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사주겠다구요? 그래 까짓거 또 걸어보지 뭐!
신발 사주겠다구요? 그래 까짓거 또 걸어보지 뭐!
  • 승인 2009.08.2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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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자> 아빠 그리고 수빈이와의 걷기여행-1회

나는 사고 싶은 게 항상 하나씩은 있다. 이번엔 운동화가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요즘 애들이 많이 신는 브랜드에서 예쁜 신상품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갖고 있는 신발들은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새 여간 찜찜한 게 아니었다. 찜 해놨던 신발을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했는데 처음엔 항상 하던 말을 하셨다. "네 용돈으로 사. 용돈 저축해서 그런 데 쓰라니까 어디다 쓰고 사달라고 하니?"라며…. 엄마께도 말해 봤지만 "됐어, 신발 산지 얼마나 됐다고…"라며 딱 잘라버리셨다.

하지만 거기에서 포기하면 천하의 정다은이 아니지…. 엄마는 너무나도 깐깐하셨기에 좀더 쿨하다고 생각된 아빠께 졸랐다. 끝내 아빠의 말씀 "그래 사줄게. 하지만 이번 여름방학에도 시골 걸어서 내려가는 거다."

아, 이걸 어쩐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사고 싶은 건 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그렇다고 낭비벽이 심하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은 알아주시길….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는데 그 정도의 대가는 치러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바로 대답했다. 걷기 여행에 동참하겠다고….


#이번에 둘이 아니라 셋이랍니다. 왼쪽이 사촌동생 수빈이^^

이번엔 아빠와 나 둘만의 여행이 아니었다. 아주 큰 활약을 보여줄 멤버가 포함됐다. 바로 사촌동생 수빈이다. 수빈이는 큰아빠(수빈이 아빠)가얘기를 꺼냈을 때 당연히 가기 싫다고 몇 번이고 발뺌을 했던 상태. 게다가 걷기여행을 하기엔 아직 어린 초등학교 5학년인데다가 참을성이 없어서(장난^^) 많이 칭얼댈 거라고 생각했다. 수빈이는 우리와 가까이에서 살고 자주 만나다 보니 나와는 마치 친자매 같다.

한편으론 수빈이를 데리고 2박3일 동안 걸어간다는 게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쩌면 수빈이 덕에 걷다가 버스를 탈 수 있는 행운도 생길 것 같고, 좀 덜 걸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지 않는 길. 부안 새만금 전시관 부근에서

큰아빠는 집요하게 수빈이에게 아빠와 걷기여행을 하라고 종용했다. 아빠도 허락! 큰엄마께선 가기 전날 만약 걷다가 수빈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호되게 혼을 내도 된다고 내게 얘기하셨다.(난 혼내고 그러는 성격은 아니지만^^;)

드디어 D-데이. 아침 일찍 수빈이가 배낭을 메고 우리 집으로 왔다. 그 날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했다. 다행히 더위 걱정은 한시름 놓았다. 아빠와 나도 준비를 다하고 큰 배낭을 짊어진 채 엄마와 작별 인사를 했다.

동네 근처 회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랜만에 무거운 배낭을 좀 메고 있었다고 그새 힘이 들었다. 우린 터미널 안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빠가 전북 부안으로 가는 표를 끊어왔다. 버스 출발시간은 10시 20분. 우린 시간이 되자 그 사이 사놓았던 과자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서 짐을 풀은 뒤 도착할 때까지 몇 시간은 걸린다는 소리에 부족한 잠을 청했다.


#저 멀리 보이는 건 새만금방조제. 비가 와서 둘째날 찍은 거랍니다.

우리가 부안터미널에 도착할 무렵 창밖을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10분. 집에서 챙겨온 우산을 꺼내 들고 잠시 터미널 안에 머물렀다. 부안은 재작년 걷기여행(그땐 진짜 죽음이었다) 때 들렀던 곳이어서 터미널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우린 벽에 걸려있는 큰 지도에서 우리가 갈 코스를 살펴보았다. 이번엔 해변 쪽을 따라서 전과는 다르게 무작정 걷지는 않을 것이라고 아빠가 얘기하셨다. 바다는 물론이고 구경할 건 충분히 구경하면서 갈 것이라고 했다. 물론 여기엔 수빈이의 동행이 많이 작용을 했다.

터미널을 빠져나와서 무거운 마음과 몸을 이끌고 오늘의 목적지인 새만금전시관 방향을 향해 출발했다. 우선 시내를 계속해서 걷다가 보니 배가 고파왔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 지났다. 슈퍼마켓에서 물과 라면을 사서 끓여먹기로 했다. 몇몇 슈퍼를 지나쳤지만 미리 사봤자 짐만 될 것이기에 좀 더 가다가 라면 끓여먹기 좋은 장소가 나오면 그 때 사자고 했다.


#걷다가 쉬다가^^ 폼이 그럴싸해보이죠...

잠시 뒤 시내를 벗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 슈퍼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할 수없이 우린 더 걸어야 했다. 큰 배낭을 짊어진데다 우산까지 든 채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다시 조그마한 마을이 나왔다. 동네 주민에게 물으니 우리가 찾는 슈퍼마켓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는 정반대 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아빠는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하고는 혼자서 갔다 오신다고 했다. 비도 피할 겸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그 때까지 수빈이가 참으로 많이 칭얼거리고 짜증을 냈다. 게다가 가방이 무겁다고 짜증을 내기까지…. 아빠가 "들어줄까"라고 얘기를 하자 마자 냉큼 들어달라고 하기도 했다. 내 성격이 외강내유(^^)형이라서 수빈이의 그런 행동과 말을 보고 있노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한마디 따끔하게 하고 말았다. 화를 낸 것까지는 아니었다.


#바닷가..그리고 불쌍한 두 영혼==;

그날따라 우리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혼자 슈퍼에 가는 아빠의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아빠도 힘이 드시니까 자꾸 칭얼대지 말고 참고 가자고, 작은 아빠 짐은 정말 무겁다고, 그래도 우리 힘들까봐 혼자 슈퍼마켓에 가시는 거라고, 그러니 제발 짜증내지 말자고 했다. 수빈이는 알겠다고 했다. 평소에 나를 좋아하는 수빈이라서 내 말은 잘 따를 거라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오셨다. 비를 피해 라면 끓일 자리를 찾기 위해 다시 걸어야 했다. 그런데 얼마 안가 비를 피할 수 있는 정자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에 평상이 놓여 있었다. 게다가 그 바로 앞의 슈퍼까지…. 먼 곳의 슈퍼마켓까지 다녀온 아빠는 절규(^^)했다.

우린 가방에서 코펠과 버너를 꺼내서 사온 물을 붓고 라면을 끓였다. 그러고 있는데 그 동네에 사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몇 분 나오셔서 우리에게 말을 붙였다.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갔다.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라면은 당연히 꿀맛! 다 먹고 난 뒤엔 주변을 깨끗이 치웠다.

다시 출발! 비는 더욱 많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좀 전에 얘기한 것도 있고 하니 이번엔 수빈이가 좀 잘 참고 가겠지 생각했다. 내가 선두에서 갔다. 하지만 가다가 얼마 안돼서 또 칭얼거리는 수빈. 결국 또 아빠가 수빈이의 가방을 같이 메야 했다. 그런 수빈이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지난 2년간 두 번씩이나 걷기 여행을 하면서 이것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메고도 아빠한테 들어달라는 말을 한 마디도 안했는데….  무거운 짐 때문에 어깨가 짓눌리다보니 피가 통하지 않아 손가락이 퉁퉁 부었을 때 겨우 10분 정도 아빠가 들어준 것 빼고는 말이다. 하지만 수빈이는 너무 공주처럼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내심도 없는데다 예의에도 어긋난다는 생각. 솔직히 아무리 친한 작은아빠와 조카 사이라 해도 친딸인 나도 안 그러는데 수빈이가 그러는 게 신경이 쓰였다. 결국 나는 계속 수빈이에게 좀 참고, 가방도 가급적이면 직접 들고 가라고 얘기했다.


#논둑길도 걷고...

수빈이가 그렇게 칭얼거리면서 도착한 부안군 하서면 소재지. 길가에 슈퍼마켓이 보였다. 우린 그 바로 앞 평상에 앉아 짐을 풀어놓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으면서 또 다시 수빈이에게 따끔하게 충고를 했다.

"이제 오늘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까지는 네가 들어. 알았지? 아니면 뭐하러 걷기 여행을 한다고 그랬어. 차라리 학원을 가지. 이렇게 힘들 거 알고 있었잖아. 힘내고, 오늘은 작은 아빠가 거의 다 들어주셨으니까 내일은 들어달라고 하면 안돼!"

하지만 수빈이는 대답은 안하고 대충 넘어갔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뒤 우린 다시 길을 나섰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오히려 처음 출발 때보다 더 거세진 느낌. 도로를 따라 열심히 걷고 있는데 역시 정수빈! 한순간 뒤를 돌아보니 아빠 앞에 메어있는 수빈이 가방. 비는 계속 왔고 운동화는 흙탕물로 범벅이 됐다. 게다가 운동화도 상태가 좋지 않아 계속 걷다보니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수빈이의 가방을 메고 힘들게 오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차마 짜증을 내거나 칭얼댈 수는 없었다.


#해안도로도 걷고...

계속 차도 옆 좁은 라인을 따라 걷다가 드디어 나온 마지막 휴식지. 편의점이었다. 우리의 도착 예정지인 새만금전시관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그 곳에서 과자와 빵, 우유까지 먹으며 쉬었다. 그리고 잘 곳도 정했다. 새만금전시관 근처에 변산온천이 있다는 편의점 아주머니의 말을 따라 그 쪽에서 묵기로 했다. 가기 전, 다시 한 번 수빈이에게 말했다. "목적지까지 정말 얼마 안되니까 이번엔 네가 들어"라고….

모두 짐을 메고 첫날의 마지막 구간 걷기에 돌입했다. 비는 역시 계속 왔고 그래서인지 해도 금방 졌다. 금방이라고 했던 변산온천은 한참을 걸어도 나오질 않고, 수빈이는 계속 짜증을 내고, 발은 아파 오고…. 변산온천으로 들어가는 갈래길에 들어섰을 땐 정말 힘이 들었다. 살짝 짜증을 냈다. 그 때는 아빠도 힘이 들었는지 여태 잘 왔는데 딱 한번 그것도 살짝 칭얼거린 나에게 짜증을 내셨다.(수빈이한텐 안 그래놓고ㅜㅜ.)


#새만금전시관...

속상한 마음으로 잘 곳을 찾아보는 데 깜깜한 산중에 우리가 오늘 하룻밤 묵을 곳은 단 한 곳, 변산온천 뿐이었다. 게다가 그곳의 분위기는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귀곡산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우 으스스하면서도 또 비싸 보이기까지 했다. 편의점 아주머니의 얘기대로라면 이 부근에 민박 등 잘 곳이 많다는 것이었는데…. 결국 수빈이의 극도의 칭얼거림에 아빠도 지치셨는지 4만6000원이란 거금을 주고 하룻밤을 묵게 됐다. 나는 돈을 너무 낭비하는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갈 곳이 아무 곳도 없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이끌려 들어간 방은 정말 학교 수련회 때의 그것보다도 상태가 훨씬 좋지 않았다. 벽은 습기가 차서 색이 변한데다 방은 매우 작아 마치 감옥을 연상케 했다. 정말 만원이라 해도 아까운 상태였다. 나는 신발을 벗지 않은 채 방 입구에 서서 그냥 다른 곳으로 가자고 그랬다. 결국 아빠가 폭발하셨다. "너희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갈 곳이 어디 있느냐"는 게 폭발의 요지. 난 그저 우리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는데…갑자기 설움이 몰려왔다. 속상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울었다. 나도 아프고 무겁고 화나고 짜증나고 칭얼거리고 싶었는데 아빠 생각해서 참았는데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 게 너무 야속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아빠가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밥은 먹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빵과 과자를 먹은 터라 배도 불렀고, 먹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끝내 아빠의 강력한 명령에 못이겨 1층 식당에 내려가 닭볶음탕을 먹었다. 아빠는 소주까지 한 병을 시켜서 드셨지만 나는 고기도 조금 뜯다 말았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고 다음 날 코스를 정한 뒤 잠에 들었다. 무척 피곤한 하루였다. 어찌됐든 내일은 수빈이가 제발 잘 참아주어야 할 터인데….

정다은 기자 <정다은님은 경희여중 3학년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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