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특집 인터뷰> ‘천성산 지킴이에서 낙동강 지킴이로’ 지율스님

“영국인 한 사람과 같이 낙동강을 걸은 적이 있다.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의 강은 정말로 아름답다. 이런 강을 파괴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손실이다’라고. 한국과 전혀 연고가 없는 외국인의 반응이 이 정도인데 우리 시민의 반응이야 오죽하겠는가. 이렇게 낙동강을 찾는 사람이 수만 명,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된다면 어떤 정부가 이 강을 함부로 파헤칠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본격화 된 이후,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은 매 주말마다 ‘종교인과 함께하는 1박 2일 낙동강 답사’를 진행 중이다. 수개월 간 진행된 1박 2일 답사는 회룡포 마을에서 상주보까지 걷는 행사다. 안동, 구미 등을 거친 지율 스님은 최근 들어 상주 일대 낙동강을 계속 걷고 있다.

지율스님은 지난 20일 <위클리서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4대강 사업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바 있는 대운하 사업의 또 다른 이름이며 국토의 생명줄인 강물을 인위적으로 가둬 대지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무모한 국책사업”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끝까지 민심을 져버린다면 종교인들은 온갖 불의로 점철된 4대강 사업을 전국 곳곳의 사찰, 교회, 성당, 교당에서 온 국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끝까지 저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생명 살린다’ 보다 ‘생명의 자유’ 중시”

스님은 낙동강 답사를 하기 이전까지 경북 영덕의 토굴에서 지냈다. ‘도롱뇽 소송’ 이후 영덕에서 3년가량 주민들과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그가 영덕에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4대강 사업 때문이다.



“영덕에서의 생활은 정리했다.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을 굳혔다. 그곳을 나와 계속 걸었다. 처음에는 사회운동으로 옮겨가는 것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상주와 영주, 안동 등의 농민회, 지역 단체들과 인연이 맺어졌다. 공동대책위를 꾸려 매주 1박 2일 낙동강 순례를 하고 있다.”

스님은 사실 2009년 봄부터 낙동강 전 구간을 걷기를 시작했다. 4대강 사업이 본격화되기 이전이다.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해 낙동강 하구 을숙도까지 두 발로 걸었다. 지금은 그나마 개발이 덜 된 낙동강 상류를 지키기 위해 상주에서 활동 중이다.

지율스님은 그동안의 답사를 통해 “‘생명을 살린다’는 것보다 ‘생명의 자유’라는 게 먼저 떠올랐다”고 감회를 밝혔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과 함께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낙동강을 1년 넘게 걸었다. 파괴되는 강을 보며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현장에서 홀로 걷고 있으면 아무것도 알릴 수 없다는 ‘막연함’은 말로 설명키 어렵다. 다행히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스님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대운하 사업’이라고 규정했다. 운하 논란 시기부터 자료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스님은 “고속열차를 달리게 하기 위해 천성산을 뚫으려 했듯이 4대강 사업 역시 운하를 위한 전 단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하에 찬성하는 사람이건 반대하는 사람이건 꼭 천성산을 거론하더라. 어떤 이는 천성산 때문에 2조원을 날렸다고까지 하더라. 양쪽 모두 저를 거론했다. 천성산 문제를 잘 풀면 운하 문제도 잘 풀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운하 문제를 줄곧 들여다보았다.”



스님은 대자연이 가져다 준 ‘상생의 이치’를 강조했다.

“천성산은 터널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니까 체감하기 힘들었다. 강은 다르다. 강 주변에서 베어간 나무, 그 나무가 쌓이는 광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대자연이 가져다 준 ‘생명평화의 순리’와 ‘상생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석음, 분노, 탐욕의 독심에 빠져 내 이웃과 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훼손하며 살아왔다. 산을 뚫고 물길을 막는 것이 내 몸의 뼈를 깎고 혈맥을 막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의 욕심과 편의를 위해 방관해왔던 우리의 안일함이 엄청난 환경재앙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4대강은 대운하 사업”

“사실 2008년 12월부터 한 번도 공사를 중지한 적이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들 4대강 정비사업 정도인 줄만 알았다. 운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도 답답해서 지난해 봄에 서울대 교수를 찾아갔다. 낙동강에서 벌어지는 공사 현장 사진을 보여줬더니,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교수도 정부가 ‘운하’를 포기한 줄 알았다고 했다.”

4대강 사업이 내세운 생태공원 등은 모두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내세운 생태공원이며 승마장, 자전거도로 같은 것은 모두 ‘꽃단장’에 불과하다. 이미 낙동강 주변에는 어마어마한 부지가 조성되고 있다. 강을 6미터 안팎으로 파내서 모래를 옮겨 놓은 자리는 공터인데, 그 땅은 농지가 아닌 다른 용도로 전용될 게 뻔하다. 정부며 기업이며 그런 땅을 농지로 하겠는가. 그런 문제에 대해 모니터링 해야 한다.”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은 대운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상대가 밉지만 종교계부터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이러한 재앙을 수수방관한 우리 종교인들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며 “종교조차 경제 논리에 함몰돼 제 구실을 못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성토했다.

스님은 4대강 정비사업 반대 측에서 쓰는 용어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정부에서 쓰는 용어는 너무 좋다. ‘녹색성장’이니 ‘친환경적 개발’이니, 믿거나 말거나 그런 말을 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쪽은 너무 거친 말을 쓴다. ‘삽질을 멈춰라’라고 하지 않나. 우리가 더 고운 말을 써야 하는데 그렇다. 저쪽은 내용과 다르게 그런 말들을 쓴다. 우리도 언어를 좀 더 순화시켜야 한다. ‘녹색’이 아니어도 ‘삽질을 멈춰라’와 같은 말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악한 감정과 분노를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지금 낙동강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들이 우리 발아래 무너져 가고 있다. 다음 세대에 올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그 집행자이며 공범이며, 방조자라고 부를 것이다…. 물은 많은 장애를 갖고도 흐른다. 굽이를 갖고, 여울을 갖고도 흐른다. 물은 거부하는 게 없다. 그 흐름은 끝이 없다. 악한 감정과 분노를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스님은 앞으로 4대강 문제에 대해 모성적인 힘을 갖고 접근하자고 당부했다.



“병상의 환자들은 숨이 거칠다. 지금 4대강이 그렇다. 같이 걸으며 숨결을 같이 느껴야 한다. 모성적인 힘을 좀 더 가져야 한다. 천성산 사태 때는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에게 ‘산을 뚫지 말라’고 성토했다.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때는 위를 보고 하니 힘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농민들, 학생들과 하니까 마음이 편하다.”

강 주변을 둘러보던 스님은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둔치가 파헤쳐졌다. 이곳 농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야생동물의 보금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아름다웠던 모래밭과 이렇게 파헤쳐진 둔치를 잊지 말고 기억하며 기도해달라.”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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