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지금도 어리지만^^;), 가끔 아주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 보면 시원한 요구르트를 꺼내 손에 쥐어주시기도 했다. 그만큼 기자의 기억에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천사’로 남아 있다.
그 때는 요구르트 주머니가 달린 대문이 있는 집에 살던 아이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우리 집은 정기적으로 요구르트를 시켜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네 집에 가보면 요구르트만이 아니라 떠먹는 요구르트도 배달시켜 먹는 걸 보곤 했다. 그 떠먹는 요구르트 맛, 어릴 적엔 홀딱 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선 그런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쉽게 만나 볼 수 없었다. 특히 몇 년 전 단독주택에서 빌라로 이사를 한 뒤엔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아예 잊고 살았다.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고 또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된 건 최근 일. 이곳 신문사에 출근하면서부터다. 무슨 이유인지 신문사 근처에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특히 아침 시간이 아닌 한 낮에도 요구르트 캐리어를 길거리에 둔 채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몇 분 계셨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배달을 하고 남은 시간 그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때론 캐리어는 보이는데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캐리어에 요구르트가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날씨가 너무 덥다보니 근처의 나무 그늘에서 쉬시는 건가…주변을 둘러봐도 아주머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궁금증이 이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나섰다. 그 아주머니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궁금증도 같이 해결하고….
신문사 가까운 곳에 있는 대로변 양쪽에 진을 치고 계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 두 분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처음엔 두 분 모두 부담스러워 하셨다.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한 분으로부터 승낙을 얻어냈다.
이 아주머니의 캐리어엔 유난히도 손님이 자주 들렀다. 찾아왔던 손님들이 돌아간 뒤 조금 여유로워지자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머니는 1991년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단다. 깜짝 놀랐다.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일을 시작하신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하하, 그렇죠”라며 웃으며 말을 이어가셨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돈이 많이 들고 돈 벌이를 해야 될 것 같아서 시작하셨단다. 문뜩 엄마가 간혹 내뱉으시던 “자식은 돈 덩어리”라는 말이 떠오른 건….
아주머니는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나 6시 쯤 집에 들어가신다고 했다. 하루에 10~11시간 일을 하시는 셈이다. 그렇게 일해서 버는 돈은 얼마나 될까. 아주머니는 초창기에는 얼마 벌지 못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파는 제품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수입도 조금씩 늘어났다. 자연스레 기자의 머리엔 TV CF 등을 통해 접한 새로 쏟아져 나오는 발효식품이나 음료들이 떠올랐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날씨의 연속. 이런 날씨 속에서 힘드신 점은 없을까.
“여름에 더울 때, 겨울에 추울 때 빼고 딱히 힘든 점은 없어요. 봄, 가을이 일하기에 제일 좋죠.”
아주머니는 아침마다 배달하는 집이 약 50~60곳은 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주머니는 “왜요? 많나요?” 하며 웃으셨다.
캐리어를 길가에 놓은 채 자리를 비웠을 경우 누가 훔쳐가지는 않느냐고 물으니 “평소에 자주 사먹는 단골 분들이 제가 자리에 없을 때 돈을 캐리어 안에 넣어두고 요구르트를 가져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돈을 갖고 오지 않아도 요구르트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단다. 대부분은 나중에라도 돈을 가져다주는데, 가끔 한 번씩 깜빡하시고 돈을 안 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예전에 비해 길거리에서 요구르트 아주머니들을 많이 볼 수 없는 것과 관련 아주머니는 “요구르트 등 발효식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늘어난 게 원인일 것”이란다. 당연히 영업에도 지장을 받는다고….
그럼에도 아주머니는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니 이 일이 익숙하고 보람도 느껴진단다.
하루 종일 밖에서 계시다 보니 끼니 해결하기도 만만치 않을 터. 대부분 도시락을 싸오지만 가끔은 사먹기도 하신단다.
요구르트 아주머니하면 떠오르는 방긋 웃는 환환 얼굴. 기자의 기억 속엔 ‘천사’로 각인되어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겐 어떨까. 아주머니는 “아무래도 웃는 낯으로 대하다 보니까 조금은 더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호호호”라며 쑥스러워하셨다.
“이젠 웃는 얼굴이 자연스레 배어있어서 자연스럽게 나와요”하시며 또 한 번 환한 웃음을 지으셨다.
이번엔 조금 다른 질문을 했다. 바로 가족이다. 자식들은 막내 빼고 모두 결혼을 했고 막내만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 분은 직장에 다니고 있단다. 자식이 결혼을 했단 말에 아주머니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게 됐다. 아직 기자 또래 고등학생 정도의 아이나 있을까 한 앳된 얼굴인데 의외란 생각이 들었다.
한 남편의 부인으로서, 엄마로서, 요구르트 아주머니로서 사회에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다.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자식들 모두 건강하게 잘 커줬고, 남편도 직장에 잘 다니고 있으니까 지금 삶에 만족하신다면서.
아주머니께 감사하단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오랜만에 요구르트 아주머니의 캐리어 안에 들어있는 시원한 요구르트를 사먹었다. 역시 마트에서 사먹는 것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요구르트 아주머니의 ‘스마일표 요구르트’ 때문은 아닐까?
번듯한 직장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일해도 삶에 만족할 줄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뙤약볕에 앉아 지루하게 손님을 기다리는 고된 일상에도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 너무 멋졌다. 돈을 많이 벌진 못하더라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 만족한다는 그 아름다운 마음….
기자는 요구르트 아주머니의 미소에 ‘묘약’이란 단어를 붙여주고 싶다. 미소가 자꾸 얼굴에 베이다보니 자연스레 젊어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또 좋은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옛말처럼 말이다.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만나고 나서 자주 웃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도 했다. 언젠가는 내 웃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도 절로 웃음이 피어나길 바래본다. 웃으면 복이 온다.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계기가 된 만남이었던 것 같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