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파주 감악산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행 30번 시외버스 안은 서울 나들이 왔다 돌아가는 현지 주민들과 등산객들이 어우러져 시끌벅적하다. 집을 나설 때 흩날리던 가랑비는 약간 주춤하고….
일반적으로 `경기 5악` 하면 개성의 송악, 서울 관악, 파주의 감악, 가평 화악, 가평과 포천의 운악산을 일컫는다.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중심으로 북악, 송악, 관악, 삼악, 감악산을 경기 5악으로 불렀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경기5악의 한 축인 감악산(紺嶽山 675m)을 찾았다.


후배와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오전 9시. 금천구에서 오는 후배는 일찍부터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일요일 아침의 시외버스터미널은 각지에서 몰려든 등산객들로 시골장터를 방불케 한다. 은평 뉴타운을 지나면서 통일로로 접어든 버스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장곡검문소를 지나 순식간에 금촌을 넘어선다. 차창 밖에는 농부들이 고개를 숙인 채 모내기에 열중이고, 어디서인가 날아온 백조 한 마리가 개울에서 한가히 노닐고 있다. 모처럼 맛보는 시골의 정경이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은평구 불광동에서 적성면까지는 약 1시간40분이 소요되며, 적성 종점에서 의정부와 적성을 오가는 25번 버스를 갈아타고 설마리 주차장의 휴게소 앞이나, 한 정류장 더 가 범륜사 입구에서 내리면 감악산 등산로 초입이다. 의정부에서 올 때는 25번 버스를 타고 범륜사 입구에 내리면 된다. 의정부에서 약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양주군 남면, 연천군 전곡면에 걸쳐있는 감악산은 서울 근교이긴 하나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아 서울의 여타 산보다 등산객이 덜 붐빈다.
 

#등산로 입구

오전 11시 정각에 설마리 주차장 강원휴게소에서 내렸다. 계곡산장(031-959-3841)을 끼고 들어서니 조그마한 산장입구 다리가 나온다. 계곡물을 건너는 다리 너머에는 회사에서 단체로 야유회를 나온 무리들이 4인 한 팀이 되어 족구시합에 한창이다. 네 명이 뛰어 다니기엔 반쪽 코트가 너무 좁게 보인다.

지난 주말 <위클리서울> 기자들도 서울근교의 한 장소에서 족구시합을 했었다. 그날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완전히 생떼와의 전쟁이었다. 신입직원 환영회를 겸한 MT자리였는데 편이 갈린 상대팀에서 막무가내 억지를 부리는 통에, 경기는 둘째 치고 우기는 것 바로 잡느라 목이 다 쉬었던 하루였다. 그 상대팀 수장이 누구였는가는 굳이 설명이 없어도 짐작이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입구의 등산로 안내 푯말

족구시합 후 가진 미니축구 게임은 억수같이 내리는 장대비 속에서 사투를 벌인 그 날의 압권이었다. 물론 승부는 파인플레이를 펼친 우리 팀이 이겼다. 내기시합이었는데 지금껏 이행을 않고 있다. 추후 괄목할만한 결과를 기대해본다.

아침에 비가 왔던 까닭에 등산로 주변이 한결 시원하다. 나무그늘 사이로 30여 분을 오르니 첫 푯말이 나온다. 까치봉 1.4㎞, 정상 2.7㎞다. 어느새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후배가 배낭에서 오가피 달인 물을 꺼내 권한다. 꽤 고가의 오가피 분말을 구입해 그중 소량을 정수기물에다 혼합시킨 것인데, 피로회복에 좋다고 해서 자주 음용한단다. 우리 후배도 젊은 시절 신림동 고시원에서 수년간 머리 싸매고 씨름하다 중도에 하차, 일산의 한 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한 이력이 있다. 지난 대선 때는 열심히 뛰어다녔으나 실패한 쪽 캠프여서 울분을 삼키기도 했다. 지금은 국회 쪽에서 위탁해오는 연설문 작성이나 기타 일로 소일하고 있는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남자로 태어나서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 해 보는 것도 별로 나쁘지는 않다. 그냥 후회하는 것 보다 한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으니까.

오가피물 두 잔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다시 산을 오른다. 매표소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뒤로하고 정오 무렵 까치봉 아래 전망대에 당도했다. 여기저기 나무벤치를 설치하여 쉼터를 마련해 준다. 또다시 오가피물 한잔 들이킨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공사현장...파헤쳐야지 답인가??

까치봉에 설치돼 있는 안내표지판에는 범륜사가 법륜사로 오기되어 있다. 스님들 보시면 또 노하실 텐데…가뜩이나 종교탄압 문제로 현 정부에 각을 세우고 있는 터라 이 높은 곳(?)까지 불똥이 튈까 염려스럽다. `흑우생백독(黑牛生白犢)`이란 말이 생각난다.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았다는 말로, 재앙이 복이 되기도 하고 복이 재앙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사람팔자 새옹지마라…높은 곳에 계신 양반들 부디 낮은 곳의 사람들 마음 헤아려주시기를….


#감악산 산그리메

12시30분, 감악산 정상이다. TRS이동중계국의 거대한 송신탑이 하늘 높이 솟아있고 군 초소에선 초병 2명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예전에 보지 못한 광경이다.


#까치봉


#멀리 정상이 보인다.


#정상 아래 쉼터

초소 옆 철조망 끝 무렵에 `신라고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빗돌대왕비 설인귀사적비라고도 한다. 서울의 모 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 비를 학계에서는, 비의 양식이나 건립 추정연대 지형적 조건 등으로 보아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로 추정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이유로는 비의 형식이 북한산비(北漢山碑)의 전체적인 외형과 흡사하고, 특히 기단(基壇)의 경우, 자연암반에 축을 형성해 건립한 양식이 똑같으며, 크기는 감악산비가 높이 170cm, 두께 19cm, 너비 78cm인 데 비해 북한산비는 높이 155cm, 두께 20cm, 너비 71cm로 거의 비슷한 크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당나라 장수로 이 땅에 와서 신라를 도왔던 장수 설인귀(613~682) 비로 보는 사람들은 설인귀가 이곳 사람인데도 외국에 가서 출세를 했고 그의 제사가 정상에서 모셔졌다는 것을 들어 설인귀의 비로 본다고 한다.


#정상. 식사를 하는 등산객들


#신라고비에서 한 컷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지지(大東地志) 적성조(積城條)`에 감악산단(紺岳山壇)을 `상유고비(上有古碑)`라 기록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발간된 `적성군읍지(積城郡邑志)`에도 그 소재를 밝히면서 명문(銘文)의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자가 마멸되어 없어졌으므로 고증할 수 없는 몰자비(沒字碑)이다. 정상은 넓은 공터로 되어 있다. 동쪽의 산지는 멀고 서쪽에 파주의 파평산 정도가 지평선을 흩트리고 있을 뿐이다. 남으로는 양주군 남면의 준평원지대 너머로 도봉산과 수락산이 보이고 가까이는 불곡산의 2개 암봉의 모습이 또렷하다. 감악산은 무엇보다 조망이 확 트여 시원하다. 오늘은 흐릿한 날씨 탓에 선명성이 떨어진다. 맑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북한산이 보인다.


#장군봉

감악산은 예나 지금이나 전략적 요충지라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파주군 적성면과 감악산 일대는 그 뛰어난 전략적 가치 때문에 삼국시대 때 뺏고 뺏기는 요충지였다. 그 사실은 이곳에 성터가 발견되었다는 보고 등으로 이미 웬만큼은 다 알려진 상태다. 서북쪽 능선에 올라서서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가다 북쪽을 바라보면 임진강과 강 건너편 벌판이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어느 편이든 감악산을 점령하고 있다면 임진강 하류 유역의 광활한 평야지대는 감악산 주둔군의 장악 하에 들어갈 게 틀림없음을 느끼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기자가 근무할 당시(사단수색대)도 6.25동란 후 북한 김일성이 중서부의 고광산과 감악산이 수중에서 떨어져 나간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었다.


#임꺽정봉

감악산 정상의 넓은 공간 터는 북한산의 사모바위 터와 흡사하다. 모두들 식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도 여기서 자리 편다. 이동막걸리(1리터), 개맛살, 호떡빵, 삶은 계란, 황도캔 등으로 간식이 차려진다. 옆에 우뚝 서 있는 등산안내표지판을 보면서 오늘 산행코스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휴게소주차장-운계능선-까치봉-감악산 정상-임꺽정봉-장군봉-만남의 숲- 범륜사-운계폭포까지다. 그런 뒤 설마리 버스정류소-적성터미널-불광동터미널로 돌아오는 교통편을 이용하면 하루일과 끝이다.


#멀리 신암저수지가 흐릿하게 보인다.


#감악산 등산로

정상에 설치된 데크를 가볍게 내려 온 우리 후배, 장군봉 가는 오르막길에서 주춤한다. 방금 마신 막걸리가 머리위로 올라오나 보다. 그러면 머리 밖으로 날려 버리면 될 텐데…. 그래서 경험보다 더 값진 교훈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어 험, 큰 기침소리에 낑낑대며 뒤따라 온다. 계속하여 임꺽정봉에 올라서니 산 아래 저 멀리 신암저수지가 뿌옇게 보인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후배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만남의 숲에는 청춘남녀가 등받이 벤치에 나란히 누워 휴식을 즐기고 있다.


#범륜사 대웅전

양 옆 계곡에는 물에 발 담근 여인들의 수다소리가 계곡물 따라 정처 없이 떠내려간다. 범륜사 입구 나무그늘아래 왠 아줌마들의 고스톱판. 두 패로 나눠 정신없이 화투장 두들긴다. 고달픈 가정사 잊고 이 정도 잡기(?)는 부처님도 오케이… 쓰리 고.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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