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서 30여년, ‘불 고데기’ 쓰는 미용실을 아십니까?
한 자리서 30여년, ‘불 고데기’ 쓰는 미용실을 아십니까?
  • 승인 2010.10.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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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자> 우리 이웃들을 찾아서- 경희대 인근의 ‘회기미용실’
기자가 사는 동네엔 대학교가 모여 있다. 경희대, 고려대, 외대, 시립대 등…. 이렇게 대학교가 많이 몰려 있는 대학가여도 예전에는 제대로 된 느낌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새로운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화장품가게, 카페, 옷가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 30년 경력의 노련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자르시는
회기미용실 김준임 아주머니. 젊은 남자 손님도 단골로 만드는 실력이다.



이 동네에서 2~3살 때부터 산 기자 입장에선 점점 바뀌어 가는 대학로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도로는 모두 아스팔트로 포장됐고, 사람들도 점점 많아진다. 게다가 아이들의 놀이터 역할도 하는 문방구가 없어진 자리에 팬시점이 들어섰다. 할머니 떡볶이 집이 없어진 자리에 유명 체인점 떡볶이 집이 들어섰다. 그 이외에도 값비싼 커피, 도넛, 아이스크림, 스파게티 가게 등 외국문화들만 집중돼 있다.
어릴 때 집 앞에서 울퉁불퉁한 바닥에 크레파스로 선을 그려 땅따먹기를 하며 놀았던 추억이 그립다. 좁은 골목에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아 돗자리를 펴놓고 동네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했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점점 새로운 것, 외래문화에만 익숙해지고 있다. 최신형 핸드폰을 갖지 않으면 창피하게 생각하고, 꼭 명품가방과 구두를 신어야 자세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어쩌다가 이런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기자는 흔히 볼 수 없는 옛 것을 찾기로 결심했다. 이번 이웃의 키워드다. 말했다시피 기자의 동네는 대학가라 옛 것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끝까지 찾아 다녔다. 큰길가에서 조금만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아직까지 자리를 잡고 있는 옛날가게들이 몇몇 있다. 요즘 아이들은 거의 알지 못할 이용원, 아직까지도 초등학생들의 발길을 붙잡는 오래된 떡볶이 집 등….




기자는 그 중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미용실을 찾았다. 간판조차 없는 미용실은 밖에서 봐도 낡은 정겨움이 묻어났다. 요즘 미용실들에선 머리를 노랗게, 빨갛게 염색한 언니, 오빠들이 검은색의 세련된 옷을 입고 문만 열면 “어서 오세요” 합창을 한다. 문을 열기조차 부담스럽다.
일단 이 미용실은 그런 미용실들과는 달리 밖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불투명한 유리문엔 ‘회기미용실’이라는 오래된 글귀가 붙어 있다.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없어 한가하신지 아주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우선 벽지와 바닥, 거울에서부터 정감이 느껴졌다. 요즘 가게들은 너무 깨끗하고 화려한 색으로 내부를 꾸며 부담이 많이 되는데 이 미용실은 절로 의자에 엉덩이부터 붙이게 한다. 그만큼 편하다는 얘기다. 아주머니가 웃는 얼굴로 반겨주셨다. 기자는 쑥스러워 하시는 아주머니를 설득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성함은 김준임. 올해 57세이시다. 아주머니는 연세를 얘기하시던 중 “만으로는 55세~”를 강조하셨다.^^  아주머니가 미용실을 차린 것은 30세 무렵. 거의 30년이 다 돼가는 셈이다. 같은 자리에서만 계속 해오셨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중간 내부수리도 했단다.
요즘에는 젊은이들 취향의 깨끗하고 고상한 인테리어를 한 미용실이 많은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주머니는 “단골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젊은 사람들도 찾아온다”고 하셨다. “원래는 손님들이 많은 편인데 하필 오늘따라 한가하다”고 하셨다. 기자는 “인터뷰 하시면서 좀 쉬시라고 내일 오시려나 봐요~”라고 했다.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하셔서 오후 8시에 퇴근 하신다. 혼자서 거의 12시간 일을 하시는 셈이다. 게다가 일주일 중 일요일만 쉬신단다. 연세도 많으신데 부지런히 일을 하시는 모습이 멋져보였다.
아무래도 약 30여년 미용실을 하다 보니 이곳 미용실만의 특별한 자랑거리도 있을 터. 아주머니는 미용실 앞 아파트에 살던 꽤 잘나가던 집 주부들의 머리를 해준 이야기를 꺼냈다. 또 하나 눈길을 사로잡는 것, 바로 요즘엔 거의 볼 수 없는 ‘불 고데기’다. 예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던 그 불 고데기를 이곳에서 만난 것이다. 불 고데기는 말 그대로 쇠로 된 고데기를 불에 데운 다음 머리를 감거나 펴는 데 쓰는 것이다. 요즘은 전자 고데기가 나와 함께 사용하고 있지만 가끔은 불 고데기를 원하는 손님도 있단다. 




손님들은 주로 가정주부들이다. 주부들의 스타일 일명 ‘빠마머리’(파마머리)를 많이 하고, 스트레이트도 많이 한단다. 파마는 2만원이고, 커트는 5000원이다. 요즘 다른 웬만한 미용실들의 경우 파마는 4~5만원에서 비싸면 10만원이 넘으며 커트는 8000원에서 비싸면 2~3만원까지 한다. 이렇게 싸게 해도 손해는 없을까? 아주머니는 “돈 많이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아무래도 일도 오래하고, 연세도 많다 보니 일하시는 게 편치는 않다. 아주머니는 “목 디스크가 있어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닌다”며 “오늘도 받고 왔다”고 하셨다.
가족은 남편과 딸 셋이 있다. 남편은 강원도 철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왔다갔다 하신단다. 큰 딸은 일본에 가있고, 둘째 딸은 서울대병원 간호사, 셋째 딸은 서울대 미대 2학년이다. 이런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시면서도 세 딸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낸 아주머니가 멋져 보였다.
아주머니는 셋째 딸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일을 하실 것이란다. “그 후에는 남편이랑 같이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 (농사를) 많이는 못 지어도 조금씩이라도 지을 것”이라고 하셨다.
행복에 대해 물었다. 아주머니는 “지금 일하는 게 행복이다.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한 것 아니겠나”라고 하셨다. 끝으로 가족에게 “건강하고 일 열심히 잘하면 된다”고 당부도 있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던 중 젊은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역시나 단골. 아주머니는 그 손님의 원래 스타일을 딱 아는 듯 30년 경력의 노련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잘랐다. 중간중간 어색하지 않은 대화도 이어가며 말이다.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작은 미용실에서는 오늘도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단골손님들과 30여년간 변함없는 정을 나누며 살아오신 아주머니. 돈과 상관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시는 게 즐겁다는 아주머니. 일을 그만두면 농사를 짓고 싶다는 아주머니의 작고 소박한 소원에서 한껏 정겨움이 묻어난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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