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습 상정’ 노동관계법 민주노총 정의현 수석부위원장

지난 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관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정부는 타임오프제를 도입(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하고 교섭창구를 단일화(복수노조 금지) 했다. 노동조합이 오랫동안 산업별로 조직되어 왔던 산별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각계의 반발은 거세다. 개정안의 내용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 3권을 무력화시킨다는 이유에서다. 13년 동안 유예된 현행법이 준비 없이 바로 시행되는 혼란은 막았으나 야당과 노동계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따르면 타임오프제는 올해 7월부터, 교섭창구 단일화는 2011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위클리서울>은 여의도 문화광장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민주노총 정의헌 수석부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동관계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정의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정부, 노동 문제 지나치게 개입

“현재 정부에서는 전임자 임금을 주는 나라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로 이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 많은 나라들이 줘야된다, 말아야 된다는 식으로 법제화 한 게 아니라 노사 자율로 단체 협상을 통해 하도록 돼 있다. 정부의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다.”

민주노총 정의헌 수석부위원장은 “무엇보다도 이것은 노사 단협에 의해서 자율로 그동안 현장에서 수십 년 동안 정착이 되어 오던 제도”라며 “갑자기 정부가 법으로 강제해서 단행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노동 문제에 지나치게 정부가 개입을 해서 오히려 이 문제로 인해 노사 관계가 악화되는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기 위해 내세운 제도가 타임오프제다. 타임오프제란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된 부분 중에서도 순수하게 노동조합 업무라고 판단되는 부분만 임금을 인정한다는 제도다. 이를테면 산업안전보건, 조직 활동, 쟁의 등의 부분만 인정을 하겠다는 얘기다.

정 수석부위원장은 “사실 노동조합 활동이라는 것이 어디까지가 순수하게 노동조합 활동이고 또 어디까지는 아닌가 하는 부분이 애매하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누구나 다 노동조합 활동, 혹은 자기 노조원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타임오프제는 심의위원회를 통해 범위를 정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조와 정부, 사용자 간 갈등의 소지를 만들어 놓을 것”이라며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타임오프제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법제화 한다지만 이는 사실상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정착이 돼 왔던 현장의 평화를 오히려 깨뜨려 갈등을 부추기는 매개”라고 꼬집었다.

복수노조 금지, 국제기준 위배돼

경영계 입장에서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노조들이 제각기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헌법상 권리를 내세워 노조의 개별 교섭권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노조법에 따르면 복수노조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다만 조직 대상이 중복될 경우만 그것을 금지시키고 있다. 또한 복수노조 허용은 ILO(국제노동기구)가 정한 기준이라는 점에서, 현재 정부의 금지 개정안은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복수노조가 누구든지 간에 사용자와 교섭을 할 수 있고, 자율적으로 교섭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교섭 창구 단일화를 추진하면 결국 숫자가 많은, 혹은 과반수가 넘는 노조한테만 교섭권을 주겠다는 얘기다. 이는 ILO가 내세운 순수한 의미의 복수노조 제도와는 다르다. 대표성을 가지는 노조와만 교섭하겠다는 얘기다. 과연 대표성이란 무엇인가. 어떤 기준에서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나. 사용자 기준에서 대표성을 갖지 못하면 사용자는 그 교섭에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 수석부위원장은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 그동안 많이 이야기가 돼왔던 플랜트 노조 등 특수한 성격을 가진 노조 같은 경우는 사용자가 오히려 교섭에 응하지 않아서 문제가 됐던 것”이라며 “그러나 현 개정안은 이것을 오히려 합법화 시켜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걸핏하면 노사관계 선진화, 국제 기준이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사실 국제 기준에 맞게끔 만들어 진 게 아니다”며 “말은 선진화라고 하면서 기업 측에만 굉장히 유리한 ‘한국적인’ 형태로만 만든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산별노조 이대로 무너지나?

교섭창구 단일화(복수노조 금지)는 기업별 교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따라 산별노조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산별노조 지부나 지회가 사업장에서 전체 조합원의 절반을 넘을 경우 문제가 없다. 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 별도의 교섭 유예 기간이 끝나는 2012년 7월 이후에는 교섭에서 제외될 수 있다. 또한 산별노조 단위에서 수개월에 걸쳐 노사가 합의에 이르더라도 사업장에서는 수의 열세로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비정규직 등 소수 노조의 교섭권, 행동권은 과반수 노조의 입맛에 따라 원천봉쇄될 우려가 크다. 별도 교섭권을 가지려면 이들이 다른 다수 노조와 근로조건 등의 현격한 차이가 나는지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논란 때문에 창구 단일화에 대해서는 위헌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산별노조의 덩치가 크니까, 이들이 개별 사업장의 특수한 이해보다는 사회적인 이슈, 정치적인 이슈 등에 집중하는 게 아닌가, 라는 식으로 해석했을 공산도 크다. 정 수석부위원장은 이러한 해석이 이번 개정안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산별노조가 정치적 이슈에 집중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별 노조가 금속노조인데, 금속노조에는 이른바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업은 거의 포함돼 있지 않다. 주로 2000명 미만이다. 몇 백 명에서 몇 십 명까지의 소규모 사업장만 있고, 이 경우도 사용자와 단체 협약을 어렵게 맺어가고 있다. 자동차 완성차들은 금속노조에 가입되어 있으나 교섭은 기업별로 하고 있다.“

정 수석부위원장은 “국민들이 노사 관계는 잘 모르실 수 있는데, 보통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기업별 노조가 아니고 원래는 산별 노조가 진짜 노조”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법으로 기업별 노조만 허용하도록 하고, 그동안 산별 노조는 원천적으로 막아왔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노조가 스스로 민주노조 운동 등으로 발전하면서 만들어 온 게 금속노조다.

정 수석부위원장은 “현재 보건의료노조, 교사노조, 금속노조 등은 조금씩 다듬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이미 형성돼 있는 산업별 노조의 교섭권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허용돼 오고 정착돼 있던 것을 정부가 억지로 법으로 막는 행위”라고 성토했다.

민주노총 총파업 강행 예고

지난 1일 새벽 2시, 김형오 국회의장이 기습적으로 본회의에 직권상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4일 논평을 통해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한 노동관계법은 국제노동기준과 노동기본권을 외면한 개악”이라며 “여당과 국회의장은 날치기 개악을 사과하고 해당 상임위는 관련법 재개정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노동법 개악으로 지난 13년간 늦어진 기업별 복수노조가 다시 1년 6개월간 금지되었고, 그 후에는 오히려 그 동안 보장되었던 산별노조의 교섭권이 박탈되는 황당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회의장에 대한 비난뿐 아니라,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동관계법을 통과시킨 추미애 환노위 위원장(민주당)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참여연대는 “추미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중재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노총·경총의 이해에 치중한, 시작부터 균형을 잃은 안에서 출발하여 기계적 타협을 강행함으로써 최소한의 신의와 책무를 져버렸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노동관계법 개정안 통과 직후 성명서를 통해 ‘투쟁 의지’를 밝혔다. 민주노총은 노동관계법에 대해 “노동법의 취지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그 취지는 유명무실해지고 노동부는 누더기 노동법, 사용자노무관리법을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민주노총은 “한나라당은 노조법 날치기처리로 국회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스스로 반노동 정파집단임을 밝혔다”며 “민주노총은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안이 그대로 실행되도록 순순히 두고 보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정의헌 수석부위위원장은 “총파업 준비기간이 길어질 것 같다”며 “4월까지 힘을 모아 총력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속적인 노동계의 반발에 향후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각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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