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고통 내몰린 이주노동자 심각한 인권 문제

"때리지 말고 말로 하세요.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다양한 고통에 내몰려 있다. 사내 폭행, 임금과 여권 압류, 인권유린, 불법체류자라는 불안한 신분 등 그들은 한국 사회의 인권 사각 지대에서 단 하루도 편안히 살아갈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반인권적 처사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했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미비해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국민의 인식이 현저히 낮은 이유 때문이다. 최근 또다시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살펴보았다.  

고용허가제 유명무실

고용허가제란 외국인 근로자들의 고용조건에 있어 국내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 주는 제도다. 외국 인력을 고용하려는 사업자가 직종과 목적 등을 제시할 경우 정부(노동부장관)가 그 타당성을 검토해 허가여부를 결정하는 외국인력 도입정책이다.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 8월 16일 법률 제6967호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2004년 8월부터 시행돼 왔다. 그러나 사업장 이동이 3회로 제한되고, 구직기간도 2개월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체류자격을 상실하거나 미등록 되는 것에 대해 불안에 떨어왔다.



고용허가제 시행 5년째이지만,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의 차별은 전과 달라진 게 없다. 또한 노동부와 그 산하기관인 고용지원센터의 무성의한 관리 탓에 이주노동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동착취와 인권 유린은 당연히 뒤따라오게 돼있다.

외국인 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0시간 58분`이다. 10시간 이상 장시간 일하는 비율은 총 80.9%였다. 하루평균 노동시간이 12시간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31.9%에 달했다.

또한 이들의 72.9%는 잔업을 포함해 주말근무를 하고, 21.3%는 주야간 2교대 근무 중이다. 외노협은 "이주노동자들의 일터가 대부분 영세사업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주노동자 상당수가 주말을 포함해 주당 50∼60시간 근무하는 셈"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 농가에서는 여성 이주노동자가 성추행 피해와 임금 체납, 폭행 등에 시달렸다고 한다. 1년 전 돈을 벌기 위해 경기도의 한 농가를 찾은 26살의 태국 여성 A씨는 채소 하우스 주인의 성관계 강요에 참다못해 탈출을 감행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B씨는 경기도 군포시 소재의 공장에 다니다 상습적인 임금체불 때문에 직장이동을 선택했지만 2개월의 구직기간이 만료돼 어쩔 수 없이 공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또다시 2개월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고용지원센터는 B씨에게 이미 이전에 두 번이나 직장이동을 한 것 때문에 이 업체를 나오면 출국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 때문에 B씨는 비자유지를 위해 임금체불을 감수해야 할지 업체를 나와 미등록으로 일해야 할지 갈등하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일부 고용주들의 횡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전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들은 공사 현장에서 지난 5월부터 2개월 가까이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이들 고용주는 특히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신고를 하지 않거나 허용 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켜도 신고를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최저임금보다 낮게 시급을 책정하거나 임금 지급을 미룬 것으로 알려져 유학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 C 씨는 "한국에 연고 없고 한국말까지 서투니까 사장이 유학생들을 무시하거나 월급을 잘 안 주려고 한다"며 "사장은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에게 유난히 화를 잘 내면서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전외국인이주노동자종합지원센터 최인환 의료부장은 "지난해 외국인 유학생을 비롯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상담을 신청한 사례가 상당수에 달한다"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인적사항을 반드시 파악하고, 필히 계약서를 보관해 임금을 받지 못했을 경우 노동청에 진정서를 접수해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잘못된 민족관" 전문가들 우려

우리 사회는 심각한 수준의 저출산을 겪고 있으며 노령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생산인구의 감소를 의미하며 단기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이주노동자의 유입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본도 외국인의 유입을 늘려 갈 계획이며 20세기 이미 `다민족국가`임을 선언한 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주노동자는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이 지난 5월을 기준으로 110만이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시기, 약 89만이었음을 감안하면 1년새 24.2%라는 폭발적인 증가세다. 이 중 52%가 산업현장 근로자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로 2010년 외국인 200만명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도 간호사, 광부를 비롯 독일 등 외국으로 이주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이제 반대로 우리가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 당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사회적 인식이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차별 문제와 관련해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우리는 일본인들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비판하면서 분노해왔다"며 "이제 한국민은 우리가 일본인을 비판했던 그 잣대에 비추어, 우리가 일본인 보다 더욱 이주노동자와 외국인에 대해서 개방성을 가질 수 있는가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민의 동질성과 강한 민족주의가 약소국으로서 자신을 지키는 데에는 긍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했지만, 이제 준억압 민족이 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억압적 폐쇄성`으로 전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노자 오슬로대학 한국학과 교수는 "이주노동자 문제는 앞으로 한국 사회를 크게 괴롭힐 재앙을 초래할 화근"이라고 규정하면서 "차별과 폭력 등의 멍에 밑에서 자라난 혼혈인, 외국인(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2세대는 이 사회를 절망적으로 보고 원망할 충분할 이유가 있을 것이고, 결국 언젠가 몇 년 전의 파리 폭동과 같은 극단적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 때 가서는 저들(외국인)을 탓할 일은 없고 자업자득이라고 똑똑히 알아야 할 것"고 경고했다. 

시민사회도 문제 심각성 제기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제도의 개선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던 고용허가제가 지난 5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옥죄는 역할을 해왔다"며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대폭 제한해 사업주들의 권한만 보호하는 위선적인 제도임을 지난 5년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구직기간 제한 때문에 체류 자격을 상실한 이주노동자는 2448명에 이른다. 이들은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그나마 있던 인권 보장의 권리마저 상실돼 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된다.

공동행동은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 직장이동의 자유와 동등한 노동권의 보장, 일회용 부품 취급하는 고용허가제 전면 전환, 임금 삭감하는 숙식비 공제 중단, 인간사냥 단속 중단 미등록 이주노동자 통보의무 조항 폐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등을 촉구했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만들어진 고용허가제가 올해로 5년을 맞았지만 처음 취지와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옥죄고 사업주들의 권한만 보호하는 위선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라고 해도 그들의 인종, 피부색, 지위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보편적인 평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또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코리안 드림`을 절망과 한숨으로 바꾸는 고용허가제와 정부 정책의 과감히 전화해야 할 것"이라며 "이주노동자에게 직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임금 삭감하는 숙식비 공제 및 범죄자 취급하는 인간사냥 단속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전면 합법화해 이들에게 동등한 노동권을 보장해 인권후진국, 노동후진국의 오명을 씻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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