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자> 우리 이웃들을 찾아서: 수제 센베이 과자집

아이들이 군것질을 하면 부모님은 항상 걱정을 하게 된다. 과일이나 우유 등 건강에 해롭지 않은 것들을 먹으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따라주질 않는다. 그저 달콤하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과자들을 찾는다.
기자도 역시나 과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어릴 적 잠깐 시골에 살았던 이유 때문인지 우리 고유의 음식도 잘 먹는 편이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어릴 때는 나물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자는 명절날이 즐겁기만 하다. 특히 달달한 유과와 약과는 명절 때 빼려야 뺄 수 없는 맛있는 먹거리다.





또 우리의 과자하면 ‘센베이 과자’도 뺄 수 없다. 요즘엔 보기조차 힘들지만 우리 아빠 세대 정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의 아주 소중한 간식거리가 돼주었다는 바로 그 과자 말이다.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김이 묻어있는 과자, 땅콩이 들어있는 과자, 생강 맛이 나는 과자 등등…. 가끔 기자의 아빠는 옛날 생각이 나서 센베이 과자를 사오기도 하신다.
사실 ‘센베이’라는 말은 일본 말이다. 우리 말로는 ‘전병(煎?)’이나 ‘맛과자’라고 쓴다. 그대로 번역하면 달일 전(煎), 떡 병(餠). 이 말 역시 순수한 우리말이 아닌 중국어다. ‘지지는 떡’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쌀가루뿐이 아닌 밀가루도 사용하지만, 그래도 중국어의 영향에 의해 ‘병(떡)’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제각각의 새로운 형태로 발전됐다고 한다. 이름도 각각의 나라에 맞게 바뀌어 ‘전병’과 ‘센베이’로 나뉘게 됐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 시기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음력 1월 1일과 3월 3일의 특별한 축일(祝日)에만 해 먹었는데, 어떤 재료를 섞은 밀가루 반죽을 조금씩 뜯어 얇게 펴서 기름에 튀긴 것이다. 이런 중국의 전병이 일본에 들어 온 때는 8세기말 9세기 초(헤이안시대 平安時代, 794~1192) 승려인 코오보오대사(弘法大師, 774~835)가 중국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이다. 이때부터 전병은 중국에서 건너온 독특한 과자로 조금씩 알려져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 되어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제조법이 중국에서 만드는 방법과는 달라졌는데, 대략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초기까지 밀가루에 설탕과 물을 넣고 반죽한 후 증기로 찌고, 그 큰 덩어리에서 조금씩 떼어서 얇고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말린 후, 한 장씩 화로 위에서 구워냈다고 한다. (출처-네이버)


 
# 청량리 시장 뒷편 숨은듯 자리한 `즉석생과자집`에선
이른 새벽부터 과자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난다.



기자는 우리 국민들에게 알려져 있는 ‘센베이’라는 단어를 편의상 그냥 쓰기로 한다. 이번엔 이 과자를 직접 만드는 맛있기로 소문난 집을 찾아갔다. 가게 이름은 ‘즉석생과자집’. 청량리시장 뒤편 자그마한 도로가에 숨겨진 듯 자리한 이 가게는 기자가 걸어서 출근할 때 많이 보던 곳. 인터뷰를 위해 다시 걸어가는 길. 비가 내리는데다 날씨까지 더웠지만 주인아저씨의 흔쾌한 인터뷰 승낙으로 모두 날아가 버린 짜증.
과자 집이 문을 연 건 45년여 전. 처음 15년간은 장인어른이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건강이 좋아지지 않으면서 직장에 다니던 사위에게 물려주게 된 것이다. 지금은 부인과 같이 과자를 만드신다.
출근 시간은 새벽 5시. 답십리 쪽에 있는 집에서 새벽 4시30분에 나온다. 이 시간이면 한창 꿈속에 빠져있을 기자에겐 놀라운 일. 이렇게 일찍 나오다보니 아침도 주로 가게에서 먹는 편이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점심은 주변 식당에서 배달을 시켜 해결한다.



# 기계적으로 가마에 반죽을 넣어 과자를
구워내는 주인아저씨의 손길이 분주하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기자에게 건네진 아주 두툼하면서도 맛있게 생긴 센베이 과자 하나. 입에 넣자 순간 느껴지는 구수함과 달콤함. 기존 시중에서 파는 딱딱하고 얇은 모양의 센베이 과자와는 확연히 다른 맛이 느껴졌다.
기자는 다른 것보다 더 맛있는 비법을 물어 보았다. 아저씨는 “대대로 전수 받은 건 없다”며 “비법이 있는데 알려줄 순 없다”고 했다. 이미 여러 번 과자 맛의 비법을 전수 받으러 온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주로 사가는 사람들은 단골. 한 번 사먹은 뒤엔 잊을 수 없어 다시 자주 찾아온다. 때로는 전화번호를 알아간 뒤 전화를 걸어 박스로 보내달라고도 한다.
과자는 한 봉지에 3500~4000원이다. 다들 들으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돈이 아깝지 않을 그 황홀한 맛이란…. 사람들은 일단 맛을 보고서 인정하고, 또 직접 만드는 것을 보고 또 인정한다. 오히려 너무 싼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아저씨는 “다른 센베이 과자와는 품질비교가 안 된다”며 “잣, 땅콩, 부채, 깨 과자 등 종류도 다양한데다 요즘은 재료값도 비싸다”라고 했다. 이렇게 종류도 다양하다보니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즐겨 찾는다.
온통 수작업으로 직접 만드는 지라 힘든 점이 많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정말 최악이다. ‘가마’(굽는 기계)에 불을 7시간 씩 때는데 그 열기가 50도 이상이다. 에어컨은 있으나 찬바람이 불면 안돼서 틀지 않고 일을 한다. 한마디로 찜질방에서 일하는 셈이다. 여름엔 더운 날씨 때문에 7시간만 굽는 일을 하고, 겨울엔 13~14시간씩 하루 종일 굽는다. 힘들고 많이 못 벌어도 계속 해야 하신단다. 가업이고 생업이여서다.
한창 잘나가던 과자회사들에게 타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바로 ‘멜라민’. 하지만 센베이 과자는 몸에 해로운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 그 사건때도 전혀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더 장사가 잘됐을 정도.
아저씨에겐 자녀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고등학교 3학년이고, 한 명은 중학교 1학년이다. 그들도 아버지가 만드는 과자를 무척 좋아한다. 가게에도 자주 찾아온다. 아저씨는 “원하면 이 일을 대물림 해주고 싶다”며 “하지만 온통 수작업이고 힘들어서 안했으면 한다”고 했다.
요즘 경기가 어렵다보니 장사가 안 돼서 문 닫는 집이 많다. 아저씨는 “우리는 단골손님들 덕에 문 닫을 일이 없다”고 했다.
가끔 오랫동안 일하다보면 일에 대한 권태기도 올 터. 아저씨는 “그래도 문을 하루라도 닫으면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이 실망하실 까봐 못 닫는다”고 하셨다.
끝으로 가족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아이들이 여태껏 말썽을 부리지 않아서 고맙다. 지금 이대로 자라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



새벽부터 뜨거운 열기와 실랑이 하느라 힘드신 아저씨, 아주머니. 그래도 천직이려니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블로그나 잡지에 소개될정도로 유명하지만 자만하지도 않는다. 이 작은 가게에서는 새벽이면 고소한 냄새가 부지런히 피어난다. 그 고소한 냄새가 언제까지나 그치지 않길 바래본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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