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기자의 계룡산 나들이 2회> 삼불봉에서 동학사 그리고…

오전 7시20분,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공주행 고속버스는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전용차선을 이용, 신나게 달려간다.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볏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불리 우는 계룡산. 그래 이번엔 그 기가 넘쳐난다는 계룡산이다. 공주의 갑사에서 용문폭포, 신흥암, 금잔디고개를 거쳐 삼불봉 정상을 오른 후 남매탑, 동학사로 내려가는 ‘갑사 1코스’를 택했다. 지난호 삼불봉 정상까지 등반기에 이어 이번엔 남매탑과 동학사 그리고 걸쭉하게 이어진 뒷풀이 이야기다.

 
# 신흥암

눈 앞 능선에 계룡산의 주된 성주(城主) 봉우리들이 어깨를 나란히 위용을 자랑한다. 왼쪽으로부터 천황봉(845미터), 쌀개봉(829미터), 관음봉(816미터), 문필봉(756미터), 연천봉(739미터), 그 아래 계룡저수지. 정말 아름답다.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다.
정상에는 겨울철 설화(雪花)를 담은 큰 액자가 걸려있다. 삼불봉 설화다. 옆에는 관음봉 가는 철 계단이 아래로 뻗어있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지인 도착한다.
“바로 따라왔지.” “그럼요, 나도 지금 왔는데요.”



흐뭇해하는 지인의 모습을 향해 빙그레 웃어준다. 삼불봉은, 동학사나 천황봉에서 이곳을 바라볼 때 세 부처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오늘 산행의 최정상을 밟았으니 일단은 마음이 가볍다.
12시55분. 삼불봉고개의 평평한 자리에 식단 차린다. 청하, 떡, 쇠고기 장조림, 삶은 고구마, 크래커 등 야전에서 그런대로 성찬이다. 집에서 넣어온 유리잔에 청하 가득 붓고 한 입에 들이킨다. 옆자리의 팀원들이 유리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우리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쌀쌀한 날씨 탓에 청하 2병, 개 눈 감추듯 사라진다. 아침에 진국설렁탕 먹을 때 한 병 꺼내먹은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속세에 내려가면 사방천지가 곡찬데 뭐가 아쉬워, 아쉽기는….’


# 삼불봉 정상

하산 길에도 땀이 난다. 식사할 때 추워서 겹겹이 입었던 옷들 하나둘 배낭 속으로…. 
상원암의 ‘남매탑’. 호랑이가 기절한 처녀를 등에 태우고 수도하는 스님이 계신 동굴로 걸어 들어가는 그림이 시선을 끈다. 사연인즉,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하자 백제의 왕족이었던 한 사람이 계룡산으로 들어와 현재의 남매탑이 있는 청량사지 터에서 스님이 되어 한 칸의 초암을 짓고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이 스님이 신라 선덕여왕 원년에 당나라에서 입국한 상원스님이라는 설도 있다). 어느 겨울날, 삼매 중에 있는 스님 귀에 큰 동물의 울부짖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온다. 나가보니 송아지만한 호랑이가, 동물을 잡아먹다가 갈비뼈가 목에 걸려 입을 딱 벌린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이 호랑이 목에 손을 넣어 갈비뼈를 빼주었는데 호랑이는 연신 고마운 몸짓을 하며 숲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 호랑이는 암자 마당에 기절한 처녀를 내려놓고 간다. 스님의 극진한 간호에 정신을 차린 처녀는 “소저는 경상도 상주 땅에 사는 처자이온데, 혼기가 되어 이웃마을 양반댁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에 들기 전 소피가 마려워 잠깐 밖으로 나왔다가 갑자기 송아지만한 호랑이가 앞에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한 끝에 그만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바로 이 곳이옵니다.”


# 남매탑


# 계룡산입구

호랑이의 대가성 인신매매다. 어쨌든 처녀의 청혼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스님은, 오누이로 인연을 맺고 비구, 비구니로서 수행을 하다가 한날한시에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한편, 이즈음부터 여인네들은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두려워 방에서 일을 보기 위해 요강이 생겨났다고 한다.


# 천황봉


# 천황봉능선

오랜만에 찾은 동학사 계곡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변함없이 흘러가는 계곡물과 나무들이 한 결 같이 사랑스럽다. 옛 시절 떠올리며 지인과 함께 내려간다. 이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기자를 부른다.
“ 아니, 전 국장님 아니십니까?” “어∼서 동지, 서 동지가 여긴 웬 일이오.” “파주의 산악회에서 계룡산으로 정기 등반 왔어요.” “그랬군요. 이래서 사람 죄 짓고 살 수 없다고 한다지요.”


# 문필봉


# 쌀개봉과 관음봉


# 연천봉

최전방 비무장지대의 사단수색대에서 기자와 군 생활을 함께 한 전우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의 우리 전우들은 지금도 1년에 두 서 너 차례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만남을 거듭할수록 세월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동지들이다. 시간상 단체로 버스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같이 한 사발 못하는 서 동지를 아쉽게 보내고. 지인과 단 둘이 마주앉아 푸짐한 술상을 받는다. ‘계룡산산두부집(042-825-5595).’ ‘두부 찜 보쌈’, ‘버섯 두부전골’, 공주의 특산품 밤으로 빚은 ‘밤 막걸리’….  



또다시 걸려오는 손 전화 소리. 계룡시에 사는 지인이다. “아우님, 산행 다 마쳤소? 지금 어디요?” “아∼형님, 동학사우체국 앞에 있는 식당에 지인과 함께 와 있습니다.” “집사람과 함께 갈 테니 기다려요.”
한때 여의도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었는데, 가업이 기울어 청산하고 계룡시로 내려가 조그만 사업을 하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지인이다. 그 옛날 기자와 여의도 일식집에서 밤새 정종잔 기울이며 정담 나눴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기자와는 교칠지심(膠漆之心), 아교와 옻칠 같은 사이다.


# 계룡저수지

20여 분 후, 택시로 단숨에 달려 온 선배부부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어쩜, 전 기자 이럴 수 있어요? 그렇게 한번 들르라고 했건만.” “형수님 죄송합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늦었네요. 그런데, 낮술 하셨나 봐요?”  “이이와 같이 한잔 하고 있는데, 글쎄, 이 인간이, 전 기자가 지금 동학사 아래 와 있다지 뭐예요.”
부인에게 ‘이 인간’ 소리를 듣고 사는걸 보니 선배 수명도 다 돼가나 보다.
계룡시로 가는 택시 안은 온통 밤 막걸리 냄새다. 얼마나 마셔댔으면 계룡산산두부집의 밤 막걸리가 동이 났겠는가.


# 동학사계곡

우리 군의 심장부인 ‘계룡대’를 지나는 도로가 깨끗이 정돈되어 있다. 차는 계룡시 엄사사거리에 멈춘다. 공주시에 속한 동학사에서 계룡시로 옮긴 관계로 시계(市界)를 벗어나 미터요금은 무의미하다는 택시운전사의 주장. 그렇다보니 부르는 게 값. 3만원 지불하고 내린다.
노래방 실내가 어두침침한 것은 전국이 다 비슷한가 보다. 세 사람, 각기 자신이 부를 노래번호 찾느라 분주하다. 노래에 일가견 있는 공주의 지인이 있으니 분위기 걱정할 것 없다. 기자, 살며시 빠져나와 사우나탕으로 달려간다. 선배부부 집에서 하룻밤을 묵을 요량이면 아무래도 미리 샤워라도 해 놓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담그니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술도 좋지만, 기분전환에는 목욕도 그 못지않다.


# 동학사입구

슬며시 다시 돌아온 노래방은 여전히 열창의 열기가 뜨겁다. 18번 애창곡 ‘해운대 엘레지’를 예약한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냐….’
노래방을 나선 일행들, 다시 술집으로 향한다.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엄사순대해장국(042-841-4042)’. 선배 지인이 부부동반으로 자주 가는 식당이란다. 명함에는 지역번호도 없이 전화번호만 있다. 하기야 외지에서 이곳까지 순대 주문할 일 있겠는가. 먹음직한 순대 한 접시에 소주가 나온다. 노래하고 샤워한 덕에 제법 목 넘김이 괜찮다.


# 대웅전

불현듯 오늘 마신 술의 양과 종류가 떠오른다. 청하, 또 청하, 밤 막걸리, 캔 맥주, 소주, 소맥, 대충 종류는 알겠는데 양은 글씨…도통 모르겠네.
공주 지인, 자신의 집으로 가기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일행들, 극구 말리는 체한다. 아파트 안 슈퍼에서 맥주와 안주거리 사들고 선배 집으로 간다. 거실에 상 펴고 맥주잔 부딪친다. 이 정도 되면 슬슬 술이 웬쑤로 보이기 시작한다.


# 사천왕문

날이 밝았다. 상쾌한 아침일 턱이 없다. 선배와 아침 식사하러 밖으로 나선다. 물론 배낭도 챙겨서. ‘또가네 곰탕(042-841-5667 김종인)’. 쥔장의 전 직업은 학원 강사였단다. 곰탕에 ‘화랑’ 한 병 주문한다. 떠날 때까지 한 사발이다. 명대로 살려면 빨리 떠나는 게 상책이다.


# 거북이분수

또 한 병, 또 한 병, 어느덧 다섯 병째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외친다. “형님, 저 갑니다. 몸 건강하십시오.” 서울행 고속버스에서 고개 떨군 나그네, 남부터미널 다 오도록 그 자세 유지한다.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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