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택시비 다 채웠어~ 하하하”
“오늘은 택시비 다 채웠어~ 하하하”
  • 승인 2010.09.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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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자> 연재-우리의 이웃들을 찾아서: 뻥튀기 파는 할머니
9월이 코앞이지만 날짜를 잊은 더위다. 뜨거운 햇살은 삼겹살이라도 되는 냥 내 살을 지글지글 굽는다. 곧 뜯어먹어도 될 듯 잘 구워졌다. 새까맣게 탄 팔이 진짜 내 팔이 맞는 것인지 만져보곤 한다. 하필 기자가 이웃들을 찾으러가는 날이면 유난히 더 찌는 것 같다. 너무 밝은 햇살에 눈뜨기도 힘들 정도다. 기다려주지도 않는 땀방울이 허겁지겁 얼굴을 타고 내려온다. 1시간정도 이 분, 저 분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더운 햇살 밑으로 내밀려야 했다. 다음부터는 사전에 약속을 하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더위와 오랜 씨름을 하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될 이웃을 만났다. 바로 뻥튀기를 파는 할머니.
회사 근처에 있는 한 재수학원 맞은편의 작은 수레가 할머니의 일터다. 수레 위에는 뻥튀기 외에도 건빵, 강냉이 등이 쌓여있다. 가끔 지나다니다 보면 혼자 수레 옆에 앉아 계시는 게 다소 외로워 보였다. 오늘은 할머니의 말벗도 되어 드리기 위해 기자가 나섰다.
원래 과일 장사를 하며 떡까지 함께 파셨다는 할머니. 무릎도 아프고 힘이 들어 장사를 접고 이곳으로 오셨단다. 할머니는 벌써 연세가 77세나 되셨다. 성치 않은 몸에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바람도 쐴 겸 나오신단다. 몸이 많이 좋지 않을 때에는 안 나오신다.



할머니는 “매일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야~”라고 하셨다. 오전 11시에 출근하셔서 오후 6시에 들어가신다는 할머니. 아프신 몸 때문에 아들과 손자가 와서 뒷정리를 한 뒤 모시고 간다. 집은 자리 잡은 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보통 젊은 사람들 걸음으로 10~15분. 하지만 집이 높은 곳에 위치한 데다 다리까지 아프셔서 택시를 타고 퇴근하신다. 할머니는 “하루에 15000원 정도 벌어”라며 “오늘은 택시 값 다 채웠어”라며 웃으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과일이랑 떡 장사 할 때는 1년에 3000만원씩은 벌었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몇몇 사람들이 들러 자주 사가는 모습. 뻥튀기 한 봉지에 1000원이라니 너무 싸다며 2000원에 올려 팔라는 손님도 있다. 할머니는 “올리면 안 팔려~”라고 하셨다. 사가는 사람들은 자주 오는 단골인 듯 했다. 대부분 회사원들로 보였다.
할머니는 연세 때문인지 아프신 곳도 많으시다. 다리는 물론이요, 어깨, 등도 성하지 않다. 다행히 앉아 계셔도 심심하지 않은 건 학원에서 나오는 재수생들 덕분이다. 점심시간, 저녁시간이면 밥을 사 먹으러 학원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게 참 재미있다고 하셨다. 대부분 아이들과 친하고 아는 척 인사도 자주 한다. 기자가 생각하기엔 매일 똑같이 공부에 찌들어 있는 친구들. 하지만 77세인 할머니의 눈에는 그저 좋을 때이고, 재미있는 풍경이다.
할머니는 아들자랑과 손자자랑도 늘어놓으셨다. 아들은 다쳐서 수술을 한 탓에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손자는 학교에 다니면서 장학금도 받는데다 점잖고 착하다. 할머니의 조용조용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기자는 계속 맞장구를 치며 최대한 열심히 들어보려고 했다.
조용조용한 목소리이지만 할머니는 이야기 나누는 걸 굉장히 좋아하시는 걸로 보였다. 말동무가 없어서 그렇지 가끔 단골손님이라도 오면 재미있는 말들도 툭툭 잘 뱉곤 하셨다.



이야기가 끝나고 할머니께 시원한 주스를 사드렸다. 할머니는 계속 사양하시며 기자에게 먹으라고 했다. 결국 주스를 받아 드신 할머니는 대신 강냉이 한 봉지를 기자의 손에 쥐어주셨다. 날씨까지 더운데다 장사도 잘 안되는데 사양하는 기자의 손에 끝내 강냉이 한 봉지를 쥐어주시는 할머니가 너무 감사했다.
젊은 시절은 가고 편하지 않은 몸 상태에서 그냥 바람이나 쐬며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러 나오신다는 할머니. 할머니는 단지 돈을 벌려고 나오시는 게 아니라 세상살이 속정을 함께 나눌 말벗을 찾으러 무더위 속에 앉아계시는 것으로 보였다. 다음부터는 인사도 하고 자주 사러 올 테니 아는 척 좀 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하하하. 알겠어, 알겠어”하시며 시원하게 웃으셨다. 그 시원한 웃음만큼 할머니가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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