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석의 사진으로 보는 세상>


#이 사진을 찍은 3월 초, 전주동물원은 봄맞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 화분에 꽃을 심기 시작하고….














#우선 동물원 식구들 중에서 몇 녀석만 선을 보입니다. 물론 제 블로그나 <포토 아카데미> 카페를 방문하시면 이 녀석들보다 훨씬 귀엽고 아름다운 녀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연초록색의 이파리들이 언 땅을 뚫고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계절은 이렇게 정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정직하지 않으니 왜 그럴까요. 게다가 먹물일수록 정직성은 더 높지 않고….

그러니까 동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어언 23년 전. 이젠 5살 아이의 어미가 된 딸이 중학교를 들어가더니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라댔습니다. 동물과의 인연이란 이별할 수밖에 없는 그 끄트머리가 걱정되어 어떡하든 피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막무가내로 졸라대는 딸아이에게 처절하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남문시장 근처 애견(?)센터에서 치와와와 비슷하게 생긴 두 살 먹었다는 분견(糞犬, 우리말로 똥개, 영어로 cur dog)을 식구로 영입하고 말았습니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안처럼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명문가 족보 있는 강아지를 사지 않았던 것은, 잠시 데리고 지내다가 분명히 금방 싫증을 낼 것이니 비싼 돈을 들여 사면 어차피 처분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내외의 그 예상은 딱 들어맞았습니다. 딸은 3개월도 못되어 ‘단비’(이름은 근사하게 지었음)에게 싫증을 냈으니까요.

그런데 사건은 늘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글쎄, 우리 내외가 생각지도 않게 그 녀석, 단비에게 정이 들어 버린 것입니다. 세 식구가 사는 집에, 그나마 딸아이는 부모와는 세대차를 느끼는 나이가 되어 주말이면 함께 놀러가는 것도 슬슬 거절하기 시작하고 식구들 사이에는 여느 가정처럼 대화가 고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위기의 시기에 단비 그 녀석이 식구들 사이에 대화의 매개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분견이라서 이런저런 사고(대소변 못 가리기, 중요한 물건 이빨로 절단 내기 등등)와 분견임에도 불구하고 이쁜 짓(당시 살던 아파트가 6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구가 1층에 들어서는 것까지 인기척으로 분별하고, 분견 주제에 품 안에 들어와서 애교 떨기 등등)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그 녀석이 있게 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 녀석과의 살아온 얘기를 이 자리에서 풀어내자면 한국의 한 많은 여인네들이 흔히 하는 ‘내 살아온 것을 다 풀어내면 장편 소설이 되고 남는다’는 말처럼 거의 대하소설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하니 <동물원 가는 날 #01>을 시작하는 이 글에서는 맛보기만 보여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얘기들이 남아 있고, 단비 말고도 또 하나의 요물 고양이 ‘또치’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하여튼 질긴 인연으로 단비는 저희 식구와 1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 녀석이 19살이 되어서 노견(老犬)이 되어 걸릴 수 있는 모든 병, 이를테면 앞니만 남고 어금니는 완전 빠져버리고(아마 사람 같으면 임플란트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 녹내장으로 한쪽 눈은 실명, 그러다가 급기야 치매(우리 내외도 잘 알아보지 못하고)에 걸리더니 결국 개지랄병에 걸리고, 노쇠하여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사람과 개의 환산 방정식이 Y=5X +13 (Y : 사람 나이, X : 개 나이)이므로 108살까지 장수하시고(경어 사용) 돌아가신 것입니다. 비록 호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사에서 가장 슬픈 것이 사별(死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내외에게는 오래 마음 아픈 이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비가 저 세상으로 가던 날, 앞으로는 절대로 살아있는 동물에게는 애정을 주지 않겠다는 허튼 다짐(지금까지 숙독을 하신 분은 이 다짐이 ‘또치’라는 고양이에서 깨지고 말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실 것)까지도 하면서 말입니다.

기억이란, ‘트라우마’라고 정신적 외상을 뜻합니다. 상처란 모두 아물었던 것 같아도 날씨만 우중충하여도 상처난 곳이 슬그머니 아파오거나 최소한 간지럽고 그러지 않던가요. 이젠 잊었다고 자신했는데, 그리고 억지로라도 잊고 싶었는데도 느닷없이 기억의 저편에서 그 상처가 다시 결리곤 하는 것을 우리들은 늘 겪는 일입니다. 단비와의 기억도 그러하였습니다. 잊을 만하면 뇌리를 스치곤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뜬금없이, 그 녀석에게 멋진 영정 사진(요즘은 장수 사진이라고 함)이라도 찍어 줄 것을, 하는 후회 비슷한 생각이 스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주 동물원 사진 찍기의 동기는 이처럼 전혀 엉뚱한 기억 저편이 되돌아오는 것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래,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단비 그 녀석 대신 전주 동물원 식구들의 영정 사진이라도 폼 나게 찍어 주자는 것이 바로 전주동물원 사진 찍기가 돌발 사태로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강력하게 주장하여 금년 3월부터 매주 목요일 내가 카페지기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 동호회 <포토 아카데미>에서 동물원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카페에 <전주동물원 四季>라는 폴더를 만들고 찍은 사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우선 동물원 관계자들은 언제든지, 어떤 사진이든 무료로 삽질해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내년 봄에는 동물원 사진전을 그 곳에서 펼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동물 가족들, 그리고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들, 또한 이들을 보러 놀러 오는 어린 아이들까지 모든 저희들 카메라에 애정으로 담아질 것입니다. <동물원 가는 날 #01> 글쓰기 첫 날부터 주저리주저리 서설이 길어졌습니다. 우리 <포토 아카데미> 회원들의 동물원 사진 이야기에 도민 여러분, 더 나아가 전주동물원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을 초대하겠습니다. 또한 동물원 사진 찍기에 동참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매주 목요일 동물원으로 카메라 지참하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고홍석님은 전북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포토아카데미(http://cafe.daum.net/photoac)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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