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아∼그 아줌마!

우리 동네엔 유명한 아주머니 한분이 계시다. 그 아주머니의 유명세는 근방 대학생들과 주민들에게 인상착의만 설명해도 “아∼그 아줌마!”하며 손뼉을 짝 칠 정도다. 부스스한 머리, 어깨보다 더 앞쪽으로 내민 골반과 그 상태로 어기적어기적 걷는 걸음걸이, 바짝 마른 몸에 키도 작지 않고 불거져 나온 뼈마디며 치켜 올라간 눈썹 등으로 성마른 듯한 인상이다. 거미다리처럼 가늘고 긴 손가락부터 중력을 거스르는 머리칼까지, 101마리 달마시안이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역, 크루엘라와 꼭 빼닮은 모습이다.



나는 혼자서, 그녀를 ‘회기동 크루엘라’라고 부르고 있다. 처음 그녀와 마주친 건 늦은 저녁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아 그야말로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저어기 멀리서 어떤 아주머니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기척으로 보아 한 사람이 틀림없는데 저렇듯 큰소리로 깔깔 웃기도 하고 무어라 외치기도 하는 걸로 보아,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추호의 의심도 없이 난 그리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다가 결국 엇갈리는 순간까지도 그 아주머니가 무어라 하는지, 또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렇게 큰 소리로 통화를 하다니, 하며 인상을 좀 찌푸렸을 뿐이다.
그렇지만 얼핏, 나와 엇갈리는 그 순간에 아주머니가 내 쪽을 향해 몸을 빙글 돌리는 것을 보았던 것 같다. 이상함을 느낌과 동시에 단순히 소음에 불과하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드디어 ‘언어’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요즘 애들은 참 예쁘네! 난 그래서 화가 나! 아주 내가 정신병원에 가야 그만두지? 요즘 애들은 참 예쁘네! 난 그래서 화가 나! 아주 내가 정신병원에 가야 그만두지?”
같은 말을 목청껏 반복해서 말씀하시고 계셨다. 허리춤에 손을 딱 가져다 대고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면서. 무섭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람. 날 더러 요즘 애들이 예쁘다고 했으니 내가 예쁘다는 건가. 그럼 칭찬 아닌가. 근데 왜 또 그게 화가 나신다는 거지? 그리고 뭘 그만두라는 건지. 가로등만 붉은 저녁 골목에 사람 그림자라곤 그 아주머니와 내 그림자 밖에 없는데, 괜히 아는 체라도 했다간 좋은 일 일어날 리가 없으니 다만 발걸음만 재촉했다. 내가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아주머니께서는 저 말만 계속해서 소리치셨다. 집에 들어와서 생각해봐도 역시나 어이없는 일이었다.



가끔 집에 있으면 창밖에서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었다. 난 그때마다 싸움이 났는데 왜 아주머니 목소리만 들리는 건가 의아했었는데, 이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친구에게 문자로, [미친 아줌마 만났어]라고 말했더니, 대번에 [아 누군지 알아ㅋㅋ]하는 답장이 날아온다. 들어보니, 이미 그 아주머니는 유명인사라고.
크루엘라 아줌마 목격담은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새벽녘에 누군가가 쇳소리로 ‘전하’를 찾기도 하고, ‘귀신’을 쫓는다며 본인이 더 무섭게 희희 거리기도 해서 연극 연습이라도 하는 건가 하고 내다 봤더니 크루엘라 아줌마가 있었다거나, 버스정류장에서 어떤 아저씨에게 자기 돈 떼먹고 도망간 놈이라고 다짜고짜 욕을 해대는 걸 봤다거나, 어떤 여학생에게 욕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 여학생이 결국 울음을 터트려 지나가는 청년이 도와줬다는 이야기까지.
아이들의 목격담을 종합해본 결과 크루엘라 아줌마의 기본패턴은 무어라 혼자 중얼거리다가, 눈에 띄는 사람이나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 욕을 해대는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하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다만 상대방이 만만치 않은 상대일 때는 그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 정도?
이야기를 듣다보니 신기한 사실을 알아 낼 수 있었다. 다들 그 아주머니가 ‘우리 동네 미친아줌마’라고 알고 있다는 점이다. 외대 후문 쪽에 살고 있는 나도, 경희대 중문에 살고 있는 친구도, 경희대 정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도, 회기역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도 모두 그 아줌마는 자기 동네에서 자주 목격되어진다고 주장했다. 아주머니의 신출귀몰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주머니는 회기동으로부터 이문동까지 큰 8자를 그리며 이동하시는 것 같았다. 하루에 몇 번씩 다른 장소에 있는 게 발견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다급하게 걸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받은 전화에서는 친구 목소리 담뿍 웃음이 묻어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야! 크루엘라 아줌마가ㅋㅋㅋ.”
“???크루엘라 아줌마가 뭐?”
“지금 외대 후문에서 청바지 팔고 있어. 내가 입는 거보다 니들이 입으면 더 예쁘다고 소리치면서 팔고 있어ㅋㅋㅋㅋㅋㅋ.”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뭐지? 그럼 지금까지는 노이즈마케팅이었나? 어쨌거나 영 우스운 상황에 나도 같이 낄낄대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친구는 회기역 근처를 지나다가 그 아주머니께서 죽을 파는 가게에서 다른 또래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크루엘라 아주머니와 대화는 양립할 수 없는 단어다. 그렇지만, 분명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했다. 소리도 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가만히 들었다가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입을 가리며 웃기까지 했었다고! 그것은 틀림없는 ‘대화’다, ‘싸움’이 아니라.
크루엘라 아줌마는 미친 아줌마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지만 평상시의 그녀의 행색은 분명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제야, 나는, 크루엘라 아줌마도 ‘정상적인 아줌마’였었을 거라는 당연한 사실에 미쳤다. 처음부터, 날 때부터 미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크루엘라 아줌마가 미친 아줌마가 된 것은 어째서일까. 어떤 사정일까. 크루엘라 아주머니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단순히 재미로 입에 올리던 것이 죄송스러워졌다.
현대인치고 마음에 멍 하나 안 든 사람이 없다고 한다. 가벼운 우울증 정도야 평범한 정도이니 외려 ‘건강한 정신’이 특별한 것이다.
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병들어야 하는 걸까. 무엇이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일까.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인 것인가. 그럼 나도 미쳐있는 것인가. 미친 세상을 살기위해 미쳐가는 사람들. 무서운 사실이다. 나도 미친 사람일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크루엘라 아줌마가 미쳤다고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다.
얼마 전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의 자살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의 눈물을 흘렸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고, 그리 말하셨던 분의 자살이다. 세상에 희망을 말하시던, 사회의 몇 안 되는 구원의 흰 손이었던 분이시다.
멍든 곳 하나 없는 매끈한 사과 같이는 살 수 없어도, 그분의 흰 손이 멍든 곳을 어루만져주면 어떻게든 살아 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마저 포기했던 자신의 삶을 그 분의 말씀을 통해 다시 시작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분은, 가면성 우울증을 겪고 계셨다고 했다. 지지 말자던 그분은 결국 앓던 병의 고통에 굴복하시고 말았다.
마음이 아프다. 행복과 희망을 말씀하시던 분마저 예외 없이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인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누구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인을 향해 욕하고 소리 지르는 크루엘라 아주머니도, 눈물 속에 가신 최윤희 씨 부부도, 그리고 나 역시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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