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가족과 함께 한 연말




이야기 하나: 크리스마스의 가족나들이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졌다. 올해는 뭐 만날 남자친구도 없고, 친구들도 다 저들끼리 꽁냥꽁냥거리기 바쁘니, 나로서는 별로 반항할 ‘건덕지’도 없었다. 치과에 들렀다가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이 좋은날에 너는 무슨 애인도 없냐, 어머니의 잔소리가 쏟아진다. 막상 애인 사귀면, 또 별로 눈에 차지도 않아할 거면서. 입에서 ‘핏’소리가 절로 새나온다. 요 며칠은 시험기간에, 동생 대학 원서에…. 몰린 피로가 쏟아진다. 크리스마스고 뭐고, 깨어있는 시간이 몇 시간 되지 않을 만큼 자고 자고 또 자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가 훌 지나갔다. 동생도 그 동안 놓지 못하던 긴장의 끈을 풀고 곯아떨어졌다. 계속되는 야근에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신 아버지야 말할 것도 없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 글쎄, 엄마만 빼곤 다들 자느라 바쁜 이것이 과연 ‘함께’가 맞는 걸까.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의 아침이다. 솔로들의 강한 염원 덕분일까, 너무너무 추웠다. 창문을 열었더니 추운냄새가 날 정도다. 후닥닥 창문을 닫고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면서 엄마에게 오늘 하루 종일 집에만 있자고 떼를 쓴다. 가족끼리 같이 있는 게 중요하지, 이 추위에 어딜 나갑니까, 감기 걸려요. 제각각 이불을 하나씩 둘러쓰고 엄마에게 쫑알거리는 우리 셋의 표정이 비슷비슷하다. 엄마가 헛소리 하지 말라며 어서 들어가 씻으라고 내 궁둥이를 밀어 넣는다. 언제나 이런 건 내가 첫 희생양이다. 볼을 있는 대로 부풀리며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간다. 뜨거운 물이 김을 내며 쏟아진다. 내 자취방에 있는 화장실은 너무 좁아서 따뜻한 물을 조금만 틀어놓으면 금세 화장실 안이 뿌옇게 더워지는데, 집 화장실은 시간이 좀 걸린다. 소름이 퐁퐁 솟는다. 에잇 정말. 귀찮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잠이 좀 깼다. 거실로 나오니 동생이 이불을 싸매고 뒹굴거리고 있다. 나만 당할 순 없지! 동생을 끌어다가 욕실에 집어넣는다. 동생이 “누나 정말!” 소리를 지른다. 못나오게 문을 잡고 있는다. 곧 샤워기 소리가 난다. 후훗 웃으면서 머리를 말린다. 이러니까 내가 항상 일등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나만 깨워 놓으면 그 다음은 자동이니까. 얼마 뒤 동생이 머리에서 물기를 뚝뚝 떨구며 아빠를 깨운다. 아빠아 아빠아. 엄마도 나도 합세해서 아빠를 일으켜 세웠다. 난 더 자고 싶어, 날 내버려두란 말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아빠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에잇 정말. 툴툴 거리면서 엉덩이를 북북 긁는 아빠의 뒷모습. 아 정말 내추럴하다. 그렇게 온 가족이 기상하고, 밖의 추위에 대비해 옷도 두껍게 입고 나니 어느덧 점심때다. 이제 뭐하지? 아빠의 질문에 다들 갸웃갸웃. 배고프니 밥부터 먹읍시다. 그래, 그럼. 엄마의 조그만 차에 네명이 타니 차가 속력을 내질 못한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차가 우리 차를 추월해 가는 것을 보면서 다들 깔깔 웃는다. 그렇게 느릿느릿 달려서 아버지 친구분이 개업하신 고깃집에 도착했다.



아주 옛날부터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던 아저씨는, 손수 고기를 구워주시며 내 어릴 적 얘기 혹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얘기를 해주셨다. 내동생과 내가 이렇게 컸냐며, 소주 한잔씩을 주시면서 당신의 얼굴이 벌게지는 것도 아랑곳 않으시고 연신 허허 웃으신다. 아빠와 엄마, 아저씨 내외분께서 옛날 얘기를 나누면서 그땐 그랬지, 아 그래 그때 맞아, 하면서 추억을 더듬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물론 고기 맛도 좋았고. 아주 어릴 때 아저씨가 “우리 신영이” 하시면서 뽀뽀 해주시면 몰래 침 묻은 뺨을 닦아내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아저씨가 주시는 술도 받을 만큼 컸으니. 내 스스로도 신기하다. 내가 그런데 엄마 아빠 보시기엔 정말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실만 하겠구나, 싶다. 당장 내 옆에 앉아있는 저 말만한 동생이 벌써 스물 하나라는 게 와 닿지가 않는다. 나한테는 늘 애기 같은 내 동생. 엄마 아빠가 나를 보실 때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 내가 다 컸다고 까불 까불거리는 것이 영 못미덥고 걱정되실 만도 하다. 엄마 아빠껜 난 여전히 초등학교 6학년 마냥 모자라 보일 테니까.
밥을 먹고 나서 아버지와 당구장에 갔다. 원래 당구장엘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아버지와 함께 당구장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주변에는 다들 또래들끼리 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뿐이고, 가족끼리 온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었다. 동생도 아버지도 처음엔 약간 어색해 보였다. 포켓볼 밖에 쳐본 적 없는 내게 아버지가 당구를 가르쳐주시고, 동생 자세도 고쳐주시고 하다 보니 그 어색함은 금방 허물어졌다. 가족끼리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뭔 재미가 있겠냐는 내 생각과는 달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분명 이런 시간들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가족끼리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정말로 따뜻한 기분이다. 남자친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족과 보내게 된 굴욕의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리 집 남자 둘은 현관에서부터 허물을 훌훌 벗고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이 추위에 ‘빤스’ 바람이라니. 덕분에 우리 집 보일러는 쉬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뭐라 한소리 하니 아빠가, 재밌었지? 하고 싱글싱글 웃는다. 엄마도 아이고 참말로, 하며 웃고 만다. 아침부터 밤까지. 너무나도 익숙해서 더는 특별할 것도 없는 가족의 일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한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도 참 괜찮은 것 같다. 늘 당연히 여기던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이 정말 행복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둘러앉아 티비를 보면서 가족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본다. 내가 쳐다보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우리 가족들이지만, 정말로 내겐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언제나 늘 ‘함께’라서 잊고 있었던 소중함. 엄마, 아빠, 그리고 내 동생. 언제나 사랑합니다.

이야기 둘: 새해 그리고…

1년. 긴 시간이다. 365일, 8760시간, 52만5600분.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붓고 기다리는 그 초조하고 긴 시간이 단 5분에 불과하니 그렇게 따지면 길고도 긴 시간이다, 정말.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새내기가 될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푼 아이들, 취업 생각에 다가오는 새해가 막막한 친구들, 서른이 된다며 착잡한 마음 숨기질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매일 매일이 고단하지만 “새해에는” 그 한마디로 희망이 반짝이는 사람들. 오만가지 얼굴들을 하고 2011년을 기다리는 이들이지만, 그 마음이야 크게 다르겠는가. 꼭 지금처럼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2010년을 맞이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 데, 벌써 그것이 작년의 이야기다. 매번 이맘때쯤 느끼는 것이지만 365일, 8760시간, 52만5600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정말, 정말 시간 참 빠르다. 2010년, 나는 이 1년을 어떻게 보낸 걸까. 별로 불거져 나오는 것이 없다. 그저 참 빨리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하는 것 없이 나이만 먹은 건가. 입 안이 쓰다. 분명 긴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2010년의 끝자락에 2009년의 일기를 읽어본다. 아직까진 작년의 일기지만 며칠 뒷면 재작년의 일기가 되어버릴 일기장. 몇 가지 에피소드는 솔직히 가물가물하다. 아주 생소한 이야기도 가끔 보인다. 2009년의 일기장은 아주 화려하다. 사진도 잔뜩 붙어있고, 읽은 책이며 관람한 영화, 연극, 전시회까지 죄다 후기를 적어놓고 가지런하게 티켓도 붙여 놨다. 매일 거울 속에서 만나왔던 터라 잘 몰랐는데, 그때의 나는 제법 풋풋하다. 생각도 꽤 어리다. 악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야? 손톱 밑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때보다 생각이 조금 컸다는 뜻이기도 하니 마냥 부끄러울 것만도 아니지 않은가. 1년이 담긴 일기도 금방 끝을 보인다. 일기는 끝이 났는데도 간질간질한 마음이 사그라지질 않아 올해 초의 일기장을 꺼낸다. 2010년 1월 1일.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 빼곡히 담겨있다. 새해 첫날을 처음으로 혼자 보낸 날이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서 첫 해도 보지 못했다. 텔레비전도 없는 자취방이라, 하루 종일 연거푸 보여주는 브라운관 속 일출의 광경조차 보지 못했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인데도, 어제는 작년이고 오늘은 올해다, 이 말이 와 닿지가 않았었다. 1월 1일, 다이어리의 첫 장은 항상 올해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 리스트이다. 그 중 해낸 것에는 체크를 해두는데 2010년에는 09년에 비해 빨간 동그라미가 많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한 번 입안이 씁쓸해 진다.



졸지에 내 손에 들려있는 일기장은 해낸 것이 별로 없는 2010년의 일기장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무게도 어째 좀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도 페이지는 멈춤 없이 넘어간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이게 조금 있으면 작년 일기장이라니. 으∼눈썹이 절로 八 자가 된다. 하지만 곧,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 맞아 이때 그랬지. 킥킥. 한 게 없는 게 아니었다. 무척 바빠 끼니를 거른 적도 있었고, 무슨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굴 때도 있었고, 호기심 넘치는 저학년 초등학생마냥 새로운 것에 설레기도 했고, 또 소소하게 이룬 것을 생각하며 뿌듯하게 잠든 적도 있었다. 나는 올해 초에 잠시 숨을 고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 전까진 다들 달리는 가운데에서 나 혼자 숨을 고르면, 곧 뒤쳐져버리지 않을까 고민해왔었다. 하지만 숨이 턱까지 차서 날숨을 다 뽑아내기도 전에 내딛는 한 걸음이,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는 것보다 크게 더 나을 것이 없을 것이라, 내 나름대로는 용기를 낸 결심이었다. 1월 1일에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전개였다. 토익 점수를 따고, 좋은 성적을 받고, 취업에 도움이 될 자격증도 따겠노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는 인형 만드는 것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대신 그 대가로 그저 그런 성적을 받았으며, 어디 쓰이게 될 지 짐작도 안가는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2010년은 참 즐거웠던 것 같다. 다시금, 2010년의 일기장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내 1년이 담겨있는 일기장이다. 하는 것도 없이 나이만 먹을 수는 없다. 1년은 어쨌거나 52만5600분이나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2010년이 나에게 숨고르기 같은 한해였다면, 2011년은 다시 달려볼 생각이다.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주위에서 “그러면 뒤쳐진다”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 반응들에 내 스스로의 판단에도 의구심이 들곤 했다. 내가 과연 옳았을까? 내가 만약 틀렸던 것이면 어쩌지? 하지만, 지금의 기분으로는 힘차게 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비틀비틀 뛰어왔던 지금까지보다 더 힘차게. 문득 2010년의 마지막과 2011년의 시작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2010년은 조금 외로웠던 것 같다. 시작부터 혼자였고, 내 판단을 혼자 믿고, 또 혼자 밀고 갔었다. 이제 다시 그들의 곁으로 뛰어갈 생각이다. 내가 서있는 동안 내 주위 사람들이 날 추월해 얼마나 뛰어갔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내 곁에는 나와 함께 뛰어줄 사람들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가족들. 2011년은, 가족과 함께 맞이하고 싶었다. 당장 고향으로 내려갔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얼굴들.
2011년 1월 1일 00시. 우리 네 가족 모두 거실에 둘러 앉아 기도를 했다. 2011년 1월 1일 첫 일출. 우리 네 가족 모두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도를 했다. 올해의 기도에는 어째선지 나에 대한 기도가 없었다. 늘 ‘올해는 제가 ~~하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는 빼먹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우리 아빠와 우리 엄마, 그리고 내 동생에 대한 기도들. 그것만으로도 흡족해서 나에 대해서는 기도 할 맘이 가셔버렸다. 그렇게 기도를 마쳤다. 아마 엄마도, 아빠도, 내 동생도 그렇지 않았을까. 기도를 마치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참 따뜻했다. 나의 행복한 2011년은 이미 세 명이나 빌어줘서, 그래서 내가 따로 빌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던 게 아닐까.
사랑하는 우리 가족, 그리고 2011년을 벅차오르는 희망으로 맞이한 모든 사람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해 열심히 뛰어봅시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