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대문구 신설동 대로변의 아주 작은 열쇠가게 하나...
사실 기자의 건망증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바로 열쇠 때문이다. 열쇠를 이용해 여는 문은 때로는 열쇠 구멍이 잘 맞지 않아서 또는 녹슬어서 몇 번이고 문을 흔들거나 해서야 간신히 열곤 했던 기억이 있다. 열쇠를 잘 잃어버려서 새 열쇠를 맞춰야 했던 일도 있다. 열쇠는 누군가의 소중한 것들을 보호해주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임에 틀림없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길가에 앉아 세상구경을 하신다...
이런 중요한 열쇠를 만드시는 분, 요즘은 참 찾기 어렵다. 하지만 회사 근처 대로변에 의자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아주 작은 열쇠가게가 하나 있다(신문사 근처엔 없는 게 없는 것 같다^^).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만든 간이가게다. 이곳의 주인은 할아버지. 주변 사람들에게 듣기론 다른 기술자보다도 더 실력이 좋다고 했다. 게다가 친절하시다는 중요한 요인…(왜냐하면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실 것 같기 때문이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안장섭 할아버지
기자는 이전에 수차례 인터뷰를 시도하다 ‘퇴짜’를 맞곤 했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어서 여러 번 거절당하다 보니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이번에는 정말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담해 지는 것일까? 기자는 다른 인터뷰 때보다 질문도 많이 준비하지 않은 채 성큼성큼 할아버지가 계시는 열쇠가게로 찾아갔다. 처음엔 가게 문이 잠겨있어서 외출을 하신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최고 기온이 34도를 넘는 무더위를 피해 가게 바로 앞에 의자를 꺼내놓고 앉아 계셨던 것이었다. 인터뷰 요청을 했다. 걱정을 많이 할수록 문제는 의외로 잘 풀리는 것 같다. 할아버지는 흔쾌히 응해주셨다.
40년 이상을 열쇠가게를 하시면서 살아오신 안장섭(67세) 할아버지. 먹고 살려고 시작한 일이 평생직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젊은 시절엔 할아버지 표현대로 ‘그럭저럭’ 일을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럭저럭 했어. 노동일 이런 거…허허허”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인터뷰 내내 말씀하시면서 굉장히 부끄러워 하셨다. 그리곤 말을 끝낼 때는 웃음으로 마무리하곤 하셨다.
#할아버지의 일하시는 멋진 모습
아침 7시 40분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하신다. 점심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드신다. 주로 열쇠수리, 잠긴 문 따주는 일 등을 하신다. 요즘은 열쇠를 대신해 ‘디지털 도어록(정해둔 번호를 누르는 형식)’으로 많이 바뀌는 추세. 할아버지는 약 10년 전부터 디지털 도어록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도 물론 디지털 도어록을 설치하신다.
할아버지는 “디지털 도어록은 편리하지만 설치할 때 비싼데 반해 기존 열쇠는 싸지만 잘 잃어버린다”고 하셨다. 기자 생각엔 디지털 도어록은 번호가 유출되기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잘 유출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보통 디지털 도어록은 10만원 이상이고, 열쇠는 3~4만원 정도면 설치할 수 있단다.
#능수능란한 손놀림
할아버지는 “약 40년 동안 열쇠가게를 해왔지만 장사 노하우는 따로 없다”고 잘라말하셨다. “그저 (손님들이) 작게 오면 작게 하고, 많이 오면 많이 한다”는 할아버지의 지론. 할아버지는 “일하면서 특별히 힘든 점은 없다. 요즘 같이 더운 날이면 밖에 나와 있는다”고 하셨다. 이 일을 계속 하시는 특별한 이유 역시 없다. 할아버지는 “그냥 살기 위해 하는 거야, 허허허…” 하며 웃으셨다. 그렇다고 이 일을 하시는 게 행복한 건 아니다. 그럭저럭 사는 것이다. 대답이 참 두루뭉술하셨지만 쑥스러워 하시는 표현으로 들렸다. 할아버지는 “남한테 성가신 소리 안하고 자기 사는 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 가족자랑 좀 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아이 뭘 자랑은 자랑이야.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지 뭐…”라며 쑥스러워 하셨다. 휴가도 따로 안 가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냥 일요일에 쉬니까 낚시나 산이나 다니는 거야~허허”라고 하셨다. 이 일은 그냥 힘닿는 데까지 하실 생각이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손님이 별로 없어 이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할아버지는 “가게를 차려서 열쇠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운영을 못해…”라고 하셨다. 공중전화 부스보다 약간 더 커보이는 가게. 덕분에 자리 세는 따로 들지 않는다.
얘기를 끝내고 사진 좀 찍겠다는 말에 역시나 쑥스러워 하셨다. 그러곤 카메라를 들었더니 경직된 얼굴…. 이리 저리 찍을 때마다 부담스러워 하시는 표정.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위해 음료수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다드리며 “가게 안에서 일하시는 포즈 좀 잡아주세요~”라고 했다. 역시 그래도 일하시는 모습이 제일 멋지고 자연스러우셨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는 할아버지, 항상 건강하시길...^^
소박하지만 특별한 일 없이 평범하게 그럭저럭 사신다는 할아버지. 하지만 그 소소한 삶속에서도 무언가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꼭 성공하려고, 높은 자리에 서려고 아등바등 하는 사람들…. 그 중에는 실패해서 슬럼프에 빠지는 사람들도 많다. 욕심을 부리면 그만큼 인생의 굴곡이 심해진다는 뜻이다. 꼭 성공하진 못하더라도 할아버지처럼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소소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것도 행복을 이어가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