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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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8.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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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세상> 고은



80년대 초, 가난한 신혼 시절 이야깁니다.

유학생 신랑 따라 미국을 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외화반출이 까다로웠을 뿐 아니라 양가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도와줄 상황도 아니었기에, 학비와 생활비를 자급자족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신랑이 학교에서 assistantship을 받아서 등록금은 면제받고 $1,000(1,000,000) 정도 학교에서 월급을 받아 생활하였습니다. 나중엔 저도 학교에서 assistantship을 받아 생활비를 조금($330 정도?) 보탤 수 있었습니다만, 그래 봐야 학교아파트 월세($350, 나중 식구가 늘어서 $600)내고, 식비하고, 어린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항상 빠듯한 가계부로 한 달씩 버텨가는 상황이었지요. 아이에게 들어가는 우유, 시리얼 등은 미국정부에서 매달 주는 무료쿠폰으로 식품점에서 구입했습니다.

학교건물 근처에 은행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은행을 주우러 가재요.

컴컴한 밤에 땅에 떨어진 은행을 줍고 있는데, 지나가던 미국학생들이 봤나 봐요. 동양 애들이 땅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걸 보고 아마 중요한 반지나 목걸이 등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지 다가와서 도와줄까? 묻더군요. 순간 어찌나 민망하던지….

은행에서 나는 냄새, 다 들 아시죠?

아니라고,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고 서둘러 마무리하여 한 봉투씩 주워갖고 와서 아파트 지하 세탁실에서 물에 비벼대며 씻었습니다. 그저 껍질까지 다 벗겨진 은행을 먹어만 봤지, 껍질이 붙어 있는 은행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은행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 줄은 몰랐었습니다. 히야~ 그 냄새란….

고난의 시간을 다 하고 맛보는 은행의 속살 맛은 쫄깃, 고소하였습니다.

땅에 떨어진 은행을 볼 때 마다 그 날의 생각이 납니다. 젊었기에 가능했던, 희망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 가난.

나라도 잘 살고 부모도 잘 살게 된 요즘, 넉넉한 유학생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넉넉해진 주머니 사정만큼 그들의 마음도 넉넉하길 바랍니다.

한옥마을 길에 떨어진 은행을 밟고, 불현듯 생각난 옛 이야기입니다.

오늘 똥, 아니 은행 밟았습니다.

<고은 님은 포토아카데미(http://cafe.daum.net/photoac)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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