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쳇바퀴 돌리는 두 마리의 실험용 생쥐가 있다
여기 쳇바퀴 돌리는 두 마리의 실험용 생쥐가 있다
  • 승인 2010.01.0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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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버스에서 만난 한 어머니

여기 두 마리의 실험용 생쥐가 있다. 한 마리에게만 특수한 약물을 투여하고 같은 조건 하에서 두 마리를 관찰하면 그 약물이 생쥐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낼 수 있다. 약물을 투여한 생쥐를 실험군, 약물을 투여하지 않은 생쥐를 대조군이라고 한다.

이 실험에서는 실험하려는 목적 사항을 제외한 다른 모든 상황과 변수를 완벽하게 제어하여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따른다. 그것이 가능해야 실험 결과가 변수에 의한 오차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신빙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여기서 이것을 설명하는 이유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오늘 버스에서 들었던 한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추측하건대, 아주머니는 귀가한 자녀와 통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목적지까진 몇 정거장이나 더 남았는데 딱히 할 것도 없고, 그저 그리 힘들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내 귓구멍에 와서 깔끄럽게 박혀드는 성난 목소리를 듣고 앉아 있었다.

"아유! 뭐? 몇 점? 학습지는 제대로 다 했어? 다 했는데 어떻게 그런 성적이 나와!"

아주머니의 복슬복슬한 퍼머머리가 흥분한 손짓에 맞춰 몽글몽글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무심하게 눈으로 좇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던 그때만 해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나와 그 아주머니의 공통분모라고는 같은 버스를 타고 있다는 것뿐이었고 그 집 자녀가 시험을 망치든 전교 1등을 하든 내게는 감흥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학원을 안 보내주니 학습지를 안 시켜주니! 응? 영어는 과외도 하잖아!"

요즘 애들은 참 힘들겠다. 새삼 난 참 편하게 학교에 다녔던 것 같아 덜 극성이셨던 어머니께 감사해졌다. 딱 감사한 그만큼,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숨 돌릴 틈도 없이 학원을 오가고 있는 현실이, 또 그러면서도 그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뭘 박탈당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 얼굴들이 안타까워진다.

혼자서 아주머니의 말에 제멋대로 생각의 가지를 쳐나가고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흥분에 겨운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네가 다니는 학원이 얼마나 비싼 줄 아니? 엄마 친구 아들은 니가 하는 그 학습지만 하고도 1등하고 그런다는 데 너는 어떻게 된 게…."

아아, 엄친아(엄친아: 엄마 친구 아들의 준말)의 등장인가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엄친아를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아주머니의 잔소리가 어째 조금 길어진다 싶은 것이 아주머니가 잡고계신 수화기 너머의 아이가 지금쯤 어떤 기분일지 추측하면서,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가 조금 측은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니가 다 제대로 안했다는 증거야, 이게. 너 말이야, 학원도 열심히 안다니고 학습지도 제대로 안한 거잖아. 안 그럼 어떻게 똑같이 학습지 시켜주고 학원도 보내주는데 누군 1등하고 넌 이런 점수를 받겠니. 그래 안 그래?"

결정타다. 내가 어머니의 저 화살을 받아내고 있는 입장이라면 난 분명 눈꼬리에 뭔가 그렁그렁 매달고 소리를 빽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나마 착하다는 소릴 듣고 자랄 수 있었던 건 정말 다 우리 엄마가 극성이 아니셨던 덕분이다.

1등 하는 애가 한다는 학습지를 열심히 푼다고 해서 나도 반드시 1등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바꿔 말하자면 아무리 열심히 학습지를 풀어도 1등을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정말 열심히 했을 지도 모르는 그 아이는 지금 얼마나 서럽고 섭섭할까. 잘은 들리지 않지만 앵알앵알대는 잔뜩 볼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새어나온다. 그런 아이의 말을 `핑계대지`말라며 일축해버리는 아주머니.

난 생쥐가 아니다. 엄친아 때문에 서러운 그 아이도 생쥐가 아니다. 똑같이 대한민국 땅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심지어 같은 학원, 같은 학습지를 푼대도 절대 같은 조건하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피아노라고는 쳐 본 적 없는 6살짜리에게 `자, 넌 이제부터 피아노를 치게 될 거야. 넌 6살이니까 6살 모차르트만큼 칠 수 있겠지?`라고 하면 어불성설이라며 난 손가락질과 함께 비웃음을 받아야할 것이다.

내가 그에 대한 반론으로 `난 피아노도 주었고 악보도 주었고 6살이니 조건도 모두 같지 않은가`라고 말한대도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것이 우리의 자녀에게는 통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잘하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내가 여기서 마치 중대한 비밀이야기 하듯 풀어놓는 것이 부끄러울 만큼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다. 개인마다 능력차이도 있고 적성도 다르고 호불호도 다르다. 그렇게나 당연한 것을 왜 간과해버리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모든 생활을 1등과 똑같이 바꾼다고 해서 1등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방식이 본인에게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애초부터 그 분야에서 1등이 될 그릇이 못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함께 안타까워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볼 일이지 아이의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냐며 다그칠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을 남들보다 잘못 해낸다고 해서 그 아이의 모든 면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월등한 다른 어떤 부분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주머니의 태도가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부모라도 내 자식이 공부에 적성이 없다고 생각하긴 싫을 것 같다. 차라리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화살을 돌려 화를 내버리는 것이 더 나은 기분일지 모르겠다.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은 입지가 좁은 현실에선 더더욱.

"하여간 누굴 닮아서…."

억울하게 혼나는 아이와 당연한 전제를 간과하는 어머니. 또 부모를 눈감게 만드는 현실. 어쨌거나 여러모로 씁쓸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실험실에서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두 마리 생쥐만큼이나….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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