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팔당 예봉산과 1박2일 워크숍

오늘은 중앙선 팔당역이다. 예봉산을 가기위한 1호선 회기역은 붐볐다. 플랫폼으로 열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이런, 덕소행이다. 용문행을 타야 한방에 가는데. 천천히 가지 뭐. 등산을 마치고 양평역에서 신문사 가족들과 합류하여 인근 도곡 2리에 최근 마련된 자그마한 신문사 연수원(?)에서 1박2일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다. 지난 호 예봉산 등산기에 이어 이번 호엔 1박2일 워크숍 참가기다.


# 저멀리 보이는 산이 용문산이다.

전날 모임에서 만난 지인(예전 골프장 CEO 역임)의 말이 떠오른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꼭 지켜야할 세 가지 원칙’이 있단다. 그 첫째, ‘손님 띄워주기’. “손님, 오늘 양복 색깔이 너무 어울리십니다” “넥타이가 너무 화려합니다” 등 손님의 기분을 올려준다. 둘째, ‘손님과 맞장구 쳐주기’. “그렇죠. 그럼요.” 손님의 말에 같이 호응을 해 주면서 손님의 기분을 맞춰준다. 셋째, ‘예, 잘 알겠습니다’. 손님의 지적에 일절 대꾸나 변명을 하지 말고 수긍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라는 것 등이다. 우리 사회의 어느 업소든 필요한 요소들이다.



한강나룻길을 지나 비닐하우스 사이를 빠져 나오니 운길산역이다. 작년인가, 선배 지인들과 운길산 오를 때 이용했던 역이다. 역 대합실에서 양평 가는 열차시간을 알아보니 ‘이런, 워크숍 멤버들이 회기역에서 타고 오는 열차와 같은 시간이다.’ 편집장 문자 온다. ‘3-3’. 삼량 세 번째 칸으로 타라는 얘기다. 
열차에서 후배들과 반가운 조우. 잠시 뒤 열차는 양평역을 알린다. 모두 함께 양평시내를 둘러본다. 비교적 도시가 깨끗하게 정돈돼 있다. 양평읍내엔 매달 3일과 8일에 꽤 큰 규모의 오일장이 선다. 양평역 인근 넓은 부지에, 전국에서 몰려든 각종 향토 먹을거리와 산지 물건 및 생활용품들이 손님과 눈을 맞추는데, 그 규모가 굉장하다. 아마 도내에서 제일 큰 시골장터가 아닐까싶다. 아쉽게도 내일이 장날이다.


# 연수원 텃밭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국내산 생 삼겹살, 생물 오징어, 미나리, 양파, 양평 막걸리, 소주, 맥주, 라면, 쌈장 등 이것저것 장을 봐서 도곡 2리의 연수원으로 향한다. 우리 연수원은 수백 명 들어가는 큰 규모가 아니라 조그마한 시골별장이라 생각하면 된다. 얼마 전 발행인(편집장)이, 조용한 시골에서 글도 쓰고 텃밭도 가꾸면서 주말을 보내려고 지인에게서 빌린 곳이다.   


# 감나무

하나로마트에서 연수원까지는 걸어서 30여분 걸린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은 덕분에 직원들 마트에서 산 짐들 바리바리 나눠들고 걷기 시작한다. 양평 동초등학교를 지나면서 도곡 2리를 알리는 큰 입석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니 도로 옆 추수를 끝낸 논들이 보인다. 시골 특유의 그윽한 맛이 확 들어온다. 인간은 회귀본능이랬지. 노년에 이런 곳에 자리 잡고 유유자적하면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문득문득 찾아오는 지인들과 직접 빚은 막걸리 한 사발 두 사발 나누면서 정담도 나누고….


# 도곡2리의 한적한 마을 풍경

무거운 짐 때문에 쉬었다가 걷고, 쉬었다가 걷기를 수차례. 드디어 저 멀리 산으로 빙 둘러싸인 조그마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 입구 초입에 자리한 아담한 사이즈의 집. 이곳이 바로 연수원이다. 입구엔 푸른 잔디가 깔려있다. 정원을 지나니 텃밭이 나타난다. 다 자란 콩과 상추, 무가 싱그러움을 더해 주고 산 위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고랑을 타고, 텃밭 옆을 지난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직접 얘기 할 수도 없고…’ 하는 카피의 산수유와 두릅나무들이 텃밭 주변에 심어져 운치를 더한다. 갑자기 짜증이 몰려온다. 이 밤이 새면 다시 그 복잡한 서울에 가야 한다는 현실에….


# 도곡둘레길

술자리를 겸한 워크숍은 날 새는 줄 모르고 계속된다. 공기가 맑으니 술을 코로 마셔도 취할 것 같지 않다.
짧은 밤이 지나고 새 날이 밝았다. 아래채에 사는 권순화(발행인이 형님이라고 하는) 씨의 모친 김중로미 여사의 팔순(산수연) 잔치가 있다. 넓은 잔디마당엔 어느새 손님맞이 테이블이 차려져 있다.
워크숍 멤버들, 동네 둘레길 산책에 나선다. 도곡 2리 마을을 남향으로 감싸고 있는 야산을 둘러보는 길이다. 간밤에 주방 옆 좁은 방에서 혼자 잔 최 기자, 잠 좇으려 계속 하품해댄다. 맑은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온다. 오랜만에 맛보는 시골의 청정함이다.



산으로 접어드니 떨어진 밤들이 산책로 주변 이곳저곳에 널려있다. 북한산에선 보기 드문 칡뿌리도 눈에 띈다. 
능선 정상부근에서 정상주로 해장한다. 숙소를 나설 때 준비해온 고구마줄기 나물과 함께. 발행인 사모의 평소 음식솜씨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고. 어제 많이 마신 공 기자와 김 기자, 내미는 막걸리잔에 손사래를 친다(젊은 넘들이 그 술 먹고 헤매기는).
내려오는 오솔길이 마치 북한산 둘레길의 우이령길을 보듯 아름답다. 어느 집 마당 뜰에 핀 이름 모를 꽃이 형형색색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호두나무의 사촌 ‘가래’도 지천에 널렸다. 기념으로 몇 개 주워 담는다. 미친 로또가 내게로 달려들면 이곳에 정착하리라. 동네 주민들이 공동으로 재배하는 산수유와 두릅나무 단지를 보니 내 것도 아니면서 마음 든든하다. 


# 광양사물놀이패

아침식사 당번에 기자가 선임되었다. 선임기자,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이럴 때 쓰이는 게 그 선임기자였나?
큰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 불 켠다. 물이 많을 것 같은데…에라이, 어떻게 되겠지. 발행인 사모께서 보기에 안쓰러운지 다가온다. 사양하면서 일체 주변 접근 금지! 거실 한쪽에서 궁시렁 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필시, 라면 다 퍼져서 엉망일거야.”
발행인과 문 국장이다.
“못미더우면 젊은 자기들이 하지, 나이 먹은 넘 부려 먹으면서 말들이 많아.”
궁시렁 궁시렁 되갚아준다. 버섯, 파, 오징어, 마늘 등 이것저것 첨가물 넣다보니 끓는 물에 미리 들어갔던 면발이 너무 많이 익혀졌나보다. 모르는 척, 상위에 옮겨놓는다.
한 입씩 후루룩 넣자말자 이구동성 불만의 소리 튀어나온다.
“거봐요, 퍼질 대로 퍼져서…무슨 라면 맛이 이래?”
기자의 시선 머무는 곳, 창 너머 왕벚나무다.
“라면 맛, 예술이야 예술∼.”
아무도 호응 없다. 한 끼 때우는데 말들이 많아.




식사 후 텃밭의 콩대를 뽑고 운동 삼아 동네에서 제일 큰 은행나무 아래서 일동, 은행 수집에 들어간다. 한참을 줍고 있는데, 이 동네 어르신 할머니가 따끔하게 일침 놓고 지나간다. “이 세상에 임자 없는 게 어디 있어.” 순간 일행들, 얼굴 굳어지며 철수한다(맞아, 시골 와서 민폐 끼치면 안 되는 건데).  
정오 무렵 팔순잔치가 시작됐다. 아들 권순화 씨의 등에 업힌 어머님 용안이 연신 싱글벙글이다. 내빈들이 따라 드리는 약주 ‘원샷, 원샷!’ 다 드시고도 정정하시다.
멀리 전남 광양에서 초대된 ‘18인조 사물놀이패’가 신명나게 한바탕 놀아 제친다. 그 기세 살리면서 우리 연수원으로 들어간다. 귀신 쫓아내고 모든 일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지신밟기’다. 꽹과리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꽹∼∼∼.
막걸리 가득 부어 올린다. 어깨춤 덩실덩실 우리 발행인, 일행 속에 파묻힌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권순화 씨와의 인연으로 특별 초대된 중국의 여가수 ‘피어량’이 자신의 히트곡과 한국 트로트를 구성지게 불러 제친다.


# 지신밟기

우리 발행인, 갑자기 기자 손 이끌고 어느 아줌씨와 사교춤 부킹시킨다. ‘시골서도 부킹이야 부킹. 탁주 마시나, 혼탁하게시리’. 일순간 눈들이 꽂혀온다. 에라, 모르겠다. 술 반, 춤 반, 육 박자는 잘도 돈다. 마이크 잡은 우리 문 국장(나중에 광양 사물놀이패 단원과 자매결연 맺기로 했다나) 애간장 녹인다. ♬황진이…황진이…황진이♬
지갑에서 배춧잎 나온다. 김장철이라 배추 뿌리나 보다. 속수무책의 1박2일 워크숍, 대단원의 막이 내려간다.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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