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동생 그리고 수시



이젠 수능시험 성적도 발표가 나고, 수시 시험 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아직 본선이 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피 말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다. 키보드를 부여잡고 기도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수험번호를 찾는 손이 떨린다. 그 수험번호를 입력하는 손가락도 떨린다. 눈동자도 떨리고, 심장도 떨리고, 이 순간엔 방안의 공기마저 떨리는 것 같다. 딸깍.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린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페이지가 순간적으로 하얗게 바뀐다. 차마 지켜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인다. 마우스 위에 올려놓은 손이 보인다. 여전히 파들파들 떨리고 있다.
몇 주 전, 논술시험을 보러 서울에 잠깐 올라온 동생을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오롯하게 나의 책임이었다. 나 때엔 우리 부모님이 했던 역할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동생은 논술 경험이 전무했다. 나의 경우엔 논술을 꽤 비중 있게 공부했었는데, 동생은 정시파이다 보니까 그다지 준비를 해놓지 못한 탓이다.
사실 수시를 며칠 앞두고 논술을 공부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수다. 며칠 만에 글을 잘 쓸 수 있게 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일뿐더러, 논제가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는 연습만으로도 이틀은 빠듯하다.



그래도 포기 할 수는 없었다. 며칠을 거의 밤을 꼴딱 새며 동생 논술에 매달렸다. 안 그래도 코딱지만 한 내 집에 큰 몸뚱이가 두 개나 들어차니 정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밥을 해먹이고, 청소를 하고, 글을 첨삭해주고, 핏대 세우며 뭐가 틀렸는지 설명하고…. 내가 다음 주중으로 해야 할 과제는 일단 미뤄둔 채로, 내내 동생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지금 과제가 문제랴!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동생에게 억지로 몇 숟갈 퍼 먹이고, 버스며 지하철이며 인도, 도로까지 꾸역꾸역한 인파에 휩쓸리지 않으려 발끝에 힘을 딱 주고, 저 멀리 보이는 안내도우미 학생들에게 “##관이 어디에요?!” 목청을 뽑고 있는 나는, 정말로 다른 아주머니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시간 맞춰 고사장 앞에 도착하면 또 “수험표는 챙겼니? 주민등록증은? 연필이랑 지우개, 컴퓨터용 사인펜도? 시계랑 볼펜도 챙겼어? 핸드폰은 가지고 갈래? 아님 내가 갖고 있을까?” 온갖 물음표를 우다다다 쏟아 낸다. 동생이 빠이빠이 손을 흔들고 건물 안으로 사라지면, 그제야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이제 두 시간에서 세 시간. 뭘 하고 있지? 학교 근처에는 카페도 많고 두세 시간이면 적은 시간도 아니건만, 지칠 대로 지친 몸은 그냥 가까운 학부모 대기실로 향한다. ‘지금은 그냥 앉고 싶어.’ 학부모 대기실에는, 대개 어머니들뿐이다. 수다의 장을 열고 계신 그 무리에 낄 수가 없어서 그냥 고개를 푹 숙인채로 조는 둥 마는 둥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동생과 집에 돌아와서는 둘 다 시체처럼 잠이 든다. 두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서 다시 논술 특훈! 뿐만 아니다. 내 입시 때도 가본 적 없던 ‘입시설명회’. 한참 줄을 서서 몇 시간 강의를 들었다. 뭐가 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어려운 입시를 그냥 거저먹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며칠을 보내고 난 후에 내 앞에는, 단잠 같은 휴식이 아닌 밀린 과제들이 ‘제한시간’이라는 눈을 부라리며 도사리고 있었다. 아…맙소사!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끈다고 며칠 또 밤을 샌다. 겨우 하나 끝내고 나면, 다시 다른 과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어? 저건 일주일 정도 남았었는데?’ 며칠 잠을 못 잔 머리가 영 돌아가질 못하고 삐걱삐걱 거린다. 일주일이 남았던 건 며칠 전 이야기고, 앞서 했던 과제 때문에 며칠을 쓴 탓에 이제 이것도 시한이 간당간당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밤샘모드.



그렇게 마지막 과제까지 끝내고 나니, 이젠 시험기간이다. 아…정말, 맙소사!!!!! 시험공부를 해놨을 리가 없다. 계속 발등의 불 끄는 것에 급급했는데, ‘미리 시험 준비?’ 그런 게 가능했을 리 없잖은가. 이제 또 다시 폭풍이다.
도서관에서 눈물이 찔끔찔끔 날만큼 엄청난 분량의 시험범위를 훑고 있는데, 동생에게 문자가 온다. ‘누나, 중대 떨어졌어.’ ‘에이 괜찮아, 그건 처음 친 시험이잖아.’ 말은 태연하게 했지만 그날은 도무지 공부가 안되었다. 집으로 일찌감치 돌아오고 말았다.
다음날도, ‘성대 떨어짐.ㅜㅜ’ ‘야, 괜찮아 괜찮아 풀죽지 말고! 좋은 소식 있을 거야 파이팅!’ 이게 도대체 동생에게 하는 소리인지, 내 자신에게 하는 소리인지. 일주일도 채 안남은 시험인데, 글씨인지 그림인지 같은 문단만 연거푸 다섯 번을 읽곤 그랬다.



‘고대도 떨어졌어.’, ‘한대도 떨어졌어.’ 결국 내 동생은 수시에서 모두 고배를 맛보고 말았다. 동생이 얼마나 속상할지는, 나도 알고 있다. 결과를 확인하는 그 떨리는 순간이며, 당장 ‘불합격’을 알리는 그 야속한 페이지가 얼마나 슬픈지, 나도 안다. 나도 겪었던 순간이니까. 그래서 나 역시 속상하지만, 동생에게 힘내라고, ‘파이팅’하며 누구한테 하는 건지도 모를 말을 애써 밝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번 주 수요일이 당장 기말고사다.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지만, 어쨌거나 빨리 시험을 끝내고 그 다음은 며칠간 꼬박 동생과 같이 정시 지원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봐야한다. 쉴 틈이 없는 두 달이다. 동생아, 힘내자!! 좋은 소식 있을 거야!! 파이팅!!!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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