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은 어른들 때문에 그 하루 그들은 처절하게 떨고 울어야 했다
나같은 어른들 때문에 그 하루 그들은 처절하게 떨고 울어야 했다
  • 승인 2010.12.03 1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대학수학능력시험



2010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이 났다. 이 한 순간만을 위해 1년을 고생한 수험생들에게 우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다. 결과가 어떠하든,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정말로, 정말로 수고 많았다. 내 동생과, 내가 가르친 학생들, 내 친구들, 내 연닿은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수능날짜가 다가오는 것이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횡경막이 시큰한 느낌이었다. 묘사하자면, 책상에 커닝할 거 적다가 옆 사람이랑 눈 마주칠 때의 느낌? "딴 놈 만났지?"에 변명을 해야 할까 그냥 웃어야 할까 순간 고민 될 때의 느낌? 전 시간 결석한 교양에 과제가 있었다는 걸 들을 때의 느낌? 뭐 그런 것. 근데 또 그게 우르릉 쾅쾅한 것이 아니고, 이게 심장이 덜컥 하긴 했는데 그대로 뚝 떨어져 버려서 땅바닥에 투둑 떨궜으면야 에라 모르것다 싶겠다만, 지 자리에서 두 마디 떨어진 횡경막 근처에 대롱대롱 매달려가지고 두근두근. 허파가 고만큼 꼭 눌려가지고는 숨 쉬는 게 꼭 심장크기, 주먹만큼 고만큼 덜 하는 갑다 싶더라.
모자란 숨 뱉어 내느라고 내가 한숨이 늘었다. 내가 요로코롬 갑갑하게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얼마나 심하겠노, 떨리겠노 싶어서. 피붙이거나, 혹은 친구거나, 혹은 꼴난 인연이거나 하는 얼굴들이 그 모자란 숨에 엉겨 붙는다. 한숨이 치민다. 자꾸 한숨 쉬면 갸들한테 엄한 꼴이나 날까 싶어서 한숨도 삼키고 그냥 답답한 가슴으로 날짜 가는 것만 보고 있었다. 제발 힘들었던 1년 다 보상받을 수 있기를, 흡족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뿐이었다.



11월 18일, 목요일. 여느 수능 날과는 다르게, 그날은 조금 덜 추웠다. 하루 종일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여섯시까지 꽉꽉 들어찬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시계만 초조하게 바라보다 보니 어느덧 수업 종료. 학우들이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인사하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하교하는 길. 이제 곧 있으면 수능이 끝난다. 심장 뛰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려서 발끝만 보고 걷는데도 내 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전화를 해봐야 하겠지. 작년 수능 후 동생의 기운 없는 목소리가 떠올라서 도저히 통화버튼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번이 두 번째인 만큼 정말 간절했다. 동생 본인도,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도, 나도.
시험이 어려웠다고 한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붙들고 있는 전화기, 그 너머로 들리는 통화 연결음이 억겁 같다. 달칵. 저편에서 “여보세요” 하고 말하기도 전에 혼자 흠칫 놀래버렸다.
“아∼누나야.”
“응. 누나”
“드디어 끝났네.”
“ㅎㅎ∼응.”
“수고 많았어. 정말 수고 많았어.”
목소리가 작년보담은 밝은 것 같아 일단 안심이 되었다. 어때 잘 친 것 같아? 하고 물었더니 그건 또 아니란다. 그게 문제겠나. 지금 당장은,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수고 많았다는 말이 입에서 거듭거듭 튀어나온다. 정말 수고 많았어. 수고 많았다.



이번 수능은 EBS에서 70퍼센트를 연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나도, 그를 고려해 EBS 문제집을 꽤 풀었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마지막까지 EBS 파이널 문제집으로 수업했었고.
그렇지만 수능은 믿었던 학생들의 뒤통수를 따악! 날렸다. EBS를 단순히 문제를 푸는 용도로만 사용해서는 아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깊이 있게 인터넷 강의를 듣고 문제도 풀었던 학생들만이 곤혹스럽지 않게 문제를 풀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화가 나서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났다. 놀라거나 무서울 때만 머리털이 서는 느낌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중간에 EBS에서 70퍼센트를 연계해 문제를 내겠다는 발표를 할 때만해도, 분명히 문제를 EBS로 풀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 강의 등을 활용하라고 말했었다. 이제 와서 이렇게 말을 바꾼다는 게 말이나 되냔 말이다.
사실 EBS에서 70퍼센트가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걱정이 앞섰었다. 만약 그들 말대로 수능문제 다수가 EBS에서 봤던 문제들이라면 수능의 난이도가 너무 떨어져서 변별력이 없어지는 사태가 일어난다. 설령 이러한 정책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혼란이므로, 양쪽 중 어느 쪽이라고 해도 반가울 것이 없다.
더군다나 국가에서 특정 ‘문제집’을 공부하라고 정하는 것은 그것이 사교육의 차등을 막고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해도 조금 무리수였다. 특히 EBS를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은 이상 어려웠을 거라니, 이게 무슨 고등학교 내신인가? 수능이 학력평가로 역행하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동생이 수능을 영 잘 봤다면 내가 이렇게 분노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참 씁쓸하다. 분노할 리가 없겠지. 동생이 잘 봤는데 내가 무슨 상관인가. 어려웠던 수능 시험에 동생도 한명의 피해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곧 분노로 바뀌고 그 화살이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으로 향하는 것이다. 교육정책은 나와는 별개인 것으로 생각하고,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은 어떻게 되든 상관조차 하지 않는 주제에 이렇듯 비난만을 퍼부을 자격이 내게 있는가.



아직 학생에 불과하지만, 나도 어른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침묵하는 어른. 이런 모습들이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미쳐 날뛰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내 탓이 아닌가? 누구도 떳떳할 수 없다. 교육제도가 어른들의 잇속 계산으로 바스라 질듯 약한 주춧돌 위에서 휘청휘청 거리고 있는 것은, 모두의 반성이 필요한 일이다. 정치인들이나 손가락질 한다고 우리의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도 고등학생이었다. 마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는 저주받은 89년생. 나 역시 교육 제도의 저주로 친구를 헐뜯고 밟고 올라가는데 핏대를 세워야했던 수험생이었다. 왜 어른들이 싸우는데 우리들이 이렇게 눈물을 흘려야하나, 끓는 분을 삭이며 문제집을 풀었던 학생이 바로 우리였다.
피 말리는 입시가 끝나고, 그 밖으로 기어 나온 나는, 더 이상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교육 과정이 바뀐다고? 백분위? 표준점수가 뭐? 이제 더 이상 나랑 상관없잖아, 하면서. 그 속에서 헤어 나온 뒤에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려버린 나 같은 어른들 때문에 대한민국의 수험생들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작년보다 더 처절하게 11월 18일 그 하루 때문에 떨고 울어야 했다.
다시 내 동생의 일이 되고 나서야 슬그머니 화를 내는 못난 어른인 것이 그저 미안해서, 부끄러워서, 수고했다는 말 밖에 해줄 말이 없다. 그래서 그냥 또 수고 많았다고, 정말 고생 많았다고 그 말만 연거푸 해줄 수밖에 없다. 정말로, 수고 많았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