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갈노> 대동공동체 마을 꿈꾸는 지리산 쇠점터 정재건 부부


▲ 지리산이 품은 쇠점터에 38년 전 귀농한 정재건님 부부

지리산과 하늘 그리고 맑은 계곡물이 맞닿은 곳, 그곳에 들어서면 자연의 품 안에 고스란히 안긴 느낌이 저절로 든다. 최근 1971년 무렵 도시생활을 접고 갑자기 지리산으로 들어가신 정재건(65) 님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쇠점터농장에서 만났다.

쇠점터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도 가장 산중에 있는 하늘 아래 첫 마을로 지리산 화개에서 쌍계사 십리 벚꽃 길을 따라 끝까지 가는 중간에 나타나는 마을이다.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해 있으며 워낙 산중 깊은 곳이라 애달픈 사연 또한 많은 곳이다

이곳에 사시는 정재건 님과 그의 아내는 각각 경기고와 서울대, 경기여고와 서울대를 나온 세칭 ‘일류’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잠깐 동안 연구원으로 일하던 정재건님은 어느 날 큰딸이 백일 됐을 무렵 유신체제하의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연고도 없는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으로 이주한 것이다.

그는 장인어른께서 마련한 28만평과 자신이 마련한 2만평 등 총 30만평에서 벌꿀을 채취하고 녹차와 사슴을 키우며 전원생활을 시작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38년이 지난 지금은 한 여름이 되면 민박손님을 받고, 때로는 야생 뽕잎차와 국화차, 감잎차 등을 자체생산하며 경제적인 기반을 다졌다.


▲ 쇠점터마을은 지리산의 큰 맥이 감싸고 있어 자연환경은 최고


지인과 함께 첫 방문한 지리산 쇠점터는 화개면 맨 꼭대기쯤에 위치해 있어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돌아 도착한 곳에는 원시림 마을에 온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숲으로 둘러진 마을에는 서너 집이 언덕 아래로 자리했다. 이곳 쇠점터에는 지리산의 맑고 건강한 물줄기가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첫 만남인지라 일단 이곳에 살고 계시는 정재건 님 댁을 찾으니 마을의 두번째 집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에서 넉넉함이 우러나온다.


지리산의 맑고 힘찬 기운이 흐르는 풍경



그의 집에는 벌써부터 이웃들이 행복한 상차림으로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정재건 님과 그의 아내가 따스한 미소로 맞는다. 함께 했던 역사연구가 이병화 님과는 서울대 사회학과 동창이시라 오랜 만남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웃들과 한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귀한 술을 여러번 대접받았다. 그동안 귀농하신 소감과 자녀들의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는 알프스의 소녀들처럼 지리산을 헤집고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딸이 둘이나 있다.

그의 첫째 딸은 아버지와 벌통을 싣고 전국을 따라다니며 꿀을 따다가 서울대 디자인계통의 학과를 나와 지금은 금융계에서 국내외를 망라해 활동한다고 했다.

그리고 둘째딸은 정마리로 어린 시절 지리산의 하이디로 ‘정악(正樂) 여창(女唱) 가곡’ 부문 인간문화재 전수자이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처럼 농사꾼이 되려던 둘째딸. 그는 전공자라고는 50명밖에 되지 않는 국악 정악을 하고자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지리산의 쇠점터 풍경

그가 당시를 회상하며 쓴 글이 있어 소개한다.

“아버지는 저보다 두 살 위인 언니가 백일 무렵일 때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지요. 항상 조용하며 책과 가까이 사는 언니와 달랐던 저는 봄에는 진달래꽃, 찔레 순을 꺾으러 다니고, 여름에는 물놀이에 새까매지고, 가을에는 단풍을 보며 조금 차분해지고, 겨울에는 꽁꽁 얼어버린 개울에서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얼음을 지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둘째딸은 1990년 국악고에 입학한 뒤부터 전통 가곡으로도 불리는 정악 가곡을 하는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되어 서울대 국악과와 대학원을 나왔다. 그는 10대 후반에 이미 인간문화재로부터 기능을 이어받을 제자로 정해질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정악 가곡은 종묘제례악에서도 불리며, 시조 등에 곡을 붙여 관악과 현악 등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우리음악이다. 그는 정악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정악 가곡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음악이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한 맑은 목소리로 노래해야 합니다. 흐름이 빠르고 소리가 격한 판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음악입니다.”


지리산의 봄, 각종 매실 꽃, 복숭아 꽃, 살구꽃들의 눈망울이 터질듯 한 쇠점터 풍경


그 후 손끝과 발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들, 단단해 지는 아랫배의 든든함, 나즈막히 속삭일 때 들리는 숨소리에 행복해 하며 노래해 왔다고 했다.

그와 정악의 만남은 여름방학 때 국악고를 소개하는 책자에서 국악 중 정악에 관해서 `목소리가 맑고 고운 사람이 적합`하다는 소개 글을 읽고, 노래를 좋아했고 목소리도 맑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제 얘기다 싶어 당연하다는 듯이 시작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인적이 없는 쇠점터에 앉아있으니 지리산의 시계가 멈춘 듯 조용했다. 잠시 집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니 주변에는 봄을 맞은 버들강아지랑 각종 매실꽃, 복숭아꽃, 살구꽃들의 눈망울이 터질듯 부풀려 있다.

이곳은 지리산의 큰 맥이 감싸고 있어 자연생태환경은 최고다. 갑자기 이런 산골짜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해먹고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이곳에도 여러 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떠난 것 같다. 옛날부터 쇠를 다루던 마을로 쇠점터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마을의 풍광은 자연 그 자체다. 나무와 돌과 물 그리고 사람 사는 마을이 어우러져 참다운 지역공동체를 이루었던 대동사회를 떠오르게 한다.

대동사회는 인간사회의 중심축으로서 하나의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서 정치적인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다함께 참여하면서 더불어 잘살아가는 것이다. 지구는 인간 삶의 터전으로 반드시 자연은 보호되어야 하고, 사랑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으로 돌아가 대자연의 진리를 거역하지 않는 순환의 생활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참을 그곳의 분들과 정담을 나누다보니 벌써 해가 서산으로 기운다.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정재건님께는 지리산의 생활을 ‘새마갈노’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곤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새마갈노=류기석 기자 <‘새마갈노(www.eswn.kr)’는 생태순환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는 조화로운 삶과 서로 돕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솔한 몸짓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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