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은 기침을 하듯 켈룩 켈룩, 별 같은 눈을 껌벅댔다
놈은 기침을 하듯 켈룩 켈룩, 별 같은 눈을 껌벅댔다
  • 승인 2010.02.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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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별 이야기

어쩐지 조금 출출해 야식을 먹자고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를 불러냈다. 자기는 배가 안 고프다며, 내가 자신의 뱃살의 원흉이라며 틱틱거리긴 했지만 거절은 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 떨어진 분식집에 가자는 의견을 낸 것도 그 녀석이다. 킥킥, 귀여운 녀석.

츄리닝 차림 그대로 그 위에 패딩만 한 겹 두르고 만나기로 한 외대 후문 쪽으로 향했다. 밤이라 그런지 낮보다 더 추웠다. 목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아 좀 더 껴입고 나올 걸….

외대 후문 쪽에는 벤치가 많이 있다. 여름밤에는 이 시간쯤 더위를 피해 이곳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얘기도 하고 라면 같은 것도 먹고 굉장히 활기찬데, 오늘은 복작이는 사람 대신 아직도 녹지 않은 눈들이 두텁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잠시 담배 한대 피우러 나온 사람들도 다들 앉지도 못하고 서서 뿌옇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 구석진 곳 누군가가 치워놓은 자리에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였다.

내가 옆으로 얼어붙어 있는 눈덩이들과 동화되어 꽁꽁 얼어가고 있는데도 친구 녀석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 하고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뽀얀 내 입김을 보며 어깨를 더욱 움츠렸다. 눈들도 저들끼리 추워서 움츠러들고 움츠러들어 결국엔 단단하게 얼어붙어버렸나. 녹지도 못하게 말이다.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신영아 좀 만 더 기둘려, 열쇠가 안 보인다.]

이 년이…, 추워 죽겠구만. 미간을 살풋 찡그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동그랗게 보일 정도로 움츠렸건만 추위는 가실 줄을 모른다.

그 와중에도 하릴없이 심심해 꼽추처럼 굽은 등으로 고개만 간신히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건물과 건물들로 얽혀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 없는 자리 골라 앉느라 너무 구석으로 앉아서 그런가. 건물들 사이에 고인 물처럼 하늘이 걸쳐있었다.



추운만큼 시리도록 맑은 하늘. 박혀있는 별마저 차게 빛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소심하게 조그만 하늘이 그나마 어떤 아저씨의 담배연기로 어룽어룽 거렸다. 그 모양이 보기에 나쁘진 않았지만, 겨우겨우 틈으로 들이민 검푸른 놈의 소심한 얼굴에 대고 연기를 내뿜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놈은 기침을 하듯 켈룩 켈룩 별 같은 눈을, 아니 별을 껌벅댔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이사 와서 쭉 지냈던 고향의 집은 꽤 높이 있다. 14층이라는 층수도 그렇지만 아파트 자체가 높은 지대에 위치해서 저 밑의 올망졸망한 동네 보다 하늘이 가까운 집이다.

특히 내 방의 창문에 턱을 얹고 멍하니 밖을 쳐다보고 있자면 낮게 둘러 싼 산이나 오가는 행인, 가로등 불빛, 도로에 무심하게 흐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등이 당장 훅하고 눈에 들어온다. 쌀쌀한 공기에 소름이 돋아도 그것들을 쳐다보고 있는 걸 좋아했었다.

그 평화롭고 재미도 없는 익숙한 경치를 짚으며 ‘저기가 우리 학교지’, ‘저 사람은 뭐지’, ‘저쪽에서 뭔 일 났나’라며 쓸데없는 참견을 좀 하고 나면 이내 흥미가 떨어져서 하늘을 보게 된다. 크게 고개를 젖힐 필요도 없이 들판처럼 펼쳐진 하늘에 반짝이는 별. 밤하늘의 구름이 가로등이나 현란한 네온사인은 때문에 붉게 물든 채로 그 별들을 가려 버려도 딱히 아쉬움도 없이 그저 쳐다보곤 했었다. 곧 다시 나타날 테니까. 나는 하늘과 친한 아이였다.

오랜만에 별을 봤더니 기분이 묘했다. 서울 하늘은 과연 ‘서울’의 하늘답게 깍쟁이라 제 품에 든 예쁜 것들을 잘 꺼내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모양 빠지게 저 조그만 틈새로 반짝이는 이목구비를 빛내고 있는 폼이 기특하면서 또 안쓰럽다. 겨울이라 사람도 없고 춥고 쓸쓸하니 저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하긴, 먼저 비싸게 군건 깍쟁이 같은 저 놈이 아니라 오히려 내 쪽 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선 창을 열면 하늘 대신 맞은 편 집의 닫힌 창문이 보이고, 하늘을 보며 시간을 죽일 일도 별로 없다. 어쩌다 가끔 올려다 본 하늘조차도 별 하나 없이 찌푸리고 있는 날이 부지기수라 정말로 오랜만의 재회였다. 뭐 그다지 바쁠 일도 없는데 하늘 올려다 볼 여유도 없었나, 하며 깜박이는 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야!”

내 어깨를 툭 치는 손에 정신을 차렸다. 친구였다.

“뭐보냐?”

그냥 턱짓으로 하늘을 가리키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친구가 내가 가리킨 방향을 힐끗 보더니 이마에 물음표 하나를 달고 날 쳐다본다. 추운데 있더니 이게 미쳤나, 하는 표정이었다.

“별 봤다. 추워, 언능 가자.”

떡볶이를 같이 먹어 줄 친구의 등장으로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에게 작별을 고했다. 놀아줄 사람이 없어 심심한 것 같은 옛 친구의 시선이 뒤통수에 와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자기가 도도한 척 새침해도 종종 안부를 물어야겠다. 친한 사이니까, 우린….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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