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2010년 벽두 사각지대의 사람들-학습지 교사들

2009년은 말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의 한해였다. 용산참사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쌍용자동차의 장기간 파업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하지만 학습지교사, 시간강사, 택배기사 등 영원한 이 사회의 비정규직들에 대한 무관심은 여전하다. 택배기사의 경우 지난 4월 박종태 씨의 자살과 화물연대 파업으로 이슈화되는 듯 싶었지만 그것도 잠깐, 수년 전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이들에 대한 ‘특수고용직 보호법’은 여전히 표류중이다.

며칠새 눈도 많이 내리고 체감온도가 영하 10도에 달할만큼 추웠던 지난달 29일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은 스산했다. 벌써 2년이 넘었는데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재능교육 농성 현장이다. 그러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이라면 도로, 나무 등에 적힌 글 등으로나마 간신히 시위 현장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추운 날씨 탓도 있지만 우산에 몸이 다 가려져 있었기 때문. 가까이 다가가자 우산에 간신히 몸을 가리고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한 여성이 보였다.

그녀의 첫 인상은 여성 산악인을 연상케했다. 2년여 길거리 농성이 곱디 고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얼굴은 검었지만 노조 지부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소녀같은 모습이었다. 주인공은 ‘1인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전국학습지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지부장이었다.



비정규직 사회적 심각 우리 신경 안써

벌써 2년이 넘었다. 재능교육 노조의 농성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틀 후인 2007년 12월 21일부터 시작됐다. 1년 넘게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을 지키고 있던 천막은 10여 차례 강제철거를 반복한 끝에 지난해 3월 결국 사라졌다. 이후 재능교육 본사 둘레를 펜스로 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인도에 비닐천막을 설치했지만 혜화경찰서와 구청에서 5~6차례 철거로 지난해 여름부터는 우산 하나로 대체됐다.

여름에 햇빛을 가려주던 우산은 추운 겨울인 지금은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재능교육 노조와 전국학습지노조 조합원 10여 명은 이 우산을 방패삼아 교대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말부터 인근 지구대에서 2인 1조로 감시하던 경찰들도 철수했다. 철제 펜스도 철거되었다. 그나마 관심을 가져주던 경찰들조차 이젠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유 지부장은 “이제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며 “요즘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다 보니까 우리와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면서도 또 그중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니까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재능교육이 ‘투쟁’을 시작하게 된 것은 수수료 때문이다. 흔히들 재능교육의 직원일 것으로 생각하는 학습지 교사는 왜 ‘월급’이 아닌 ‘수수료’를 받을까. 학습지 교사는 학습지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학습지 회사와 ‘사업자’ 대 ‘사업자’의 고용계약을 맺는 개인 사업자다. 따라서 회사에서는 이들에게 4대 보험․퇴직금 등을 보장해 줄 의무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업에 종속되어 있는, 사업주가 기회를 주어야만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임금노동자에 가깝다. 이들은 회사의 지시에 따라 교육이나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회사가 정한 시간에 출근해야 하며, 지시를 불이행할 경우 불이익 조처를 받기도 한다.

신 수수료 제도 계약 안할 경우 계약해지 협박

재능교육이 길거리 농성을 하게 된 것은 2007년 5월 수수료제도가 개정되면서 기존에 받던 수수료에서 적게는 10~20만원, 많게는 100만원 줄어든 선생님들이 생겨나면서부터다. 그러나 재능교육 노조 전 지도부는 이와 같은 협상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유명자 지부장을 중심으로 지도부가 교체되는 ‘진통’을 겪었다. 이들은 “보충협약을 위한 재교섭을 통해 수수료 문제를 다시 논의할 것”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8년 6월, 사측은 노조와의 합의없이 수수료 제도를 한 번 더 개정했다. ‘신수수료제도’에는 회원에게 못 받은 회비를 교사가 대신 납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유 지부장은 “신수수료 도입으로 개선이 되었다면 ‘조삼모사’식일 뿐 수수료는 삭감됐다”며 “이에 더해 2년에 한번 계약을 연장하는데 사측은 신수수료로 계약을 안할 경우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분개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인 1999년 11월 재능교육 교사들은 특수고용직으로서는 최초로 노조를 설립했다. 그 해 12월에는 노동부의 인가를 받았다. 그 후 재능교육 지부는 학습지 노조 중 유일하게 단협이 체결된 사업장이었다. 노조 전임이 있는 곳도 유일했다. 그런데 지난 2008년 11월 사측이 단협해지를 통보하면서 현재 학습지노조에서 단협이 체결된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다. 또 사측은 노조 전임자 2명을 일방적으로 부당해고 했다.

사측의 입장은 분명하다. 유명자 지부장은 “사측은 10여년 동안 합법적으로 노사문제를 해결해왔지만 사주 등은 10년간 빼앗긴 것을 찾아오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습지 노조가 2년여 동안 재능교육 앞을 한시도 떠나지 못한 것은 재능교육 노조가 가지고 있었던 이러한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노조 전임자 복직하고 단협 원상회복”

최근 잇따른 ‘공공기관의 단협해지’에 대해 유 지부장은 “공공기관 같은 곳도 단협을 해지하는데 우리 같은 데는 더 쉽다”며 “우리(재능교육을 제외한 다른 학습지 노조)는 단협이 없는데도 10년을 싸웠는데 있는 것도 못 지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유 지부장은 또 “부당해고 당한 전임자 2명이 복직하고 단체협약이 원상회복 되는 것이 최소한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현재 노조가 사측에 내세울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교섭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해마다 투쟁을 하다보니까 사람이 줄어들어요. 떠날 사람은 다 떠나고…. 다들 지친 거죠. 노조 인원이 줄어들다 보니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죠. 특히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가끔 1회용 주점 사업 등을 통해 남은 수익금을 나눠 쓰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 가고 있죠.”

그동안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의 질문에 대한 유 지부장의 답변이다.

2년간의 농성 그리고 집회가 있을 때마다 1인당 100만~200만원씩 선고된 벌금도 큰 부담이다.

때문에 24시간 동안 감시하던 경찰도, 본사 정문을 막고 있던 철제 펜스도 없어졌지만 섣불리 천막을 세울 수 없다. 또 다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감수해야 할 게 많다.

최근 벌이고 있는 재능교육 불매운동 역시 교사들에게 영향이 갈 수 있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유 지부장은 “재능교육에 대해서는 열정을 갖고 지금 같은 불의에는 옆에서 돕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며 “하루 빨리 해결이 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돌아가고 싶은 게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이라고 밝혔다.

천막도, 차량도 없는 ‘길바닥 맨몸 농성’이 2년 여를 넘어섰다. 유명자 지부장의 소원대로 이들은 언제쯤 교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강성철 기자 steel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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