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입구 빠져나오니 풍겨오는 저 구수한 냄새의 정체는?
지하철 입구 빠져나오니 풍겨오는 저 구수한 냄새의 정체는?
  • 승인 2010.12.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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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자>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서-지하철역 입구의 토스트 할머니


지옥 같은 월요일. 요즘 현대인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토요일 심지어는 일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낸다. ‘더 빠르게’를 외치는 사회는 사람들의 기를 쪽 빼놓고 난 뒤에야 잠시 틈을 내어준다.
아침 출근길. 1호선 지하철은 출근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머리를 감은 뒤 차마 말리지도 못한 여자, 머리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조는 남자 등…. 바쁜 일상에 잠은 물론이요, 출근을 준비할 시간조차 없다보니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2010년 현재 서울에 사는 우리들의 모습들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추운 날씨 때문에 지하철 안에 틀어놓은 히터는 출근시간엔 오히려 숨 쉬는 것조차 힘들게 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때가 많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차가운 바람이 반갑게 맞아준다. 그 바람과 함께 코끝을 간질이는 맛있는 냄새…구수한 이 냄새의 정체는? 맞다! 바로 토스트 굽는 냄새다.



토스트는 바쁜 직장인들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아침식사. 하루 첫 끼니인 만큼 부담되지 않는 메뉴다. 이번엔 바쁜 현대인들의 아침을 책임지는 거리의 토스트집 아주머니를 찾아가봤다. 신문사 근처가 회사들로 밀집돼 있어서 거리의 토스트집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한 곳을 낙점, 어렵게 인터뷰 승낙을 받았다.
기자가 갔을 땐 오후여서 손님이 거의 없었다. 오늘의 주인공 토스트 할머니께선 열심히 양배추를 썰고 계셨다. 할머니는 46년 생으로 환갑도 훌쩍 넘은 연세다.(성함이 나가길 원치 않으셨다^^;) 이 곳(신설동역 앞)에서만 10년을 해왔다.



10년 동안 장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은 손님 수. 이전엔 근처에 수도학원이 있었고 또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노는 곳(속칭 ‘콜라텍’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때문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줄면서 자연 이곳을 찾는 손님의 수도 줄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단골들은 꾸준히 찾아와서 사간다”고 하셨다.
토스트의 종류는 딱 두 가지. ‘햄?치즈 토스트’와 ‘계란 토스트’. 대부분 아침식사 대용으로 간단하게 먹기 때문에 다양한 메뉴는 필요 없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최근엔 어묵도 같이 팔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회사원이나 학생들. 아침시간에 가장 많이 온다. 찾아오는 이들의 아침식사를 책임지는 셈이다.



할머니의 출근시간은 새벽 5시.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한 배려일 게다. 다행히도 할머니의 집이 근처여서 출퇴근길이 힘들지는 않다. 할머니는 “아침은 주로 싸와서 먹고, 점심은 사먹기도 한다”고 하셨다.
토스트 재료는 어디에서 구해올까? 대부분 큰 시장에서 싸게 사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혼자 하니까 이 앞에서 (채소) 장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산다”고 하셨다.
연세도 있으신데 일을 하는 게 힘들진 않을까?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서 장사하긴 힘들다”며 “그래도 몸 아픈 곳은 없다. 허리가 조금 아픈 것뿐”이라고 하셨다. 이어 “2~3년 전만해도 ‘아줌마’라고 부르던 손님들이 이젠 ‘할머니’라고 부른다”며 “나이가 많아서 인지 한편으론 손님들이 부담스러워한다”고 걱정하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큰 딸과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큰 딸은 봉사활동을 위해 외국에 나가 있다.
연세도 많으시고, 손님도 줄어드는 추세인데 쉬실 생각은 없는 지 물었다. 할머니는 “이 나이에 안 아프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산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10년 된 토스트 맛의 비법을 물었다. 할머니는 “특별한 비법은 없고 모든 손님을 나의 가족처럼 대하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라며 밝게 웃으셨다.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능숙하게 칼질을 하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혹시 손이라도 베일까봐 걱정했지만 그건 기자의 헛된 생각이었다. 할머니는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도 빠른 속도로 채소를 썰었다.



딱 한사람만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작은 가게에서 새벽 출근길 불을 밝혀주는 할머니 토스트집. 비록 새벽 5시,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 준비하느라 힘도 들지만 손님 하나하나가 곧 내 가족이라 생각하며 토스트를 만드신다. 이 춥고 황량한 겨울, 그 작은 토스트 집에선 우리 집 안방에서와 같은 따뜻함이 물씬 물씬 풍겨나고 있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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