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자> 우리 이웃들을 찾아서-행복을 만드는 김밥 집

초등학생 시절 엄마는 학교 앞에서 피아노 학원을 했다. 덕분에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이 아닌 학원으로 바로 가곤 했다. 한창 돌아다니며 가만히 있지를 못했던 터라 수시로 배가 고팠고 그럴 때마다 학원은 기자가 간식을 먹는 장소 역할도 충실히 해주었다.



# 청량 초등학교 인근의 재래시장 휘경시장 안엔 두툼한
행복 김밥을 만들어 파는 조그마한 김밥 집이 있다.


엄마가 집에서 간식을 싸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때로 바쁘실 때는 근처 분식점 등에서 사먹는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교 앞의 특성상 주변에 간식거리를 파는 집들이 많았다. 떡볶이, 순대, 빵 등….
그 중 기자가 가장 좋아했던 간식은 바로 컵라면과 김밥이었다. 이 둘은 특히 추운 겨울 기막힌 조화를 이뤄낸다. 아빠와 함께 등산을 할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빠를 따라 산에 다녔던 기자. 추운 겨울 눈 쌓인 산, 바람이 잘 닿지 않는 암벽의 구석 등지에 자리를 잡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얼어붙은 김밥을 푹 담가 먹을 때의 그 황홀함. 얼어붙었던 몸은 사르르 눈 녹듯 녹아내렸고, 힘든 산행으로 지쳤던 몸에도 활기가 되살아났다. 그때마다 ‘정말 환상이다’를 외치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컵라면과 김밥을 먹어치우곤 했다.





기자가 다녔던 청량리초등학교 앞엔 휘경시장이 있다. 휘경시장 안에 작게 자리 잡고 있는 ‘회기김밥’. 이 곳 김밥 맛은 그야말로 ‘따봉’이었다. 주문을 하면 그때그때 직접 말아서 파는 건 기본이다. 여러 가지 재료가 고루 들어있는 김밥은 다른 집에서 파는 김밥보다 훨씬 더 컸다.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 후 거의 가보지 못했고 그래서 배가 고플 때면 항상 생각이 났던 그 김밥. 이번엔 어떤 이웃을 만나볼까 고민하던 중 문득 떠오른 그 집. 아직까지 장사는 하고 있을까, 주인은 바뀌지 않았을까, 그때 그 김밥 맛은 그대로일까…. 여러 의문을 안은 채 그곳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반갑게 기자를 맞아주는 ‘회기김밥’ 간판. 게다가 주인아주머니도, 김밥도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워낙 왈가닥이었던 기자를 기억하고 알아봐주시는 주인아주머니의 대단한 센스! 




같은 자리에서 20년 동안 김밥을 파신 아주머니(결사 거부하셔서 결국 연세와 성함은 알아내지 못했다^^:). 가게를 열기 전에는 집에서 살림을 하며 지냈단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등굣길에 보면 어느 때고 활짝 문이 열려있던 김밥 집. 도대체 몇 시에 문을 여는 것일까? 아주머니는 아침식사를 거른 채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벽 6시에 나와 오후 7시까지 장사를 하신다고 했다.
요즘은 장사가 잘 안 되는 편이다. 큰길가에 대형마트가 생긴 뒤 재래시장인 이곳 휘경시장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곳 김밥 맛을 아는 일부 단골들이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다.
재료는 매일 아침에 준비한다. 출근하는 길 이곳에서 가까운 재래시장인 경동시장에 직접 들러 재료를 사온다. 덕분에 정말 신선하고 안전하다. 집은 그리 멀지 않다. 아주머니는 “걸어서는 못 다니고 차를 타고 20여분이 걸린다”고 했다.
김밥을 마는 일은 모두 손으로 직접 해야 하는 일이어서 힘이 든다. 아주머니는 “나이를 먹으니까 때때로 몸살감기도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해오던 일이니까 열심히 하고 있다고. 아주머니는 “나중에 일을 그만두는 날이 오면 운동도 하고 여가생활도 즐기면서 살 것”이라고 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주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재료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가족자랑 좀 해달라는 말에 극구 사양하시던 아주머니. “자랑할 것도 없다”더니 기자의 끈질긴 매달림에 결국 손을 드시고 말았다. 남편은 직장을 다니다 정년퇴직을 했다. 자식은 딸 둘에 아들 하나. 모두들 결혼을 했단다. 아주머니는 “우리 아들도 기자”라며 “인터넷신문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해주셨다.
인터뷰 중간 단체주문이 들어왔다. 질문을 잇기가 죄송스러울 정도로 갑자기 바빠지는 움직임. 하지만 20년의 연륜을 증명하는 빠른 손놀림으로 금세 수북이 쌓여가는 김밥. 아주머니는 “이 많은 걸…금방 하지?”라며 활짝 웃으셨다. 기자도 맞장구치며 “정말 빠르시네요!”라고 했다.



# 인터뷰 도중 단체 주문이 들어오자 아주머니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일과 행복에 대해 물었다. 아주머니는 “때로는 힘도 들지만 여태껏 계속 해오던 일이라 행복하다”며 “행복은 내 마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셨다.
“욕심은 끝이 없는 거야. 돈 잘 버는 사람만 쳐다보면 목만 아프지. 근처에서 나보다 잘살지 못하는 사람을 봐. 그러면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아주머니는 말끝에 “어때…명언이지?”라며 유머도 잊지 않으셨다. 맞는 말이다. 그저 높은 곳만 보고 달리는 요즘 사람들. 그들이 바라보는 높은 곳은 커트라인도 없다. 자신이 행복한 지도 모르고 무조건 더 높이 올라가려고만 한다. 욕심에 끝이 없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이런 현실을 지적하신 것이다.
자식들에게도 당부도 잊지 않았다. “모두들 남편과 부인에게 잘하고 성실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끝났다. 사진을 찍겠다는 말에 얼굴은 절대로 나와선 안 된다며 자꾸 고개를 돌리시는 아주머니. 그리곤 찍은 사진마다 검사를 하셨다.^^ 기자가 긴장될 정도로 말이다.(하하;;)
아주머니는 작은 김밥 집에서 20여년 동안 일하시며 행복하게 살고 계신다. 과연 대기업 등지에서 일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빡빡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행복을 느끼긴 하는 걸까? 과연 이웃들을 돌아볼 여유는 있는 걸까? 항상 더 높은 곳만 쳐다보며 지금의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주머니의 한마디 한마디가 교훈으로 다가왔다. 목이 빠질 정도로 위만 보고 달리지 말고, 나보다 못한 이웃들도 생각하며,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에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되겠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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