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폭설, 그래봤자 오는 봄 어쩔 수 있겠는가
때아닌 폭설, 그래봤자 오는 봄 어쩔 수 있겠는가
  • 승인 2010.05.2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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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불광사에서 탕춘대까지

지하철 6호선 독바위역을 나오니 등산객들로 시끌벅적하다. 인근의 족두리봉-향로봉-비봉 등지로 가기 위함이다. 불광중학교를 끼고 계속 직진하면 양쪽으로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하산하는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마다 산행 뒷담들을 풀어내며 막걸리로 갈증을 푼다. 산 입구에 다다르기 전인데도 벌써 목이 컬컬해 온다. 산행은 뒤로 미루고, 나도 저 대열에 합류해볼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차피 오늘도 하산후 술자리 약속이 돼있는 터. 이왕이면 다홍치마, 기사거리도 좀 챙기고 그동안 알콜에 찌든 몸에 좋은 공기도 불어넣고…마음을 다잡는다.


#불광사

조금 지나니 태고종 불광사가 나온다. 거기서 약 5분여 불광공원지킴터에 들어서면서 바로 우측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 족두리봉 가는 길이다. 이 코스는 처음부터 경사가 급해 무척 힘이 든다. 오늘은 비교적 짧은 코스로 잡았다. 속세에서 약속 때문이다. 약속이래봤자 몇몇 지인들과 동네 주막에서 곡주 마시는 것이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이때, 곡주 틀어넣기는 아주 중요한 일정이다(거의 매일 마시면서 또 합리화시키려 애 쓰는 꼴 하고는…).

바람이 거세다. 계절이 봄이라고 가벼운 차림 했다간 큰 낭패를 당하기 좋은 날씨다.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仕春)’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며칠 전엔 때아닌 춘삼월 말에 폭설까지 한바탕 쏟아져 내렸다.


#불광사쉼터 가는 길

다행히도 오늘 기자가 가는 북한산 서부능선엔 그렇게 눈이 쌓인 곳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한편 그깟 꽃샘추위 기승 부려봤자, 오는 봄을 어쩔 수 있겠는가란 생각으로 애써 위안을 삼아본다. 그러고 보니 간혹 마주치는 진달래꽃도 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봄은 오고야 만다.


#개발의 상징 은평뉴타운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이마에 땀이 맺힌다. 그렇게 30여 분을 오르니 족두리봉이 나타난다. 구기터널 방향인 남벽에서 보다가 북벽 쪽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봉의 자태가 오늘따라 새롭다.


#족두리봉 가는 길

족두리봉 동벽을 내려서면 비봉능선의 출발점이다. 불광동과 구기동 방향에서 올라온 등산객들과 합쳐지면서 능선은 무척 붐빈다. 바람은 더욱 더 거세지고. 땀이 식으면서 몸은 더욱 움츠러든다. 바람을 피해 바윗돌에 앉아 뜨거운 커피나 한잔 할까. 안개 같기도 한 뽀얀 오염 덩어리가 휘감고 있는 시내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하고 있자니 임영조 시인의 ‘대책 없는 봄’이 떠오른다.

무엇이나 오래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엔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틀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뻗어서 저런!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 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 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 하지만

맨 처음 발설한 것은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락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자꾸만 수상쩍어 가보니

이런!

겁 없이 멋대로 발랑 까진 십대들....

냉이 꽃다지 제비꽃 환하더군요.

몰래 숨어 꼬나문 담뱃불처럼

참 발칙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 없는 봄날입니다.


#향로봉

비봉능선 향로봉 아래서 우측으로 틀어서 하산 길을 잡는다. 포금정사-비봉 가는 푯말을 뒤로하고 탕춘대로 향한다.


#향로봉 능선

탕춘대지킴터에서 탕춘대능선을 거쳐 장미동산의 시발점인 거북약수터까지는 약 한 시간이 소요된다. 쉬엄쉬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조선시대 연산군이 봄만 되면 궁녀들과 질펀하게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탕춘대. 그래서인지 이곳만큼은 완연한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등산로도 산책로처럼 여유롭기만 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거북약수터공원이다. 이곳에서 불광역까지는 5분여 거리. 약속장소는 6호선 역촌역과 응암역 사이에 있는 서부시장 입구의 ‘실내포차(쥔장 김경숙 010-8007-5644)’다.


#실내포차

이곳 실내포차의 주인인 김 여사의 음식솜씨는 주변에 정평이 나 있다. 코다리찜(1만원)과 삼겹살(1인분 6000원)은 별미중의 별미. 특히 삼겹살은 돼지고기 특유의 느끼함을 없앤 주인만의 비밀스런 방법으로 숙성, 맛이 아주 담백하다. 열무김치와 어우러져 인기 만점이다. 또한 매콤한 코다리찜의 맛을 찾아 모래내, 수색 등지에서 손님들이 몰려든다. 인근 서부경찰서와 신진자동차공업고등학교 직원들의 회식장소로도 유명하다.

단골손님들인 정릉언니, 성자 씨, 혜정 씨, 창옥 씨, 명미 씨 등은 이 집의 힘 있는 줌마들이다. 평소 기자와 안면이 있는 관계로 간혹 합석하기도 한다.(술을 사 주실 때만….)

오늘은 동네 저명인사인 배모 사장과 모 제약회사 간부인 김 이사와 함께 막걸리로 회포를 푼다. 여흥 중간 근처 당구장가서 학창시절의 옛 추억을 맛보곤, 다시 와서 자리한다. 이 순간의 고마움을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한 채.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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