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위에서 바라보는 도심, 인생살이 참 별거 아닌데…
산위에서 바라보는 도심, 인생살이 참 별거 아닌데…
  • 승인 2010.11.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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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북한산둘레길(5): 구름정원길 구간

모처럼 혼자 나섰다. 멤버들은 평일이라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주말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없으니 마음마저 차분해진다. ‘구름정원길’은 지하철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를 나와 구기터널 방향으로 가다 삼성래미안 아파트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반대편의 은평뉴타운에 자리한 진관생태다리 앞에서 이쪽으로 넘어와도 무방하나 불광역 방면이 교통이 수월하다. 길 건너는 장미공원에서 탕춘대 방향의 ‘옛성길 구간’이다.

구간 초입의 팔각정 옆에는 스트로브잣나무가 화창한 날씨 덕에 눈부시게 다가온다. 재개발된 인근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주변정리도 깔끔하게 아주 잘 되어있다. 화사한 꽃들과 나무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면서 어우러져 있다.
동네 언덕길을 올라 불광사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이 열린다. 이곳의 불광사 말고도 산 너머 불광사가 또 있다. 약 한 시간 후에 그곳으로 연결되는 구간이다. 10여 분간 삼성 래미안 아파트 위를 끼고 돈다. 길옆에는 큰 고목들이 처참하게 쓰러져 있다. 지난 9월 2일 발생한 태풍 곤파스의 영향 때문이다.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태풍이었다.
그날 기자도 새벽에 업무 차 나갔다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대중교통 이용한답시고 버스 타고 서울역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환승하여 노량진 방면으로 가는 중에 다음역인 남영역에서 열차가 서 버렸다. 약 20분을 기다려도 움직일 기미가 없기에 인근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사단은 발생한다. 강풍에 뽑힌 가로수가 차도와 인도를 휘저으며 나뒹굴고, 제자리를 이탈한 각종 간판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빗줄기는 왜 그렇게 억수같이 퍼붓는지. 별반 도움도 안 되는 우산을 펼쳐보지만 앞이 안보이니 하늘에서 언제 쇳덩어리 간판이 떨어질지 몰라 전전긍긍. 이 절대절명의 위기는 용산 KT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때까지 20여 분간 계속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신께서 한 사발 더 즐기라고 살려 주셨남?).


# 하늘전망대



# 스카이워크

좁은 오솔길이 갑자기 확 트인다. 서울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늘전망대다. 아래를 내려 보니 은평구 전체는 물론, 동쪽을 제외한 서울 전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도시는 야트막한 산들에 둘러싸여 평화롭기 그지없다. 산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인생살이 참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막상 내려서면 사연들이 왜 그리 많은지.
조망대에서 아래로 연결되는 나무 데크가 장난이 아니다. 구름정원길의 하이라이트인 ‘스카이워크’ 구간이다. 산과 산을 연결하면서 다리를 지상에서 공중에 띄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이 구간이 구름정원길임을 몰랐는가?).


# 구름정원

데크가 끝나는 지점, 소나무에 덮인 산길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아주머니 서 너 분이 탄성을 지르며 앞서간다. 그래, 좋은 것을 보면 내질러야지, 남의 눈치 보며 의기소침할 필요 없지…질러, 질러!
숲속 벤치에서 할머니들이 쉬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옆에 있는 산뽕나무가, 며느리들 흉을 보는 건 아닌가 귀 기울이고 있다. 푯말이 불광중학교 1.3킬로, 독바위역 0.3킬로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우측은 족두리봉 가는 가파른 코스다. 여기서 정진공원지킴터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정진사 위 공터에서는 어르신들이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절반 정도의 넓은 공간이다. 아래서 올라오는 이들이 숨을 헐떡인다.
“둘레길에도 언덕은 항상 있다오. 명색이 산인데….”
정진사를 지나간다. 아래 어성초 재배단지를 끼고 돌면 우측에 공중화장실과 불광사가 나온다. 불광사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족두리봉과 비봉능선을 타는 길이다. 여기서 구름정원길로 가려면, 불광사 아래 있는 06번 마을버스가 회차하는 공터와 팀선교교회 사이로 올라가, 왼쪽에 있는 불광중학교 후문 앞 숲 속 길로 올라서면 된다.
그랜드슬램 테니스장을 내려다보면서 10여 분 걸으니 팀선교교회를 끼면서 우측으로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길과 만난다. 주변엔 주말농장들이 즐비하다. ‘금추’와 무의 어깨에 힘이 잔뜩 실려 있다.
“한포기 1만5000원짜리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래, 너 잘났다.”


# 선림사

길 양쪽에 들어선 힐스테이트 아파트를 지나니 웅장한 사찰이 나온다. 선림사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이 선림사 부근의 유명한 토종닭 집에서 하산주를 즐기곤 했는데, 이제는 산 아래가 온통 아파트 집단이다. 이름하여 은평뉴타운. 뉴타운도 좋고, 새 동네도 좋은데, 꼭 자연을 때려눕히면서 지어야하나. 예전의 풍광은 오간데 없다. 젠장, 집나간 며느리 전어 냄새 맡아도 못 찾아오겠다(혼자 거닐 때는 이렇게 투덜거리며 가는 게 시간 쥑이는 데 최고다).
선림사 옆 체력단련장이 갑자기 시끄럽다. 야외학습 나온 학생들이 신나게 떠들어대는 소리다. 예전 우리 학창시절, 송충이 잡으러 갈 때와는 달리 표정들이 모두 밝다. 하기야 지금은 배낭에 먹거리 넣고 걷다가, 다리 아프면 중간에서 쉬어가며, 김밥도 먹고 사이다도 마시고, 빵도 먹고 콜라도 마시고. 뭐가 걱정인데? 우린 당시에 산에서 내려와, 해산 하고 집에 가서 밥 먹든지 말든지. 그 시절은 그랬지(아까는 뉴타운에 시비 붙고, 지금은 어린 시절 어려운 형편에 섭섭하고…). 인근에 있는 학생들인가 했더니, 마포에서 왔단다. 아무튼 잘들 자라라. 너희들이 대한민국 미래다.


# 체력단련장


# 쉼터

얼마 후 나타나는 쉼터에서 배낭을 내린다. 여성 한 명과 남성 세 명이 벤치에서 땀을 훔친다. “박 선생님, 더우시면 점퍼 벗어주세요. 제 배낭에 넣고 갈게요”라는 여성의 말에 “아이고! 김 여사님, 무슨 염치로 그 배낭에 신셀 집니까. 가득이나 빈 몸으로 가는 게 송구스러운데”라는 한 남성의 답변. 또 다른 남성 “자슥아! 미안하면 니가 둘러메면 되지. 그렇게 눈치가 없나?” “그냥 송구스럽게 맨 몸으로 갈란다.”
내공들이 꽤 깊다. 기자, 입에 물 머금고, 미소 머금고 일어서 걷는다. 기둥에 걸려있는 김종해 님의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가 바람에 흔들린다.


# 잣나무숲

잣나무숲길을 걸어간다. 스쳐가는 등산객이 자그마한 칡뿌리를 들고 있다. 예전엔 산속에 지천으로 널린 게 칡이었는데, 요즈음은 칡이 귀하다. 깊은 산중에나 가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칡즙 한잔에 1000∼2000원을 받는다. 숙취에 좋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떠오르는 ‘한 사발’.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 한 사발, 땡 기는 한 사발 생각하며 또 걷는다.


# 조망대 아랫길
넓은 공간에 벤치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조망대에 서서 비봉능선을 바라본다. 언제나 친근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심호흡한다. 잣나무 향이 몰려온다. 기분이 몽롱해진다. 긴 벤치 옆의 나무기둥에 이해인 님의 시 ‘내 안에서 크는 산’이 걸려있다.(우리 편집장, 시 올리면 판짜기 까다롭다고 눈 흘기는데…그러든지 말든지.)


# 비봉능선

좋아하면 할수록/ 산은 조금씩 더/ 내 안에서 크고 있다// 엄마 한번 불러보고/ 하느님
한번 불러보고/ 친구의 이름도 더러 부르면서/ 산에 오르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조금씩
산을 닮아가는 것일까?// 하늘과 바다를 가까이 두고/ 산처럼 높이/ 솟아오르고 싶은 걸 보면// 산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그냥 마음이 넉넉하고/ 늘 기쁜걸 보면

배낭에서 막걸리 꺼낸다. 그러다 간절한 한 사발 억제하고 다시 넣는다. 수녀님 앞에서 차마….
기자촌 배수지 앞이다. 잣나무 군락 벤치에 여장을 푼다. 여기서 진관사 입구까지는 1.3킬로, 진관생태다리 앞까지는 1킬로 남짓. 지금이야말로 한 사발 시간이다. 참치캔 뚜껑 따고 한입 들이댄다. 뒤이어 들어오는 한 사발, 또 한 사발. 또, 또 한 사발. 얼큰해진다. 혼자서도 잘 놀아요.


# 진관생태다리

경사길 따라 쭉 내려간다. 길옆에 비석 하나 나뒹군다. 살펴보니 내시의 비석이다. 내시묘역길 구간에서 여기까지 원정 오셨나. 얼마를 더 가니 오늘의 종착지, 진관생태다리 앞이다. 다리 옆 화의군 능이 말끔히 단장돼 있다. 푯말은 일전에 지나왔던 ‘마실길 구간’을 알리고 있다.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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