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어머니

민족 최대의 명절중 하나인 설. 친척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중 하나다.

다른 집들에 비해 우리 식구는 상당히 단출한 편이다. 큰아버지네 가족과 우리 가족, 이렇게 두 식구 합쳐 전부 여덟이다. 그래선지 어려서부터 친구들의 어마어마한 세뱃돈 액수를 부러운 듯 물어봐야했지만.

어쨌거나, 그리 많지 않은 식구 수임에도 불구하고 집이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 사촌오빠들 덩치가 꽤 좋은데다가 다들 키가 작지 않아 주방일 좀 돕겠다고 하나 둘 일어나 움직이면 정신이 산만할 정도다. 거실 한가득 사람이 북적북적하니, 과연 명절이 좋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거실의 가장 상석은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차지하고 계셨다. 푹신한 쿠션에 머리를 괴고 나란히 누워 계신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렇게 같이 누워계신 것만으로 흐뭇하게 우애가 느껴질 만큼 친밀한 사이시다.



형제간의 우애라는 것이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서는 그저 배부른 소리인 것 마냥 치부될 때가 많다. 몇 푼 돈 때문에 서로 흘겨보고 미워하는 형제들, 같은 배에서 나고 자랐건만 어려운 생활 때문에 서로 아끼는 마음이 퇴색되어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이렇게 명절에 모여서 얼굴 붉히는 일 하나 없이 다들 하하 호호 웃으며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다 축복 같은 일인 것이다,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우애는 명성이 자자했다. 큰아버지의 지인들이 어쩜 그런 동생 분을 두셨냐며, 부러워 할 정도다. 아버지 스스로도 그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그런 아버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 우리 형제도 우애가 꽤 돈독한 편이다.


사촌 오빠들도 서로 아끼고 위해주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억지로 힘들게 노력하여 생긴 우애가 아니라 마땅히 그리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하에 자연스럽게 생긴 우애인지라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곁에 내 동생이 함께 해주리란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 마음 한 편이 늘상 든든하다.

마찬가지로 어떤 경우에도 내가 동생 곁을 지켜 주리라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에 굳이 마음속으로 두 번 세 번 다짐할 필요가 없다. 서로를 의지하는 우리 형제를 볼 때면 흐뭇해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아버지 스스로도 이런 우리 형제의 우애를 통해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우애가 바람직한 일이었음을 느끼는 것 같다.

몇 년 전, 큰아버지께서 경제적으로 큰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큰아버지의 소득이 아버지의 소득보다 훨씬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큰아버지 혼자서는 헤쳐내기가 어려울 만큼 큰 위기였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고민조차 하지 않으시고 큰아버지를 돕기 위해 퇴직연금을 미리 받으셨다.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복구할 수가 없어 꽤 무리를 하셨던 것 같다. 내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이 우리 집에 너무나도 큰 부담이 될 정도였다. 아직도 그때의 여운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큰 고비를 무사히 넘겨내서 많이 안정된 상태다. 그 이후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형제애는 더욱 돈독해졌고 또 그 모습은 우리 형제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형제들끼리 돈을 가지고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이야기가 많다. 피를 나눈 사이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제 몫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 혈안이 된 형제들과 그 들의 옆에서 형제를 이간질 시키는 여자들. 이것이 과연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란 말인가. 물론 과장된 부분이 없잖아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상속문제로 소송을 건 사건을 보면, 피를 나눈 사이가 더하다며 정말 더럽기 그지없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비단 드라마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두 푼 아닌 그 큰돈을 선뜻 큰아버지를 위해 내놓으신 아버지가 더욱 자랑스럽다. 그렇지만, 이것이 온전히 아버지의 공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정말로, 훌륭한 부인을 두셨다. 나의 어머니지만, 어머니는 정말로 하해와 같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남편의 형님이라고 하더라도, 어머니에게는 ‘내 집’만큼 소중할 수 없을 텐데 아버지의 그런 결정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 어려움을 감내해내셨다는 게, 어쩌면 아버지보다도 더 대단하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신념을 위해 어머니가 ‘희생’하셨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당장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와 한 번도 큰소리로 다툰 적이 없으신 어머니. 물론 어머니께서 속상하지 않으셨던 건 아니다. 전에도 낭비 없던 가계부가 더욱 더 깐깐해져야했다. 대학 등록금 문제로 내게 국립대를 조심스럽게 권하실 때도, 못난 딸년은 서울권으로 진학하겠다며 떼를 쓰고…. 당장 제 자식에게 들 돈이 캄캄해지니 부쩍 한숨이 늘어나셨다. 그래도 아버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진 않으셨다. 아버지는 정말로 정말로, 처복은 타고나셨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 참고 견디고 희생하시며 우리 가족들 뒷바라지에 이젠 조금씩 나이 들어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난 항상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두 아버지께서 거실에 누워 TV를 편안히 보고 있는 시간에도 부엌에서 묵묵히 일을 하시고 계신 어머니를 보고 있자면, 아까 한껏 우애로워 보이던 모습도 그만큼 좋아보이진 않는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은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난 어머니가 어머니의 인생을 누렸으면 좋겠다. 음식 준비로 분주한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말 어머니가 호강할 수 있게 하루 빨리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속으로 내쉰 한숨으로 꺼질 듯 위태로운 어머니 당신의 꿈과 소망을 위한, 정말로 당신 자신을 위한 삶을 사실 수 있도록.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어머니 / 김초혜

항상 사랑합니다, 어머니.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설 연휴 직후에 쓴 글인데 게재가 다소 늦어진 점 독자님들의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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