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114죠…제가 지금 암벽에서 떨어졌는데 119가 몇 번이죠?”
“거기 114죠…제가 지금 암벽에서 떨어졌는데 119가 몇 번이죠?”
  • 승인 2010.11.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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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북한산둘레길 마지막회: 명상길-솔샘길 구간

북한산 둘레길 탐방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번호엔 둘레길 순례 마지막 구간인 ‘명상길 구간’과 ‘솔샘길 구간’이다. 길음역이나 연신내 방향에서 7211번 시내버스를 타고 평창동 삼성아파트 앞에 하차, 평창동 주택가를 오르면서 ‘명상길’이 열린다.


# 구복암 바위


우측으로 둘레길 300m 표지판을 따라간다. 형제봉 입구의 계곡 주변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높여준다. 형제봉 입구에 당도하니 ‘명상길 구간’ 팻말이 서 있다. 100m 스타트라인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긴장된다. 과연 어떤 광경들이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명상길 구간 팻말에서 왼쪽의 주택가를 따라 이북5도청 입구까지가 ‘평창마을길 구간’이다. 지난번에 아스팔트길 내려오면서 열 좀 받았던 구간이기도 하다. 편집장의 “막걸리 한 사발!!” 소리에 올랐던 열, 금새 식기는 했지만….



# 명상길

형제봉탐방지원센터에 들어서니 비교적 넓은 오솔길이 펼쳐진다. 주변 오리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이 하늘을 가린 채 나그네를 명상 속으로 인도한다. 이때 한 무리 아주머니들의 시끌벅적 소리에 ‘명상’ 멀리 도망간다. 북한산둘레길이 만들어진 후 주부들의 발길이 눈에 띠게 늘었다.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구간을 돌수록 완주하려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게 북한산 둘레길의 특징이다.
입구에서 약 300미터를 가니 조계종 ‘구복암’이 나타난다. 정릉탐방안내소를 2.5㎞ 남긴 지점이다. 구복암 진입로 입구에 두 개의 큰 바위가 양 쪽으로 버티고 서 있다. 덕수궁 앞의 파수병처럼.


# 탐방안내소


# 팻말과 둘레길


데크와 흙길이 적당히 배합된 길이 발의 감촉을 촉촉이 적신다. 약간의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힐 쯤에 능선에 다다랐다. 형제봉 가는 길과, 정릉탐방안내소 가는 길이 교차한다. 정릉탐방안내소 방면으로 약 20미터를 내려서니 ‘북악하늘길’의 ‘하늘교’ 가는 길과 만난다. 다음엔 북악하늘길도 방문해 달라는 요청. 머리 끄떡여준다. 발길 닿는 대로 어딘들 못가리오.
여기서부터 정릉탐방안내소까지는 내리막이다. 얼마를 내려가는데 길 왼쪽 출입금지구역에 둘레길 표시나무기둥이 누워서 쉬고 있다. 이런, 벌써 지쳤나? 개통된 지 얼마나 됐다고…. 원래 나무기둥은 제자리에 서있는 게 쉬는 건데, 누군가의 힘에 의해 나자빠진 게 분명하다. 등산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시민의식은 갈수록 뒷걸음질이고…. 생각하자니 머리 아파진다.


# 왕녕사길

데크가 끝나고 왼쪽 왕녕사 가는 길로 접어들어 간이화장실을 돌며 우측으로 내려간다. 넓은 쉼터 곳곳 아베크족들이 자신들만의 만찬을 즐기고 있다. 마치 외부와 격리된 것처럼. 거기에 끼어들었다간 경멸의 눈초리와 함께 ‘싸대기’라도 날아올 것 같은 분위기다. ‘많이들 드셔, 치사해서 근처도 안 갈 테니…’. 휭∼하니 지나간다.


# 쉼터의 아베크족

공터 주변엔 쉼터를 조성하기 위한 공사현장도 눈에 띈다. 발아래 계곡에는 주부들이 음식 펼쳐 놓고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마치 소풍을 온 듯하다. 아주 오래된 참나무 그늘 밑에서 중년 부부가 다정하게 식사하는 장면도 보기 좋다. 부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 선수(?)는 다 안다. 그들의 대화와 행동에서 나타나니까. 그래서 이 시대 최고의 덕목중 하나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 시냇물

계곡을 끼고 돈다. 배드민턴장 주변에 간단한 체력단련기구들이 설치돼 있다. 간이 나무다리 사이로 흘러가는 시냇물에서 평화가 느껴진다.



# 청수사의  돌더미

다시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200미터 아래, ‘청수사’ 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보폭, 안전모드로 전환시킨다. 이 나이에 사고 나면 오래 가지…. 누군가가 산에서 다급하게 외쳤다지.
“거기 114죠…제가 지금 암벽에서 떨어졌는데 119가 몇 번이죠? 빨리 좀 알려주세요.” “아저씨, 장난치지 마세요. 어린애도 아니고, 정 급하시면 119에 걸어서 114 물어보세요….” “ ? ? ? ….”
꼭 기자가 아는 누구와 닮았다. 한국의 119 역할을 하는 것이 미국의 911이다. 미국의 911이 예전에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사건 이후 생긴 번호라나 뭐라나. 이 글 읽으면서 얼굴 붉어지든가 편집처리하든가 필시 둘 중 하나일 게다. 엿 3000원 어치 양은 ‘엿장수` 마음대로라지.


# 솔샘길입구

계곡 건너 청수사 앞뜰에 놓여있는 장독과 차돌들이 눈길을 끈다. 여느 집의 조경처럼 예술적이다. 청수사를 지나온다. ‘솔샘길 구간’이 시작되는 넓은 정릉주차장에서 좌우를 살핀다. 여기서 정릉탐방지원센터 방향은 대성문, 칼바위 능선으로 가는 주 등산로이고, 둘레길은 정릉탐방안내소 방향으로 내려간다.



시내버스 110번, 1213번, 1020번, 1711번의 종점이다. 주변에 훈제오리, 유황생오리 요리로 유명한 ‘시골집참나무’(02-915-6547)와 해물순두부, 콩비지, 청국장을 주 메뉴로 하는 ‘산장두부촌’(02-919-1599)이 있다. 기자가 평소 즐겨 찾는 집들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마을버스 06번과 시내버스 162, 1113번 종점이 나오고 솔샘길은 패밀리마트를 끼고 왼쪽으로 돈다. 1980년대 중반 정치부 기자 시절, 당시 여야 정치인들이 각각 주도했던 산악회가 이곳 청수장입구를 집결지로 많이 이용했던 관계로 자주 왔던 정감어린 곳이다. 벌써 수십 년이 흐른 옛 시절의 추억이다.


# 중앙하이츠아파트앞

주택가로 접어드니 정릉중앙하이츠아파트 앞 빨래골지킴터 가는 이정표가 솔샘길을 이어준다. 포장도로는 정릉주차장부터 여기까지다. 흙길은 산을 오르면서 다시 시작된다. 길 한쪽 특이한 것이 눈에 띈다. 일반적인 출입통제선은 빨래줄 같은 밤색 로프로 이어져 있는데, 이곳은 아궁이 땔감으로 쓰이는 엷은 참나무기둥을 이용해 더 없이 아늑한 시골의 운치를 풍긴다.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그래, 공무원들도 발상의 전환만 있으면 얼마든지 창조행정을 펼 수 있는데 뭐가 그리 어려운지….
 

# 정릉초교옆잔디광장

다시 오른다. 조경공사장을 지나니 남북을 가로지르는 포장도로 건너편 정릉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뒤쪽의 광장에는 잔디밭을 중심으로 체력단련장이 질서 정연하게 마련돼 있다. 차지한 면적도 상당히 넓다. 잔디 표지판은 말한다. ‘잔디가 덜 자라 축구화와 하이힐금지.’ 축구화는 이해가 되는데 하이힐은 어찌…??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성인 여성들이 하이힐 신고 잔디밭에서 뛰어논다? 에∼이 설마.
허브가든에는 ‘꿀풀과’의 각종 꽃들이 군락을 이룬 채 화려함을 더해준다. 지중해 연안 등지에 분포해 있는 로즈마리, 타임, 우단동자, 야로우, 레몬밤, 벨가못과, 우리에게 껌 이름으로 친숙한 페퍼민트, 초코민트, 스피아민트 등이 어우러져 향기를 내뿜는다. 정말 상큼하다.


# 화살꽃


# 연꽃

허브가든을 지나자 이번에는 각종 나무들이 이에 질세라 고개를 내민다. 팥배나무, 뽕나무, 화살꽃, 대추나무, 산딸나무, 앵도나무, 매화나무, 복자기나무, 모과…. 4대강 사업처럼 서로 싸우지는 않겠지. 믿고 발길 옮긴다.


# 만남의장소

나무단지 끝 부분을 지나니 예전에 ‘흰구름길 구간’ 탐방 시 길음역에서 타고 왔던 1014번과 1114번의 종점이 나온다. 구면이라 생각하니 왠지 반갑다. 성북생태체험관 위의 팔각정 주변에도 체력단련장과 아토피건강체험장이 예쁘게 단장돼 있다. 여기저기서 운동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이다. 북한산숲속여행 만남의 광장을 가로질러 가면 삼각산 칼바위능선 가는 길이다.


# 솔샘 발원지

팔각정 아래 데크를 내려서니 ‘솔샘발원지’ 입석이 나무와 꽃들에 둘러싸인 채 아담하게 세워져 있다.
오솔길을 돌아서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길가에  떨어져 있는 열매를 줍느라 정신이 없다. “무슨 열매예요?” “산사과 열매요. 과실주 담으려고요.” ‘과실주’ 소리에 잠깐 잊었던 한 사발이 뇌리를 때린다.



# 흰구름길 입구

오전 11시 30분에 명상길 구간을 출발, 오후 2시 흰구름길 구간 입구에 도착하면서 ‘충의길 구간’을 제외한 북한산둘레길의 전 구간을 마감한다. 충의길은 40년간 폐쇄되었던 ‘우이령 구간’을 우이동에서 출발하여 반대편 끝 지점인 경기도 교하탐방지원센터를 빠져 나오면서 시작된다. 솔고개능선을 지나 충의부대와 예비군훈련장을 거쳐 사기막탐방지원센터까지다. 추후 소개할 예정이다.




북한산둘레길을 탐방하면서, 매 구간 땀을 짜는 힘든 코스가 아니어서 등산 기분은 덜 했지만, 이웃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동행하면서 얻어지는 공동체의식의 발로가 항상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찾을 동네 뒷산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발길 돌린다. 그래도 회사 어귀의 ‘천냥호프’에서 편집장과 한 사발 하면서 쫑파티라도 해야겠다.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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