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얼굴이, 잘 닦인 구두만큼이나 반짝거렸다!
아저씨의 얼굴이, 잘 닦인 구두만큼이나 반짝거렸다!
  • 승인 2010.11.1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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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자>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서: 구두닦이 아저씨


지금도 어리지만^^ 아주 더 어렸을 땐 아빠가 출근하기 전 구두를 닦아놓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구두 솔에 시커먼 약을 묻혀 열심히 닦았지만 광택은커녕 구두약만 떡칠을 해놓곤 했다. 하지만 아빠는 어린 딸이 열심히 구두를 닦아 놓는 게 기특해서인지 그럴 때마다 용돈을 주시곤 했다.
구두가 너무 더러워 집에서 닦기가 힘이 들 때는 엄마가 구두 방에 가져가기도 했다. 구두 방에서 새 단장을 하고 온 구두는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번쩍 빛이 났다. 요즘은 아빠가 운동화를 주로 신고 다니셔서 구두 닦을 일이 드물다. 때문에 구두닦이는 물론 구두 방에 대한 기억도 거의 잊혀졌다.



이렇게 기자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졌던 구두 방이 신문사의 막중한 임무 ‘우리의 이웃들을 찾기’ 수행에 나서면서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보면 거리의 작은 노점 앞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자신의 구두가 새 단장되는 모습을 구경하는 손님, 안에선 새까만 구두약을 묻힌 천으로 열심히 구두를 닦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번에 기자가 구두 방을 찾은 이유다. 평범한 구두 방도 아니고 여러 매체에도 소개됐을 정도로 오래되고 유명한 구두 방이다. 그 이름 하여 ‘구두박사’.
동묘역과 동대문역 사이에 위치한 구두 방. 원래는 45년이 넘는 동안 할아버지(김도진 씨. 70세)가 운영을 하셨었다. 지금은 아들(김기영 씨. 44세)이 이어서 하고 있다. 2대째인 셈이다. 기자가 구두 방을 찾았을 땐 할아버지는 안 계셨다.
아들(이하 아저씨)은 “요즘은 내가 주로 구두 방을 지키기 때문에 아버지는 일요일에만 나오신다”고 하셨다. 아저씨가 아버지를 도와 구두 방에 나오기 시작한 건 6년여 전. 전에 하던 일이 잘 안 되고, 애들도 있고, 돈도 벌 겸 해서 시작했단다. 하지만 쉬운 일은 없는 법.



처음 2년 반 동안은 아버지께 교육을 받아야 했다. 아저씨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걸 보고 자라서 조금만 배워도 할 수 있게 됐다”고 하셨다. 구두만 닦는 게 아니고 구두수선도 한다. 닦기는 3000원, 뒷굽을 가는 것도 3000원이고, 전체 갈기는 2만5000원에서 3만원까지 한다.
아저씨는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수입 면에선 좀 낮은 편이지만 꾸준하기 때문에 괜찮다”면서 “아버지는 구두 방을 해서 돈을 모아 상가건물을 사셨다”고도 하셨다. 구두를 닦아 건물까지 샀을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다. 일요일엔 아버지가 나오셔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신다. 거의 쉬지 않고 문을 여는 것이다.



점심은 주변 식당에서 해결한다. 아저씨는 “아버지는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니셨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다”고 하셨다.
길거리의 작은 노점이라고 하지만 단골손님도 많다. 인천, 일산, 분당 더 멀리는 부산에서까지 손님이 온단다. 특별히 날 잡고 찾아오는 건 아니고 서울에 올 일이 생기면 구두를 싸갖고 와 들른다.
왜 이 곳이 그렇게나 유명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아저씨는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신부님의 도움으로 신발 만드는 기술을 배우셨다. 당시 학교는 못 다니고 기술을 배워 총각시절엔 구두를 만들어 파셨다. 하지만 70년대에서 80년대 대기업이 늘면서 구두팔기를 접고 구두 방으로 옮기셨다”고 하셨다. 어릴 적부터 구두와 인연이 있으신 것이었다. 구두를 만들기까지 하셨다니 실력이 대단할 수밖에 없을 터.



가족소개를 부탁했다. 아저씨는 “아버지와 어머니, 보험회사 다니는 부인, 아들 둘이 있다”며 “큰 아들은 고3인데 학교 성적이 2.5등급 정도여서 이번에 수시로 성대, 건국대, 시립대, 중앙대를 지원했다”고 하셨다.
집에선 구두 방 하는 것을 그리 썩 내켜하진 않는다. 아저씨는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다른 건 못하니 돈을 벌기위해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일하는 데 있어 힘든 점은 없단다. 아저씨는 “다만 손님들이 구두 방은 실력 값인데 인정 없이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고 속상해 하셨다.



그래도 아저씨는 일하는 게 행복하다. 가족들도 모두 건강히 잘 지낸다. 아저씨에게 행복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단 가족이 화목한 것이다. 아저씨는 “젊었을 땐 가족에게 신경을 잘 안 썼으나 지금은 가족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가정이 화목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셨다.
끝으로 가족에게 한마디 하셨다.
“우선 기술을 알려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두 아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자기 앞가림을 잘했으면 좋겠다.”
인터뷰 도중에 손님이 들어왔다. 아저씨는 흰 천을 손가락에 감았다. 물을 묻혀서 구두를 문지른 뒤, 구두약을 묻혀 노련한 모습으로 구두를 닦으셨다. 어릴 적 기자가 닦던 것은 그저 소꿉놀이일 뿐이었다.^^; 다 닦은 구두는 새 구두마냥 번쩍번쩍 빛이 났다.
요즘은 구두를 수선하거나 닦는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없다. 아저씨도 원래 하려던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신다. 작은 가게에서 열심히 구두를 닦는 아저씨의 얼굴은 잘 닦인 구두만큼이나 반짝거렸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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