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북한산 정상 백운대

금요일 날씨는 화창했다. 연신내에서 7211번 버스에 몸을 실고 정릉에 내렸다. 지난주와 같이 청수장 방면으로 환승하여 올라갔다. 코스는 대성문이 아닌 보국문으로 정했다. 보국문에서 백운대를 타기 위함이다. 최근 오은선 대장이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했는데 기자는 북한산에서 제일 높은 백운대 정상은 밟아줘야 도리가 아닌가 싶다.

정릉탐방지원센터를 지난 시간이 오전 10시 10분.



정릉1교를 지나는데 상수리나무 산벚나무 당단풍나무 국수나무 누리장 꼬리조팝나무 내장단풍나무 물오리나무 작살나무가 연록색으로 치장한 채 차례로 줄지어 서있다.

따뜻한 봄날 햇빛을 받아 싱그러움이 절정에 달한다. 북한산에 서식하는 조류들인 오색딱따구리 물총새 딱새 박새 노랑턱멧새 등이 등산로 중간 중간 눈에 띄기도 한다. 재잘거리며 먹이를 찾는 모습에서 그들만의 평온이 느껴진다.

30여 분을 올라가니 정릉2교가 나타난다. 다리 옆에는 들꿩나무와 졸참나무가 한가롭게 늘어져 있다. 정릉탐방지원센터에서 보국문 코스는 거리가 짧은 만큼 경사가 가파르다. 거의 아래부터 정상까지 깔딱고개라 보면 틀림없다. 이마에선 연신 땀이 흘러내린다.



전날 우리 편집장과 막걸리를 과하게 마신게 여실히 나타난다. 우리 국장, 항상 얘기는 ‘형님, 약주 좀 적게 드세요’ 하면서 수시로 호출하여 잔을 들이민다. 나 원, 사람을 명(命)대로 살게 해야지. 아뿔사, 이 글 보면 다시는 막걸리 안 사줄지도 모르겠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뜻이 그런가.



드디어 보국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10분 후 대동문에 다다랐다. 11시 20분이다. 길가에는 쪽동백나무와 철쭉과 진달래가 한데 어우러져 앙상블을 이룬다.


#보국문

대동문에서 북한산대피소가 1.3㎞, 용암문이 1.5㎞, 백운대가 3.1㎞거리다. 대동문에서 1시간 남짓이면 백운대 정상을 밟지 않을까 싶다.

보국문과 대동문의 변천사를 보면, ‘선조실록’ 29년(1596년) 3월 3일 기록에는 병조판서 이덕형이 중흥동고석성을 돌아보고 와서, 동문(東門)을 통하여 나가면 성 밖에는 수도암 도성암 등의 암자가 있고 그 밑은 우이동이며, 석가현에 있는 동남문(東南門)을 통하여 아래로 내려가면 사을한리로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다.

북한산성 축성공사가 시작되기 전의 기록인 ‘비변사등록’ 숙종 37년(1711년) 2월 9일 기사에는 사직 이우항이 삼각산 지세를 살피고 와서 임금에게 보고하는 중에 ‘옛 동문 곁에 작은 골짜기가 있어 조계로 넘어 가는 길’이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옛 동문이란 중흥동고석성의 동문을 말하는 것이며, 조계란 현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 뒤의 구천폭포 부근을 말한다. 따라서 이덕형의 보고와 같이 우이동 방면으로 나갈 수도 있고, 이우항의 기록과 같이 현 아카데미하우스 방면으로 나갈 수도 있었던 중흥동고석성의 동문은 현 대동문 자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덕형이 말한 중흥동고석성의 동남문은 현 보국문 자리를 말한다. 현 정릉지역을 말하는 사흘한리로 통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은 현 보국문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조선시대에는 석가고개라 하였기 때문에 북한산성을 만들 때 그 바로 옆의 현 칼바위능선 정상부에 석가봉이라는 이름을 부친 것이다.


#동장대

동장대에서 저 멀리 산성 주능선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성문 보현봉 대남문 문수봉 청수동암문 나한봉 나월봉 남장대지 의상능선이 이어진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시원한 물 한 모금 들이키고 다시 길 재촉한다. 북한산대피소를 지나 용암문에 도착하니 백운대가 1.6㎞ 남았음을 알리는 푯말이 서 있다.



다시 얼마를 가니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백운대다. 900미터를 남긴 지점부터는 쇠사슬이 줄지어 있다. 이것을 잡고 올라야 하는 난코스의 시작이다. 올라갈수록 힘이 부친다.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야한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길을 양보할 때 잠깐씩 쉬어본다. 쩔쩔매고 다시 올라가니 북한산성유원지 방면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12시 30분, 드디어 백운대 정상에 섰다. 지척에 있는 인수봉에는 암벽 등반가들이 열심히 바위를 오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스릴만점이다. 인수봉 뒤편에는 도봉산의 능선들이 맘껏 자태를 뽐내며 유혹한다. 오봉 주봉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백운대와 인수봉의 유래를 보면, 백운봉(白雲峰) 또는 백운대(白雲臺)라는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 창업 이전에 이곳에 올라 읊은 시 가운데 ‘넝쿨 움켜지고 푸른 봉우리 위로 올라가 보니, 흰 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누워있네’라는 구절이 있어 이로부터 유래된 것이고, 인수봉(人壽峰)이라는 이름은 ‘인자낙산(仁者樂山) 인자수(仁者壽)’의 뜻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는 해석이 있다.


#백운대 정상에서 필자


기념사진 몇 컷 찍고 정상 밑 넓은 바위에서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막걸리 한 사발 들이 키고 충북 영동에서 올라 온 곶감을 입에 가져간다. 맛이 기가 막히다. 이 기분에 산타는 거지. 정상에서 굽어보니 저 아래 아득하게 보이는 속세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하산하면 다시 저곳에서 바둥거리며 지내겠지. 인생무상이 절로 그려진다.



하산길은 북한산성유원지 방향으로 정했다. 길은 멀지만 집에 가는 교통편이 가깝기 때문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가까운 지인이, 모친상을 당했다는 비보를 전해왔다. 산 위에서 한가롭게 보낼 처지가 못 되어 이 코스를 택할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하산길, 계곡에서 들려오는 맑은 시냇물소리가 무척이나 마음을 맑게 해준다.  예전에 자주 들렀던 금강산장 거북장 만석장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하며 손을 끈다. 한 곳에 들러 녹두빈대떡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이마의 땀을 훔친다.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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