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얼굴들, 모두 웃으며 학교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 얼굴들, 모두 웃으며 학교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승인 2010.10.2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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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수시시험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후 방학 때처럼 평일에 과외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주말에 과외를 몰아서 하다 보니 평일 보다 주말이 더 힘들다. 즐거운 금요일 밤이 아니라, 끔찍한 금요일 밤이다. 12시가 슬슬 넘어가는 늦은 시간이 되면 내일이 밝아온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암담해진다. 평일보다 더 이른 기상에, 통학시간 5분 영광의 학교 앞 자취생에게는 고문과도 같은 아침의 지하철. 금 같은 아침잠을 포기할 수 없어 아침식사는 거르기 일쑤고, 그렇게 주린 배를 움켜지고 두 시간 가량을 떠들고 나면 그야말로 녹초가 되고 만다.




그걸로 끝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게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한두 시간 뒤 또 다른 과외를 하러 집을 나서야 한다. 그렇게 주말 동안 노동(?)에 시달리고 나면, 다시 월요일 아침이 밝는다. ‘끝이다!’ 하는 해방감은 온전히 반납이다. 지금쯤 가장 괴로울 내 두 고3 학생들의 ‘해방일’이 오기 전까진 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말의 아침이 밝았다. 누구는 팔자 좋게 늦잠이나 자고 있겠지, 괜히 억울해서 알람시계에 화풀이를 했다. 꾸물꾸물 하다 보니 시간이 빠듯해져, 걸음을 재촉해 역으로 갔다. 일요일 아침임에도 어째 사람이 조금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두 시간 가량의 입노동(?)을 마치고 다시 지하철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가 않았다. 배에선 이제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꼬르륵 꼬르륵 웅변을 해대고, 이렇게 녹초가 되었는데도 오늘의 일과를 아직 ‘절반’ 밖에 끝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내 무거운 몸뚱이만큼이나 눈꺼풀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져 왔다. 반쯤 꿈나라에 가 앉은 내 정신에도, 유독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을 어렴풋 알아챌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하자 눈이 반짝 떠졌다. 비몽사몽간에 내리긴 내렸지만, 순간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나 많단 말인가!




내가 타야할 버스는 2번 버스. 회기역 앞에서 우리 집 앞까지 닿는 버스다. 하지만 1번 버스가 쉴 새 없이 나르고 있는 인파에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1번 버스라면 우리 학교로부터 오는 버스다. 오늘 우리 학교에 무슨 행사라도 있나? 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다음 과외에 가려면 빠듯하지만…. 잠시 갈등을 했다.
그렇지만 너무 궁금했다. 홀린 듯 1번 버스에 올라탔다. 끔찍한 교통체증이었다. 회기역에서 경희대까지의 그 짧은 거리가, 이렇게도 길 줄이야. 도로에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다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왜 내가 1번 버스를 탔던가, 슬슬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 걸려서야 도착한 정문 앞에서, 이 인파의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전반에 수리문제가 어렵게 출제 되었답니다!”하며 뭔가 소책자 같은 걸 흔들어 보이는 사람, “시계 있습니다!” 비닐 포장된 시계를 다발로 눈앞에 들이미는 사람. 그리고 그들 너머로 고사장을 확인하는 긴장어린 표정의 수험생들, 학부모님들. 오늘이 바로, 우리학교의 1차 수시일이었다!
정문을 넘어서 후문으로 빠져나올 때까지, 오전반의 수시시험이 끝난 학교는, 시험일 특유의 무거운 공기 냄새가 났다. 비 개인 청량감, 그 뒤에 숨겨진 한숨들이 맡아지는 것만 같은. 그 묘하게 가라앉은 공기의 무게에, 내 고3때, 엄마와 함께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떨리는 맘으로 시험장으로 향하던 그때의 기억이 문득 고개를 쳐들었다. 얼마나 떨리던지.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을 드나듦에도 도저히 개운해지지 않는 기분에,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시험을 치룰 수밖에 없었었다. 날더러 뭐라도 좀 먹으라시던 어머니 당신도 아침은 끝내 드시질 못하셨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내 표정과 차마 시험장을 뜨지 못하고 아직도 저기 저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이들의 얼굴은 같은 표정일까. 오전 시험이 끝난 학교는 스산하기까지 했다. 법대 문 앞에 붙은 공지를 읽어보았다. 오후 시험은 2시였다. 잠깐, 잠깐 들릴까. 과외가기 전에 잠깐만.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2시.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장을 확인하는 얼굴, 두 손 모은 부모님들의 얼굴. 내 옛날의 얼굴과 이런 별 볼일 없는 나를 선생님이랍시고 믿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 사랑하는 내 동생의 얼굴, 그리고 내 부모님들의 얼굴이 그 얼굴들에 겹쳤다가 흩어진다. 대입이 뭐라고. 대입이 끝나면, 취업이란 괴물이 또 기다리고 있고, 취업을 넘고 나서도 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겠지. 내 잘못은 아니지만, 저 치열한 얼굴들 앞에 괜스레 미안해진다. 아니, 과연 내 잘못이 아닌가. 입 다물고 있는, 이렇게도 얌전하고 착하게 굴고 있는 내가, 과연 잘못이 아닌가. 잘 모르겠다. 다만, 두어 시간 뒤 저 얼굴들이 모두 웃으며 학교를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준비한 만큼만 답안지에 술술 쓰고 나오길! 행운을 빈다. 자랑스러운 내 동생, 우리 예쁜 학생 두 명,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험생들 모두에게. 부디 좋은 결과 있기를.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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