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인명사전, 이념의 잣대로 또다시 사회 분열시키고자 하는 것"
"친북인명사전, 이념의 잣대로 또다시 사회 분열시키고자 하는 것"
  • 승인 2010.01.0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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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폐지 연속인터뷰> 정지영 문화다양성포럼 상임대표(영화감독)-2


#정지영 문화다양성포럼 상임대표(영화감독)


- 뿌리가 단단하면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새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지는 않을까.
▲ 기존의 것이 뿌리가 단단하면 오히려 새 것이 정말 새롭게 보이고 새로운 것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신자유주의 같은 경우, 우리들을 획일화시키고, 철저하게 보편화시키는 등 개성을 마모시키고 있다. 이러한 성향의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놓아야한다. 새 것을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도전 받고, 고로 새 것은 분명 진보적이다. 그러나 뿌리가 튼튼할 때 새 것은 더욱 빛을 발한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도 민주주의 뿌리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마치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처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뿌리도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그러한 뿌리들이 골고루 어딘가에서 존재하면서 사랑 받고 있는 뿌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 문화·예술 방면 인사들이 생각보다 정치적인 구호를 많이 외치는 편이다. 배우 문소리, 권해효 씨 등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외치기도 했다. 
▲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이라는 것은 사고가 진보적이지 아니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그 사람들한테 정치적 보수를 강요하는 것은 코미디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그런 사람들에게 정치적 보수를 강요하며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드는지 납득이 안 간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무조건 한나라당을 싫어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현 정부 들어 특히 독립영화 진영에 예산지원을 안 하겠다는 것은 여러 가지 핑계가 있겠지만, 안봐도 뻔하지 않은가. 전체적으로 그들의 정치성향에 반대하고 있으니 지원하지 않는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의 발전이 필요 없다고 여긴다면 정치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에게만 지원하라.

- 현 정권은 과거 10년 정권을 좌파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자들이다. 정치적 민주화랑 상관없이, 진보정치를 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들은 현 정권에서 좌파정권이라고 불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좌파가 정치한 적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수준을 좌파라고 한다면, 진짜 좌파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정치적 좌표를 미래지향적으로 설정한다면 한국의 진정한 좌파와 진정한 우파가 공존하고 견제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정당정치가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해본다.
좌우를 따지지 않고 투표를 했던 국민들은 내가 김대중, 노무현 찍었으니 좌파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헷갈려한다. 반대로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으면 친일파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좌우를 나누는 철저한 논리, 어떤 세력의 진정성을 훼손시키면서 자기들 정치적 이득에 맞게만 재단하려는 논리가 아직도 통하고 있다. 그런 게 안타깝다.

- 친일인명사전이 공개되고, 얼마 안돼 친북인명사전 편찬 논란도 제기됐다.
▲ 친북 인사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게 친북이라고 얘기하려는 건지 의문이다. 북한 정치를 최고 형태라고 주장한다면 몰라도, 통일 지향성을 지니면서 북한 체제를 인정하자고 말하는 것 그리고 햇볕 정책을 강화하자는 것을 두고 친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웃기는 일 아닌가. 지금 친북인명사전을 편찬하려는 의도는 또다시 이념의 잣대로 이 사회를 분열시키고자 하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가 친일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 일본의 소위 대동아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런 잣대로 본다면, 현재 김정일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게 친북인 것이다. 과연 김정일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인사들이 얼마나 존재할까.

- 영화감독으로서 국가보안법 때문에 자기검열에 시달린 적은 없는가. 
▲ 국가보안법은 당연히 악법이라고 생각한다. 무수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빨리 철폐돼야 할 악법이다. 정부에서는 계속 악용하고 있다. 그 악용된 사례가 좀 많은가. 선량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서 평생을 국가와 싸우게 만들었다. 그것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느껴야 하는데 한심스럽다. 그런 악법은 운동을 통해 극복돼야 한다. 왜 없어져야 하는지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보법 때문에 작품의 제약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저는 80년대에 데뷔를 하고 활동을 시작한 사람이다. 당연히 저 스스로 검열을 했다. 이런 대사는 검열 때문에 잘릴 것이다, 아닐 것이다 라는 식의 고민을 하면서 영화를 찍어왔다. 도대체 그러면서 무슨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나. 검열은 다행히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철폐되었다. 지금은 후배 감독들이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고 있다. 

- 정 감독은 오래전 김산의 일대기를 그린 님 웨일스의 `아리랑`을 영화화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영화 작업이 지연되다 보니 국보법 때문에 뜸을 들이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 `아리랑`은 한국 영화감독들의 로망이다. 누구나 만들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 작품에 대해 말할 시기가 아니다. 준비과정에 있다. 투자자들이 그런 영화에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가 갖고 있는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다. 다른 장르보다 영화는 자본의 논리에 상당히 예민하게 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가 90년대 초반에 이 작품을 제작자에게 제안했다면 작품을 점검하기도 전에 수락했을 것이다. 지금은 제작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저처럼 나이든 감독들이 작품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아리랑`의 경우 국보법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김산을 공산주의자로 그린다고 했을 시, 물론 그것을 작가 개인적 입장에서 김산을 옹호하는 게 아니냐라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김산은 해방 이전의 인물이기 때문에 쉽게 국보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것이다.  

- 임권택 감독의 경우 오랜 시간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임권택 감독은 작가(예술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정지영의 경우, 작가라기보다는 제도권 안에서 상업, 대중영화를 모색했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예술가라 생각지 않는다. 저는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과 폭넓은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는 자기만의 사고와 안목,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관객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저는 소수의 관객이 아닌 많은 관객과 소통을 했으면 하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만한 제작 환경을 필요시 하게 된다. 그런데 이른바 `노땅`이라 불리다보니 투자자들이 선뜻 손을 내밀기 힘들 것이다. 

- `남부군`은 개봉 당시 뜨거운 논란이 됐었다. 당시 그런 영화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남부군` 때문에 정치적으로 탄압 받은 적은 없다고 저는 믿고 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제가 정치적 탄압을 받은 것으로 믿고 있다. 촬영 도중 구속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남부군` 촬영 때문에 구속시켰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남부군` 촬영에 임하기 2년 전쯤, 미국영화 직배 저지 운동을 한 적 있다. 그것 때문에 갑자기 구속시킨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것은 틀림없이 `남부군`의 촬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시는 그렇게 유치하지는 않았다. 모든 일을 화끈하게(?) 처리하는 시절이었으니. 오히려 지금 이명박 정부가 꾸미는 일들이 유치하지 않나. 진중권, 황지우 사태들이 일어나는 과정들을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 끝으로 현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한 마디로 `코미디공화국`이다. 한편으로 어처구니없고, 안타깝고, 슬프다. 이런 정부가 들어 서리라곤 전혀 예측을 못했다. 왜냐하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최소한도로 견지된, 이미 국민들에게 익숙해진 정서가 있는데 그 정서를 어떻게 이렇게 바뀌게 만들 수 있는지….
적어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동안은 `권위`라는 게 서서히 사라져갔는데, 이렇게 쉽게 살아나고 인정해버리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힘있는 자들들거나 바른 말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정부다.  
물론 일반 대중들이 머리를 싸매면서까지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주변에서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에 당한 사례들이 있으면 분명 많은 것을 느낄 것이다. 지난해부터 많은 일들이 있지 않았나. 자신이 아니더라도 친구나 친척들 중 분명 당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중들이 저절로 느끼게 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또한 촛불을 든 사람들은 촛불을 들면 당장 손해를 보니까, 현 정부 앞에 충실한 척 하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행동을 못하게 한 것에 대해 기회가 오면 확실한 표시를 해보겠다고 벼르고 있을 것이다. 투표를 통해 저항할 것이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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