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요강에게 금붕어를 기대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누군가 요강에게 금붕어를 기대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 승인 2009.12.0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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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화장실 이야기

높디 높은 천장의 반투명 유리로 반쯤 투과된 햇빛이 바닥에 아롱아롱 자신의 존재를 새긴다. 촌스럽지 않은 하늘색 타일에 아롱지는 햇빛 때문에 마치 물 위를 딛고 선 듯한 기분이 잠시 든다. 귓가에 들리는 물소리는 마치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고 속삭이는 것 같지만 그 근원은 내 발밑의 여울이 아닌 저 만치 반짝이고 있는 분수다.

분수는 아담한 크기다. 동그랗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물줄기 아래로는 붉고 노란 금붕어들이 얇은 지느러미를 흔들며 흰 조약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녹색의 싱싱한 것들이 조그만 분수를 둘러싸고 금붕어들을 굽어본다. 그렇지만 나 외에는 아무도 그런 것들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제 할 일에 분주하다.

한 떼의 여성들이 또 저희들끼리 뭐라 미소 지으면서 곁을 스쳐지나간다. 이 예쁜 공간엔 오로지 여자들뿐이다.



내가 쪼그려 앉아 있는 곳은 자그마한 인공분수 앞. 정확히는 휴게실 여자화장실 안의 인공분수 앞이다. 폭신해 보이는 소파도 보이고 여기저기 녹색들이 무성하다.
이곳이 화장실임을 알려주는 지표는 입구의 저 빨간 마크와 저쪽의 칸막이들, 그리고 세면대가 전부다. 언제부터 화장실이 근심을 덜어주는 역할 말고 이런 유원지의 역할까지 떠맡게 된 걸까?

이런 식으로 가다간 조만간 화장실에서 커피도 팔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화장실과 카페를 결합시킨 모습을 상상해버려서 금붕어를 가까이 보는 척, 삐져 나오는 웃음을 감췄다.

원래 화장실은 생리적인 현상의 해결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시골 방안의 새침한 요강이나, 암모니아 냄새가 눈을 찌르는 옛 화장실, 훨씬 깔끔하고 젠틀해진 수세식 화장실….

화장실이 변화해 온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지금의 호사스런 화장실도 그렇게 경악스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냄새나고 더러운 파리·구더기 집합소가 샤라랑 변신해서 집 안에 방 한 칸 떡 차지하고 이사하게 된 것도 얼마나 급작스러운 변화인가.

그에 비하면 화장실에 분수쯤이야. 화장실은 어째서 이렇게 모양을 바꿔야 했을까. 화장실이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리된 것은 아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사람의 기대치이다. 좀 더 깨끗하길 바라는 기대치, 좀 더 편하길 바라는 기대치가 화장실을 집 안으로 들이고 깨끗하고 아늑해진 화장실에서 어쨌거나 전보다 안락한 시간을 소비하게 된 사람들은 그에 어울리는 어떤 행동-예컨대 짬짬이 하는 독서라든지-을 위해 하다 못해 전구의 lux(럭스, 밝기의 단위)라도 높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변화를 거듭하던 화장실은 오늘날 `문화`라는 감투까지 얻어 쓰고 그 일차적인 목적에 덧붙여 다른 무언가도 요구받게 된 것이다.

변화에는 기본적으로 기대가 전제된다. 어렵게 IT의 발달이나 사회학적인 이야기로 눈을 돌릴 필요도 없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는 방향에도 많은 기대치들이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 집 가구 배치를 변화시키는 사소한 것도 나의 기대치를 반영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기대치가 상품의 종류와 품질을 업그레이드시킨다. 과연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의미가 있을까 하는 네거티브한 근본적 의문을 제쳐둔다면, 기대치라는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는 열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인의 기대를 받을 때의 기분은 어떠한가. 그 부담스럽고 쭈뼛쭈뼛한 기분은 누구든지 한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저 사람은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구나, 난 그렇게 기대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하며 초조하기도 하고 만약 실수라도 해서 일을 그르치면 어떡하나 괜한 걱정도 하게 된다. 그러나 괜스레 뿌듯해지는 그럴듯한 기분은 숨길 수 없다. 이러한 긴장이 한 번 준비할 것을 두 번 세 번 준비하게끔 만들고 더 나은 결과를 발생시킨다. 그로인해 기대치는 더 높아지겠지만. 나라는 녀석의 바퀴를 굴리는 엔진이 바로 타인, 그리고 스스로의 기대치다.

기대를 받는 사람은 그 기대의 무시 못할 무게에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무거운 어깨를 견뎌내고 그가 밀어주는 대로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가녀린 어깨에 터무니없이 큰 기대를 올려놓아선 안 된다. 생각보다 기대라는 놈은 제법 무게가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다를 거라며 그 조그만 어깨에 수개의 학원 가방을 메어주는 것은 어쩌면 아이를 오히려 깔아뭉개고 질식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내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그를 위해서도 또 나를 위해서도 대체로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에게 필요한 기대치를 적절하게 캐치해 정말로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있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무리한 기대는 기대를 전혀 안하는 것만큼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심지어 더 나쁠 수도 있다.

씻은 손을 핸드 드라이어에 말린다. 호텔 라운지같은 풍경을 뒤로한 채 화장실을 나왔다. 누군가 요강에게 금붕어를 기대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금붕어가 화장실에서 지느러미를 반짝일 수 있는 거겠지.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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