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 너도 봄이 오면 한 몸에 시선 받으며 피워낸 분신에 힘 좀 주겠지∼”
“철쭉, 너도 봄이 오면 한 몸에 시선 받으며 피워낸 분신에 힘 좀 주겠지∼”
  • 승인 2010.11.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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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팔당 예봉산과 1박2일 워크숍-1회

오늘은 중앙선 팔당역이다. 예봉산을 가기위한 1호선 회기역은 붐볐다. 플랫폼으로 열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이런, 덕소행이다. 용문행을 타야 한방에 팔당역 가는데. 천천히 가지 뭐. 등산을 마치고 양평역에서 신문사 가족들과 합류하여 인근 도곡2리에 최근 마련된 자그마한 신문사 연수원(?)에서 1박2일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호엔 예봉산 등산기, 다음 호엔 워크숍 참가기를 들려드릴 계획이다.

30여 분을 달려온 열차는 팔당역에 몇 사람을 던져 놓고 훌쩍 떠나간다. 또 볼 것이, 아주 안 올 것처럼. 역 구내매점에서 이것저것 ‘행동식’ 사서 배낭에 구겨 넣는다. 팔당역 광장에 나오니 눈부신 햇살이 이방인을 맞이한다. 날씨 쾌청하다.



남양주역사박물관을 돌면 매운탕으로 널리 알려진 식당들이 몇 있다. 입구의 ‘호수정’을 지나 팔당2리 마을회관을 끼고 돈다. 포장길을 따라 올라간다. 금요일 한낮의 시골길이 이토록 적막했던가. 도심의 썩은 흙먼지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와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이다. ‘예봉산’이라고 새겨진 입석 뒤에는 쉼터 벤치가 한가로이 놓여 있다.
여기서 신발 끈 고쳐 매고 물 한 모금 마신다. 할아버지 한 분도 산행채비에 한창이다.
“어르신, 여기서 예봉산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죠.” “글쎄요, 젊은 사람들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될걸요.”


# 예봉산입구

오후 4시에 일행들과 양평역에서 합류키로 하였고, 지금이 정오가 가까운 때이니 시간상, 운길산역으로 하산하더라도 양평읍내에 들러 사우나를 하고도 남을 시간이다(서울처럼 짧은 시간에 열차가 자주 오는 줄 알고, 한 시간에 정상까지 턱도 없는 줄도 모르고…미련한 넘). 원래 이쪽 코스는 팔당역의 예봉산에서 운길산역의 운길산을 종주하는 게 일반적이다.


# 예봉산입석

잠시 후, 예봉산(2.3킬로) 가는 팻말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거리면 북한산 구기동에서 승가사 거쳐 사모바위 가는 정도. ‘아∼ 하’, 50분이면 콧노래 불러가면서 가도 시간이 남아 한숨 자고 올 수 있겠다. 입구, 젊은 아주머니가 리어카에 등산소품들을 진열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평일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의 장사는 내공이 여간 깊지 않고서야 힘든 일일 터다.



성질 급하기로 소문난 기자, 갑자기 미안한 마음에 “이 호루라기 얼마예요?” “네, 3000원입니다.” 목에 걸고 힘차게 불어본다. “휘익∼!!” “에그, 깜짝이야. 산에서 웬, 호루라기 소리야? 대낮에 누가 성희롱 당했나.” 하산하던 아주머니 둘, 눈을 흘기는 건지 홀리는 건지 초장부터 배배 꼬이는 게 심상찮다.



초입부터 가파른 언덕길이 기를 죽인다. 마음 단단히 먹는다. 길옆 적송과 참나무가 자기들 구역에 들어 온 새 손님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얼마를 가니 돌멩이 속에 흙이 있는지, 흙속에 돌멩이가 박혔는지 애매모호한 길이 나온다. 흙 반 돌 반이다. 그리곤 계속 오르게 한다.
“아…뿔…사! 예봉산이 이런 거였구나.” 벌써 온 몸은 땀범벅이다. 아베크족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소나무 아래 도마뱀이 기어가고 지렁이도 꿈틀댄다. 가을의 정취와 흘러내린 땀이 교차한다. 약 20여 분 올라가니 쉴 수 있는 바위가 하나 나온다. 물도 마시면서 비로소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산세를 살펴보니 산의 7부 능선 정도는 올라야 팔당대교가 보일 것 같다. 주변은 등산로와 나무뿐 외부와 완전히 차단돼 있다. 매서운 벌레가 얼굴을 공격한다. 낯설다고 벌레도 홈그라운드 텃세 부리나. 가뜩이나 몸에 열나는데 까불고 있어. 가쁜 숨 몰아쉬며 오르고 또 오른다. 약 40여 분 올라왔나보다.



한 등산객이 쉬면서 말 걸어온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무슨 놈의 산이 능선은 없고 허리를 펼 수 있어야지.” “글쎄요, 저도 초행길이라 답답합니다.” 몸 관리하겠다고 산에 온 등산객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이 좋은 산에 와서 근심씩이나. 잠시 후, 헬기가 앉기엔 약간 좁아 보이는 공간이 나타난다. 소나무 사이로 팔당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바깥세상을 보니 비로소 희망이 보인다.


# 한강

멀리 두물머리가 들어온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포옹해 한 몸 되어 한강을 만드는 곳이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간다. 바위에 걸터앉아 눈 아래 펼쳐지는 풍광을 음미하다 보니 한 사발이 간절해진다. 허나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장난 아니다. 위를 올려보니 쇠말뚝에 와이어 줄이 길게 설치돼 있고 그 위로 나무계단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어진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여기서 한 사발은 곧 죽음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예전에 마셨던 한 사발을 떠올리면서 입맛 쩝쩝 다시면 된다(거의 알코올 중독증이구먼). 쇠줄 잡고 양팔에 힘주어 올라간다. 마지막 안간힘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데 눈앞에 더덕주와 솔잎주를 파는 간이매점이 있다. 여기까지 어떻게 무거운 짐들을 들고 올라왔지? 대단하다, 대단해!!


# 정상팻말

또다시 나타나는 나무계단. 올라서니 전망대. 검단산과 하남시가 보이고 팔당대교, 팔당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이제야 근처의 광경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위에 있는 한 그루 단풍이 말을 걸어온다.
“오빠, 힘들죠. 조금만 가면 정상이에요. 힘내세요.” “제…기…럴, 형님보다 오빠라고 불러주면 힘이 덜 드나?”


# 정상비

오후 1시 10분, 드디어 정상. 다행히 예상시간에 도착했다. 예봉산이라고 새겨진 정상바위부터 인증 샷! 사방을 둘러본다. 운길산이 보이고 왼쪽 하산길이 철문봉, 우측이 벚나무쉼터를 거쳐 운길산역 방향이다. 이곳 정상에서도 젊은 남자가 막걸리를 팔고 있다.
간이식탁에 ‘예봉주(감로주) 한잔 2000원, 한사람에게 단 두 잔만 판매’라고 쓰여 있다. 한 사발 마시면서 얘기 나눈다.
“감로주의 원료가 뭡니까?” “찹쌀과 옥수수로 빚은 술입니다.” “두 잔만 파는 이유는 그만큼 술이 독하다는 거죠?” “예, 산위에서 취하면 위험하니까요.” “이곳까지 어떻게 물품들을 운반합니까?” “오전 7시30분부터 두 차례 왕복하고, 10시에 장사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충 해가 질 때 내려갑니다.” “나이가 그리 많게는 안보입니다.” “직장도 마땅찮고 해서요. 벌써 9년째인 걸요.” “운길산역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1시간 30분 정도요.”
판매 정량인 두 잔은 사양하고 일어선다. 약간 딸딸해진다. 그래도 기분은 하늘을 찌른다.



1시30분 하산 시작한다. 능선 따라 빠른 걸음 옮기는데, 야외용 탁자에 버너를 올려놓고 라면을 끓이는 이가 있다.
“아니, 산에서 버너 사용하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그 탁자는 뭡니까?” “여기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영업하는 간이테이블이죠. 테이블 위에 버너를 놓으면 안전해요.”
저 넘을 한 대 쥐어박아 말아. 바빠서 오늘은 그냥 간다(안가도 별 수 없지만). 낭떠러지 오솔길에 낙엽이 살짝 덮여있는 위험한 길을 지나니 철쭉군락지 표시판이 서 있다. 철쭉, 너도 새 봄이 오면 시선 한 몸에 받으며 피워낸 분신에 힘 좀 주겠지. 우측 아래는 조동마을 가는 길. 운길산역 3.1킬로 가리키는 팻말을 통과한다.
얼마 후 운길산역을 30여분 남긴 지점에서 배낭에 있는 한 사발을 꺼내든다. 숲길에 있는 벤치가 돗자리 역할을 훌륭히 해준다. 인적 드문 산속에서 홀로 마시는 한 사발. 예술의 극치다.
‘서울서 곧 출발한다’는 문자 들어온다. 이제 출발한다고? 운길산역에서 기어가도 양평 가면 30분의 여유는 있겠다. 목욕탕 가서 뜨거운 물로 피로를 풀고 워크숍 참석이라…상상만으로도 몸이 개운해진다. 중간에 쉬면서 예술을 즐기는 중이라고 답신 보낸다.


# 검단산

부산 지인에게서 전화 온다.
“어제 동지들 임시모임 어땠어, 사람은 많이 모였고?” “덕분에,  대장께서, 부담 느낄 정도로 환대를 베풀어 주셨어.”
우리 지인, 부산에 좋은 산 많으니 빨리 내려오란다. 특히 억새풀로 유명한 ‘승학산’이 지금 제 철이라고….
그래, 다음은 부산의 승학산이다. 하산 후 자갈치시장에 가서 싱싱한 생선회에…(미안해서 괄호 열고 ‘한 사발’).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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