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노래 좋아하는 주모의 작은 주막 있었다는 걸 기억이나 할까?
이곳에 노래 좋아하는 주모의 작은 주막 있었다는 걸 기억이나 할까?
  • 승인 2010.01.0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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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의 낙동강 순례길에서

낙동강의 마지막 나루가 있던 곳

남지의 모랫벌과 주남저수지의 풍경을 거둬두고 싶어 서울 법원의 조정 심리에 참석 한 뒤 그 길로 고속버스를 타고 창원(주남)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주남저수지에 도착했을 때는 굵은 비가 내렸고 빗속에서 흔들리며 겨우 몇 컷 늪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주남에는 수백마리의 고니와 오리들이 깃들고 있었지만 처음 이곳에 왔던 2003년 겨울을 생각하면 철새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밀양에 계신 선생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자전거를 빌려 수산에서 남지 쪽으로 거슬러 올라오는데 강변에는 `11월말까지만 경작, 이후는 금지`라고 쓰인 현수막이 즐비하게 붙어있었다.



벌써 밭을 갈아치우고 있는 곳도 있어 아직 수확하지 못한 무밭은 진창이 되어 있었고 진창 속을 뛰어 다닌 노루와 고라니의 흐트러진 발자국만이 선연하게 남아있는 곳도 있었다. 낙동강의 마지막 나루였던 본포나루가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 높은 제방이 쌓아지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이곳에 노래를 좋아하는 주모가 살았던 작은 주막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이나 할까? 낙동강 물줄기를 휘저어 갔던 작은 나룻배도….

본포나루를 지나 10km 정도 지나는 지점에서 함안보 건설현장과 마주쳤다. 가슴이 쿵했다.



착공식이 있다는 뉴스를 들은 것이 불과 닷새전인데 공사는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설계와  발주가 나기 훨씬 전부터 공사를 위한 도로가 정비되었고 제방이 쌓아졌기에 기실 준공식이라는 것이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기에 믿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수억년 동안 낙동강의 물줄기가 선물한 아름다운 남지 모랫벌은 곳곳이 파헤쳐지고 이제 그 마지막 생명을 거두고 있다. 5억년의 역사가 파헤쳐지고 있는 현장에 동업의 무게로 서있다는 생각을 하니 다리가 후들거려 한 걸음도 더는 갈 수 없었다.



지나가는 트럭을 손들어 세워 자전거를 싣고 터미널까지 갔다. 눈만 가리면 모든 것이 가려지리라고 믿고 싶었던 어린 시절처럼….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외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남지 터미널에서 창녕쪽으로 나가는 표를 끊었고 자전거를 접어 차에 실으려고 끙끙거리며 끌고 가고 있는데 지켜보던 외국인이 자전거를 들어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어디서 오셨느지 여쭤보니 스리랑카에서 오셨다신다. 그는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있는 내가 여행객이라고 생각했던지 스리랑카에는 가을이 없다며 한국의 가을은 참 아름답다고 하신다. 



버스는 다시 낙동강을 풍경으로 달리고 있는데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라 계속 정거장을 지나친다. 비 온 뒤여서인지 이제 가을빛은 어디에도 없는데 스치고 지나 온 살풍경(殺風景)과 한국의 가을은 아름답다는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 합니까
 
최근 3일 동안 영주, 상주, 문경, 안동, 영주, 괴산 등 낙동강 상류지역의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낙동강 상류를 걸었습니다. 그동안 막막하기만 했던 4대강 문제에 대하여 처음으로 지역주민들과 만나 고민을 함께 한 자리였습니다. 멀리 부산, 과천, 광주 등에서 오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멀리서 오신 분들은 이 모임에 참석하신 이유를 막연한 불안 때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영주댐 반대 공동대표로 계신 신부님께서는 그 불안이 슬픔으로 왔고 분노로 자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에 깃드는 슬픔과 분노가 어떤 것인지 저는 알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상주-도남지역에도 공사는 시작되어 평온하고 아름답던 강마을 풍경은 마구 찢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상주보와 생태공원 조성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현장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 무너지고 있는 산하를 바라보며 슬픔이 분노로, 분노가 슬픔으로 변하지 않도록 제가 가진 모든 힘으로 기도를 그곳에 옮겨놓습니다. 

조감도를 보면 이곳의 흰모래는 골재라는 이름으로 팔려 나가고 난 뒤 절대농지인 이곳에 승마장, 골프장, 낙동강 생물자원관, 자전거박물관, 자전거 도로 등….
 
정부에서 녹색개발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세워진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농사짓던 땅을 떠나는데 이곳에 와서 승마를 즐기고 골프를 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제가 상주보가 세워질 곳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유는 누군가 단 한사람이라도 이 현장에서 대치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무너지는 산하를 보며 단 하루도 가슴 떨리지 않는 날이 없지만 그들도 저도 다만 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서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힘없는 사람들과 무수한 생명을 희생으로 한 파괴 행위가 멈출 때까지 저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낙동강 순례를 마치고 우리는 매주 토, 일요일 상주에서 안동까지 1박 2일의 투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안건에 동의했습니다. 낙동강3.14(nakgdongkang314.org)를 통하여 투어에 함께 하실 분들의 참가 신청을 받습니다. 당분간 정원(40명)으로 출발하려하기에 선착순 신청을 받습니다. 비록 이곳을 배회하는 마음은 불안하지만 하나의 눈이 열개의 눈이 되고 열 개의 눈이 백이 되고 천의 눈이 된다면 희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글은 지율스님의 글 나눔방 `초록의 공명(www.chorok.org)`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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