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진단 연속인터뷰> 박인배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2

- 자칫 순혈주의로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예술가는 자기 역사와 사회에 대한 정체성을 읽어 내고 활동해야 한다. 외부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모방해서는 진정한 창작품이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제가 민족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이미 순혈적인 것은 없다. 다 섞여 있다. 따라서 외부의 것을 얼마나 잘 수용하느냐의 문제가 뒤따른다.

스트라빈스키의 메소드 연기법도 러시아 전체의 연극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방법이다. 한국에도 한국 사람에 맞는 방법이 많다. 우리 전통적 요소를 살리면 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만의 단절된 특성이라고 믿어 온 것들은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존재한다. 우리 풍물가락의 장단은 터키나 동유럽에도 있다. 이런 점을 보면 근대를 지배했던 서유럽의 예술 태도를 무조건적으로 치켜세워 온 것이 잘못된 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대학로 연극’은 서양의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났다고 보는가.

▲ 벗어났다. 어떤 연극 기법이든 깊이 들어가면 마지막 설명 내용은 자기 관객들하고의 소통과 결부된다. 스트라빈스키 시스템도 결국 연기자의 내면과 관객과의 호응관계를 중시하듯이 말이다.

지금 대학로 배우들은 학교에서 주로 스트라빈스키를 기본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실제 대학로 관객을 만나면 연기의 속도감이랄까, 능청거리는 한국적 장단을 중시한다. 오히려 라이센스 뮤지컬에 참가했던 배우들의 표현 방식이 너무 얽매여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현 정부 들어 지난 정부 시절 적극 활동했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입지가 좁아진 듯한 인상이다. 박 이사장의 활동 폭도 좁아진 것 같은데.

▲ 현 정부 출범 이후 활동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MBC ‘마당놀이’ 연출 이후 특별한 활동이 없었다. 현 정권 문화정책 자체가 다양하고 다원적인 것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조치가 취해졌는지 모르지만, 제가 능력이 없어서 자문위원회에 초청이 안되는 것인지, 내부적으로 배제하는 명단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 6.2 지방선거 당시 한명숙 선거 캠프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 캠프에는 각 부분 별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저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서울시 문화예술의 방향에 대한 정책 공약을 만들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면, 서울시 문화예술 관련 행정 업무를 맡았을 것이란 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조차도 정치와 관련될 수밖에 없기에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유인촌 장관을 봐서라도 맡기 싫은 자리였다.(웃음)

- 현재 서울시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서울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정책은 시민 입장에서 설정된 게 아니다. 디자인 서울? 서울을 디자인 하는 게 시민이 하는 게 아니다. 돈 들여서 가로등 세우는 것과 차이가 없다.

디자인 서울에 1000억을 쏟아 붓는다고 한다. 오페라하우스와 공연센터를 만들면 일반시민들은 평생 참여 못한다. 그 1000억을 500개 동마다 2억씩만 투자해도 각 동네를 재디자인 할 수 있다. 동마다 조그마한 문화센터 하나씩 있는 게 오히려 낫다.

-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천안함 사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검증위에서 문제 제기한 7가지에 대한 것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조사 자체가 부실 내지 허위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모든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데이터 조작의 유혹을 받게 된다. 지금 상황은 결론을 유도해놓고 실험을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엄밀한 측면에서는 실험 태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리포트를 쓴 것이다. 흔히 이런 문제 때문에 논리가 깨지는 경우가 많다.

황우석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놔야 하고 쫓기다보니까 그런 유혹에 빠졌었다. 황우석의 이론적 논리는 오점이 없었다. 다만 그것이 실험을 통해 나와야 하는데, 몇 단계를 뛰어 넘어 결과를 내는 바람에 허위가 된 것이다.



- 4대강 사업 문제도 심각하다.

▲ 강은 저마다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강의 본류뿐 아니라 각 지류 토질의 성격이 다양하다. 4대강 문제는 천안함 문제처럼 하나의 논리 체계가 아니다. 이것을 하나의 논리로 밀어붙이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의 여러 가지 논리 체계가 엇갈려 있다. 논쟁을 시작하면 오랜 기간 걸리는 것인데, 다 생략해버리니 진짜 삽질이 된 것이다.

자연은 한번 훼손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이에 대한 충분한 합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하나밖에 없는 자연 환경으로 실험하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무지막지 할 수 있나. 사람 몸을 수술할 때는 아무리 실력 좋은 의사라 할지라도 반드시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4대강 사업도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건 그야말로 사람 목숨 왔다갔다 하는 대수술과 비견됨에도 무식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꼴이다.

- 국민 동의 없이 4대강 사업이 진행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공직 라인이 공식적으로 못 움직이니까 비선 라인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한 것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분명 비선 조직이 움직였을 것이다. 공식 과정을 다 거치면 속도가 안나니까 비선 조직을 통해 협박하고 움직인 것이다.

그 성과를 재촉하니까 급하면 도청하고 고문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데이터 조작하고, 심지어 대통령 말까지도 도중에 마음대로 해석하고 지시해버리니까 이런 일들이 쭉 내부적으로 누적돼 있었을 것이다.

총리실 민간 사찰 문제에서 알 수 있듯, 자체 폭로 과정에서 비선 조직을 겨냥해서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닌가. 현 정부 몰락의 길은 여러 가지로 예측가능하다. 그러나 먼저, 우리 사회 제도상의 민주적 절차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정치구조가 바뀌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

-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성추행 사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많은 국민들이 놀랐을 것이다. 공인으로서 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 대단히 놀랍고, 실망스러운 발언이었다. 물론 국회의원은 국민들에게 선출된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정도의 언행은 충분히 사퇴할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사태를 강제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국민들에게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면 이것이 실수든, 고의든 관계없이 그 발언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 끝으로,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 국민들이 알아서 잘 평가하겠지만 이명박 정부가 2년 동안 한 게 뭐가 있는지 살펴보면 사실 한 게 없다. 가장 크게 벌여놨던 대운하 사업은 처음부터 시끄럽더니 4대강 사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전히 논란 투성이다.

개혁? 이제까지 대통령들이 취임할 때마다 몇 가지 개혁을 이끌어 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내세울만한 개혁이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지 않겠는가. 아마 현 정부도 많은걸 생각하고 있겠지만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국민의 동의를 전혀 이끌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저는 유신시대부터 광주항쟁과 87민주항쟁을 겪고, 그나마 반쪽이었던 민주정부도 겪어봤다. 현 정권을 보면 박정희가 총 맞아 죽은 것처럼 자기들끼리 내부분란으로 몰락하거나, 아니면 그거 수습하고 유지해가더라도 국민적 저항에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의 공정성이 지켜진다면, 선거에서 계속 질 수도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선거직전에 천안함 사태 결과 발표를 해서 위협을 가했음에도 선거에서 패배했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제스처를 취했다. 냉전이 끝났는데도 전쟁을 조장하려 드니까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현 정부가 앞으로 이런 마인드를 유지한다면 미래가 없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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