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자>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서: 채소과일 노점 하는 황영숙 아주머니



이제 여름 다음에 바로 겨울이 오는 것 같다. 가을이란 계절의 개념을 완전히 무시한 이 추운 날씨…. 갑자기 추워진 탓에 장롱 속에 쳐박혀 채 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겨울옷들을 부랴부랴 꺼냈다. 인터뷰 당일도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겨울용 패딩을 입고 찬바람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학원가는 길, 추운 날씨에 낡은 옷으로 여윈 몸을 꽁꽁 싸맨 채 길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육교 위의 할머니. 다른 날은 꼬박꼬박 1000원씩을 드렸지만 이날은 2000원을 드렸다. 내가 느끼기에도 너무나도 추운 날씨.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드린다면 따뜻한 음료수라도 사 드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마음이 따뜻하고 뿌듯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나서 보니 아침보다는 풀렸지만 그래도 쌀쌀한 날씨. 거리를 걷다보니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고생하실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길거리에서 열심히 장사하시는 분들을 찾아 나섰다.
동대문 인근 창신동. 인터뷰 주인공을 찾아다니던 중 대로변의 한 과일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는 아주머니 발견! 식사 중에 죄송하지만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 승낙을 받았다. 기자는 “식사 계속하시면서 그냥 편안히 이야기 얘기해주세요~”라며 아주머니의 긴장을 풀어드렸다.



이 자리에서만 30년째 장사중이시라는 황영숙(61세) 아주머니. 지금은 채소와 과일을 팔지만 전엔 꽃 장사도 하셨단다. 아직도 한 쪽 구석진 곳에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식물들이 나란히 놓여있다. 아주머니는 “꽃을 팔다가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채소와 과일을 파는 가게로 바꿨다”고 하셨다.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의 제철 과일은 귤과 감. 그만큼 잘 나가는 종목이기도 하다. 참고로 여름엔 포도와 수박이 가장 잘 나간다. 아주머니의 집은 중계동. 장사를 하는 동대문 근처에 살다가 이사를 가셨단다. 때문에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채소와 과일들을 가져온다.



30년 동안 한 곳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단골손님들도 많다. 아주머니는 “단골손님들이 많이 팔아준다”며 “항상 감사하다”고 하셨다.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앉아서 쉴 때도 있지만 물건정리에 대부분을 보낸다. 과일도 윤이 나게 닦고, 포장도 하고, 예쁘게 진열도 하느라 가뜩이나 아픈 몸을 제대로 쉬게 할 시간이 없다.



이렇게 추운 날,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게 힘들지는 않을까? 아주머니는 “추워서 힘든 것보다 주변에 술 먹은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녀서 힘들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건달들 때문에 힘들었다. 또 구청에서 나와 귀찮게 했다. 장사를 하다 보니 몸도 많이 안 좋아졌다. 목과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병원엔 안 가보시느냐는 기자의 말에 “며칠 있다가 가볼 생각”이라고 하셨다.
이처럼 힘든데 다른 일을 해보실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까? 아주머니는 “애들 가르치느라 바빠서 다른 생각은 엄두도 못 내봤다”고 하셨다.



아주머니는 알고 보니 슈퍼우먼이셨다. 아들 셋(39세, 33세, 28세), 딸 하나(35세) 그러니까 네명의 자식들을 혼자 키우신 것이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아주머니 혼자 이 작은 가게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년 365일 내내 일하시면서 네 자식을 키우셨다. 아주머니는 “힘들었다.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하셨다. 굳이 얘기를 듣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을 지 아주머니의 지나온 날들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다.
행복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그냥 행복하다. 이것도 못하??? 사람이 다반사인데 일할 수 있다는 게 바로 행복”이라며 “집에 있으면 노는 것밖에 할 게 없으니 지금 과일 파는 것이라도 일하는 게 더 낫다”고 하셨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손님이 들어왔다. 가격을 흥정하는 손님. 아주머니는 덤까지 하나 더 넣어주시며 “이것도 싼 거예요~”라고 한마디 하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 하실 때와는 달리 장사하실 땐 너무나도 능숙하셔서 살짝 놀라기도 했다.



찬바람이 그대로 들이치는 허름하고 작은 노점에서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네 자식을 훌륭하게 잘 키워내신 아주머니. 몸도 불편하지만 자식들이 걱정 할까봐 용돈도 거절하고 이렇게 직접 장사를 해서 먹고 사신단다. 아마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주머니와의 만남에서 기자는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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