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사형제 폐지 논란에 대해

지난 2월 25일. 오전부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형제도에 대한 위헌제청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위헌판결이 나면 어떻게 될지,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위헌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아직 힘들 것 같아 보였지만, 작년 내 예상을 뒤엎고 혼인빙자간음도 위헌결정이 내려진 만큼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사형문제 자체가 워낙 찬반논란이 뜨거운 사안이기에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날 건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인터넷은 생각보다 잠잠했다. 아니 분명히 잠잠하진 않았으나, 사형제 폐지문제는 다른 일들에 가려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나, 아이돌 그룹 2PM의 문제에 네티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어 사형제는 그저 몇 개의 기사와, 그에 달린 코멘트가 전부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코멘트들의 치열한 논쟁을 보고 있자니, 이것이 과연 뜨거운 감자이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사형제도는 존속하고 있으나 최근 12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형제도는 그저 이름뿐으로, 폐지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었다. 사형수의 러브스토리가 스크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사람이 사람의 목숨으로 심판을 내린다는 것이 사람의 권한 밖이라는 의견도 많아졌다.

물론 사형이라는 최고 형벌의 부재가 다른 범죄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가 ‘사형’이 불가피 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형제도 자체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사형 집행국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란 것이다.

사형제도 존속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현재의 ‘유명무실’한 상태의 사형 제도를 존속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조두순 사건’이 있고 난 뒤에 급격하게 바뀌어버렸다. 조두순의 파렴치한 아동성범죄가 어린 나영이의 인생을 우악스럽게 일그러트린 것에 비해 그 대가를 너무 가볍게 치르는 것이 아니냐며 솜방망이 형벌에 대해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조두순 같은 사람은 사형 받아 마땅하다는 댓글이 우후죽순으로 달렸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사람의 탈을 뒤집어 쓴 짐승이라며 조두순은 죽어 ‘마땅하다’는 사람들의 분노 속에 사형제도는 다시금 존속 쪽으로 힘이 실렸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사형제도에 합헌결정을 내렸다. 만약 위헌 결정이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한껏 진도를 나가버린 내 상상에 푸시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약간은 허탈한 마음도 있었다.

사실 그 신빙성이야 별론으로 하더라도 사형제도로서 범죄가 예방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정말 이것이 옳은 것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하물며 그 심판의 대가가 사람의 생명인 경우에야!

사형제도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질문에는 난 항상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었다. 논쟁이 일어나는 경우에 양쪽에 모두 비판을 가하다가 넌 도대체 뭐냐는 시선을 받은 적도 있다.

그래서, 이번 헌재의 선고를 그렇게 기대했었나 보다. 이제부터 사형제도는 폐지됩니다! 내지는 사형제도는 필요하므로 계속 존속됩니다! 라고 딱 못을 박아,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도 잡아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언젠가는…”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번 선고를 보면서, 헌재도 못 박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다.




헌재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사형제도란 뜨거운 감자는, 뜨겁기 때문에 어찌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판단을 내려야 한다. 헌재가 말한 ‘때’는 우리가 어느 정도 이에 대해 확고해지고 난 뒤에야 올 것 같다.

영원히 식지 않을 것처럼 뜨거운 감자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고 또 거기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도 서서히 바뀌고 있기 때문에, 논쟁을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크게 합치되는 점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그것도 이렇게 찬반이 뚜렷한 시안에서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도를 넘은 낙관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견이 어느 한 점에 모이지 않더라도, 이렇게 핏대를 세우면서 토론을 해대면 무조건 찬성이라던 사람들도 ‘이런 점은 문제가 있구나’ 하게 되고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런 효용은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테니 분명 양 끝에서 점점 가운데로 모이게 될 것이다. 적어도 ‘반대(찬성)는 하지만 왜 찬성(반대)하는지는 알고 있다’는 사람들이 늘게 된다. 이것은 의견교환, 즉 논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와 찬성하는 이유를 모두 주지하고 있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은 사형이란 질문에도 해답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사형제도에 드는 비용이 효용을 명백히 초과하게 되는 때가 도래해도 이러한 논쟁이 미리 존재하지 않았다면, 과연 사형제도는 폐지가 가능할까? 그때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소리를 다시 듣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겠다’며 뒤로 물러나 앉을 게 아니고 좀 더 생각을 깊게 해봐야겠다.

인터넷은 이러한 논쟁을 효율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리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정말로 좋은 수단이다.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기에 이만한 수단이 없다.

합헌 결정이 났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쭉 읽어본다. 1페이지, 2페이지… 14페이지. 댓글만 14페이지다. 눈살 찌푸려지는 광고댓글이나 의미 없는 도배성 댓글을 제하고 나면 7페이지도 채 안 나올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기사와 상관없는 2PM 관련 댓글들이 거의 2페이지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그나마 기사에 관한 댓글은 약 5페이지 정도. 사람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아 위헌제청을 한 어부를 비롯해 다른 흉악범죄자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아끼지 않으며 ‘너도 죽어라’고 말하는 댓글들이, 간간히 사형에 대한 고찰을 긴 줄글로 써놓은 글 보다 더 호응이 좋다. 이 좋은 수단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느낌이라 조금 씁쓸하다.

그저 흥밋거리로 인터넷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조금만 고쳐지면, 헌법재판소가 아닌 우리가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주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닐 텐데 말이다. 사형제도 폐지를 옹호하는 장문의 댓글에 동감 버튼을 누른다. 동감수 0이 1로 바뀐다. 동감수 하나 늘린다고 이 글이 베플(베스트댓글, 동감수가 많은 댓글)이 될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파이팅입니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설 연휴 직후에 쓴 글인데 게재가 다소 늦어진 점 독자님들의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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