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도서관

나 어제 ○○○에서 공부했어. 도서관, 독서실, 자습실, 열람실…. 열거한 단어 중 아무 단어나 넣더라도 떠오르는 장면은 비슷할 것이다. 4면의 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저마다 또다른 벽을 세우고 있는 책상들과 그 책상마다 빼곡한 검은 머리들. 그 머리들은 저마다 지금 당장은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할 어떠한 지식들을 한 자라도 머리에 더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앉아 겨우 한 평이 안 되는 자신의 구역에 몸을 구겨 넣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곳은 고요하다. 책장 넘기는 소리와 가끔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 기침소리, 연필을 떨어뜨리는 소리, 지퍼 여닫는 소리,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다른 곳에서는 맥을 못 추던 작은 소리들조차 오직 이 곳에서만큼은 위세를 떨친다.

난 도무지 이런 분위기에서는 편하게 공부를 할 수가 없다. 학습의 효율을 따진다면 할 말 없지만 이런 분위기는 그다지 애정이 가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날을 세운 책상 칸막이가, 나란 존재의 등장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그 칸막이 속 검은 뒤통수들이, 내 등장에는 시큰둥하던 그 뒤통수가 숨죽인 나의 발자국 소리에는 신경이 쓰일 것만 같은 기분이, 이 공간 안의 모든 것들이 날 주눅 들게 한다.

그렇게 첫 인상에서부터 압도당한 나는 패배자 내지 불청객이 되어 내 몫의 공간으로 기어들어간다. 책상에 앉는 순간 내 모든 시야를 차단 당한다. 오로지 천장과 나, 칸막이만 덩그러니 남는다. 옆 사람의 굽은 등만 간간이 보일 뿐. 내 시야는 차단 당할지언정 천정 없고 입구 터진 칸막이의 허술함 탓에 억눌린 고요함은 고스란히 전해온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조심하고 조심한 결과 만들어진 고요함이다. 연필 하나 놀리는데도 소리가 안 나게 신경을 써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는 자율학습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 때문에 꼼짝없이 내 이름 석 자 쓰여진 칸막이 앞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 마지못해 의자에 앉아 칸막이에서 삐져나온 옆자리 친구의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아까까지 함께 신나게 수다 떨던 우리가 생판 남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입이 썼었다.

그럴 때면 괜히 심술이 나서 선생님 몰래 집으로 도망치곤 했었다. 교무실에서 앞으론 안 그러겠다는 맹세를 몇 번이나 했는지 세지도 못하겠다. 그러다 꽤 엄한 꾸지람을 들은 날, 그 날도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굴뚝같았지만 그랬다간 내일 뼈도 못 추릴 것 같아 뭐 씹은 표정으로 의자 위에 빨래처럼 널려 있었다. 칸막이에 머리를 들이밀기가 싫었다.

칸막이를 싫어하긴 했지만 나름 모범적인(?)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래도 공부는 해야 했기 때문에 복도에 쪼그려 앉아 혼잣말 해가며 공부를 했었다. 난로 없는 복도는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그치만 교실안의 숙연한 분위기보다는 혼자 떠는 쪽이 더 나았나보다.

이러한 성향 탓에, 도서관은 책을 읽으러 종종 들렀을 뿐 공부를 하기 위해 열람실을 찾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약간은 소란스러운 카페나 대학 내 휴게실 같은 곳이 오히려 맘이 편하고 공부도 잘 되었다.

다만 문제는 카페나 대학 내 휴게실에서는 날 공부하게끔 불을 지피는 그 어떤 것이 없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카페에 가서 내가 공부를 할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은 웃고 수다를 떤다.

집중해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그런 소란함에 방해받지 않는 스타일이라 상관은 없다만, 시간이 조금 지나 공부를 계속 하려는 의욕의 불꽃이 스물스물 빛을 잃어 가면 그 불씨를 다시 지펴줄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위의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음, 쉬어볼까?’ 하게 되어버린다.

오랜만에 공부를 하러 도서관 열람실을 찾았다. 시험기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좀처럼 이놈의 의욕의 불꽃이 타오를 생각을 하질 않아서 조급해진 것이다. 느긋해서 조급한 그런? 남들 공부하는 걸 좀 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었다.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기에 해도 아직 채 뜨지 않아 밤인지 새벽인지 분간도 못하는 이른 시간에 벌벌 떨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나를 압박해 오는 예의 그 뒤통수들이 보이질 않았다. 확실히 이른 시간이었나 보다. 넓은 열람실에 드문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빈 칸막이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 둘 사람들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신발장에 신발이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듯 까만 뒤통수가 칸막이에 콕콕 박히었다.

여기에 앉아서, 아직은 뒤통수가 아닌 학생들의 얼굴을 맞이하고 있자니 그제야 보였다. 내가 느꼈던 삭막한 고요와 삭막한 뒤통수가 사실은 저토록 치열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의 얼굴은 빛이 난다. 의욕적이고 생기가 넘친다.

꿈을 준비하고 있는 뒤통수가 삭막해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내 연필소리가 거슬릴까 거북하게 신경 쓰이는 날이 아니고, 작은 소리에 방해받지 않았으면 하고 배려하고 조심하는 날이었다. 오늘은, 공부가 참 잘 되었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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