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자>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서-‘장수곱창’ 아주머니



흔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을 때 “뭐 좋아하니? 피자? 햄버거?”라고 한다. 하지만 어리다고 해서 무조건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자의 친구들만 해도 공부하다가 “아~족발 뜯고 싶다…”라던가 “나물에 밥과 고추장 넣어 싹싹 비벼 먹고 싶다~”라고 얘기하곤 한다. 물론 가끔은 패스트푸드가 먹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특히 공부에 집중할 때는 유독 많이 먹게 된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의심이 갔지만 요즘엔 이해가 된다. 주변의 고등학생 친구들이나 재수생들을 보면 다들 엉덩이가 빵빵하고, 볼도 포동포동하다. 실제로 열심히 공부에 몰두하다보면 한 시간 전에 먹은 식사도 금새 소멸(?)돼 버리는 걸 실감한다.
때문에 틈날 때마다 “배고파~”를 입에 달고 산다.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다보면 머리에선 이것저것 야식거리들이 춤을 춘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메뉴중 하나가 바로 야채곱창. 깻잎 등 온갖 야채와 당면 등을 넣어 볶은 쫄깃하면서 매콤한 곱창 말이다. 젓가락으로 곱창과 야채 그리고 당면을 듬뿍 집어 올려 상추에 싸 크게 한입 집어넣었을 때의 그 맛이란…상상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돌게 한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라면 적어도 한두 번 정도는 곱창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회사 앞,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곱창집이 있다. 바로 ‘장수곱창’. 아주머니 혼자 가게를 운영하신다. 지나다니다 보면 그리 크지 않은 가게 안에서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콧노래라도 부르시는 듯 흥겹게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아주머니의 모습은 기자 뿐 아니라 그 가게 앞을 지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한창 ‘열공’을 하는 요즘, 간절해진 야채곱창 생각에 ‘장수곱창’ 아주머니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청계천 8가쪽, 그러니까 곱창집들이 몰려 있던 곳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다는 아주머니. 그곳에서만 12년 동안 했다. 지금의 자리(숭인동)로 옮긴 건 6년 여 전이다. 장사를 하던 청계천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근시간은 오후 3시경, 퇴근시간은 새벽 2시 경이다. 대부분 곱창은 저녁식사용이나 술안주용으로 먹기 때문에 새벽까지 손님이 들어온다. 아주머니는 “밤낮이 바뀌었다”라고 하셨다.



곱창장사는 그럭저럭 되는 편이다. “살림살이에 지장이 없을 정도”라는 아주머니의 겸손한 말씀. 이 집의 주 종목은 야채곱창이다. 1인분에 8000원. 그리고 왕십리 불곱창과 닭발, 오돌뼈볶음 등도 판다. 대부분 손님들은 근처 회사에 다니는 젊은 직장인들이다.
아무래도 퇴근시간, 손님이 가장 많이 들어온다. 청계천에서 오래 장사를 했기 때문에 그때의 단골손님들이 맛을 못 잊고 이곳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곱창볶음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 역시 청계천 8가 인근에 위치한 중앙시장에서 사온다. 아주머니는 “오랫동안 거래하는 곳에서 배달을 해준다”고 하셨다.
밤낮이 바뀐 생활, 힘들 수밖에 없을 터. 아주머니는 하지만 “힘든 건 별로 없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굳이 힘든 점이 있다면 바로 ‘술 취한 아저씨들’. 밤 늦은 시간 술에 취해 술주정을 부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혼자 장사를 하다 보니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럴때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대처법으로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하긴 하지만 말이다.



청계천 곱창골목에 있을 때보다 이쪽으로 자리를 옮긴 뒤 손님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현재에 만족하며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여유로움이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되는 거 아니에요?”란 말 속에 묻어난다. 
18년이나 된 곱창볶음의 노하우는? 단골손님들이 오래도록 잊지 않고 찾게 만드는 아주머니만의 비법은?
“곱창을 살 때부터 씻고 볶는 것까지 나름의 비법이 있다. 자칫 잘못 하면 누린내가 나기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모든 걸 직접 다 만든다. 양념도 물론이다.”
아주머니는 남편과의 사이에 큰딸(29세)과 큰아들(21세), 막내아들(15세)을 두고 있다.
“자식들이 엄마가 곱창장사 하는 걸 좋아한다. 막내아들의 경우 곱창을 너무 좋아해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이곳 가게로 바로 와서 먹고 갈 정도다.”
기자는 공짜로 마음껏 곱창을 먹을 수 있는 아주머니의 막내아들이 내심 부러워졌다.



아주머니께 행복에 대해 물었다. 아주머니는 “지금 일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이라며 “또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돈은 많이 없어도 화목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아주머니는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얼굴에 보조개를 띄운 채 손을 바쁘게 놀리며 곱창 볶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웃을 때마다 반달처럼 변하는 예쁜 눈과 하얀 볼에 피어나는 보조개. 보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행복으로 안내하는 아주머니의 트레이드마크인 것처럼 보였다. 마치 천사와도 같은…. 아주머니는 때마침 가게를 찾은 손님들과도 오랫동안 함께 해온 가족이라도 되는 양 편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작지만 항상 손님들로 가득한 ‘장수곱창’. 기자는 ‘장수곱창’ 집의 인기비결은 아주머니의 저 천사같은 미소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상냥함, 그리고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열심히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도 남는다.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이 만족하고 열심히 한다면 그 자리에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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