접 만든 충무김밥, 그리고 막걸리…. 초여름 하늘은 맑고 더 푸르다.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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