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은 시간까지의 자율학습, 마치 학교서 ‘야영’하는 느낌마저…”
“밤늦은 시간까지의 자율학습, 마치 학교서 ‘야영’하는 느낌마저…”
  • 승인 2011.02.0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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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청소년 기자가 만난 이 시대의 고교생들

꿈은 없다. 그저 대학과 수능성적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실태다. 기자는 지난해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 너무 공부에만 몰두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책 한 권 읽을 시간조차 없었던 고교생활. 고민을 거듭했고, 결국 부모님과 상의해 학교를 자퇴했다. 지금은 많은 책을 읽고, 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나름대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친구들과의 만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학교에 다니는 여고생들이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몇주간 그들과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학생들의 속마음을 풀어놓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부디 대학과 성적뿐이 아닌, 자신들의 꿈과 추억 만들기를 위한 학창시절이 되길 기원해보며…. “이름과 얼굴, 학교 등이 실명으로 그냥 나가도 상관없다”는 그들. 하지만 우리의 현실상 혹시라도 그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에 학교 이름은 이니셜로 처리하기로 했다.



서울 K여고에 다니는 이진아(가명. 18세) 양. 올해 2학년에 올라간다. 이제 고등학교 생활엔 완전히 익숙해진 상태다. 하지만 그만큼 학교 시스템과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도 많아졌다. 지금부터 그의 학교생활과 교육문제에 대한 진아 양의 생각을 들어보자.
“중학교 다닐 땐, 고등학교 생활이 이렇게나 힘들 줄은 몰랐다”며 시작하기가 무섭게 하소연을 해대는 진아 양. 입을 열자마자 열띤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K여고는 여중과 같은 캠퍼스 같은 운동장을 사용한다. 등하교 시간이 달라도 오고 갈 때 자주 마주치게 된다. 여중생들의 눈에 비친 여고생들의 모습은 그저 선망의 대상. 이제 앳된 티를 벗고 한층 여성스러운 매력이 물씬 풍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 몇 권을 품에 안고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같은 여자가 봐도 정말 예쁘기만 하다. 정작 그들의 속사정은 모르면서 말이다.



진아 양은 “처음 고등학교에 올라왔을 때 너무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 접해보는 ‘야자(야간자율학습)’는 정해진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있긴 해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진아 양은 “초기 야자시간엔 마치 학교에서 ‘야영’하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일은 처음이어서 밖은 깜깜한데 아직도 학교 안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났기 때문이다. 그는 “야자시간 적응하는 데 2~3주가 걸렸다”고 했다. 적응하게 된 계기도 그저 주변의 압박 때문이었다. 강제로 입학식 다음 날부터 밤 10시까지 야자를 시키고, 다른 아이들도 같이 공부를 하고 있으니 혼자서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학교와 집을 반복해 오가는 단순한 생활이 이어졌다. 밤 10시 야자시간을 마친 뒤 집에 오면 11시가 다 되고, 씻고 정리하다보면 12시. 그리고 나면 금방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그렇다보니 아예 사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주말 역시 남들의 그 주말이 아니다. 요즘 대부분 고등학생들은 주말에 학원을 다닌다. 야자 때문에 평일엔 학원을 갈 수 없고, 그나마 하루나 이틀 있는 휴일을 학원에 고스란히 반납하는 것이다.
주변 친구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그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기적이 됐다”고 했다. 시험을 보면 서로 눈치를 보며 점수를 비교해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는 남의 책이나 공책을 훔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요즘 ‘다소 덜떨어진’ 학생이 아니라면 사물함에 자물쇠 채워놓는 건 필수란다.
진아 양은 그중 친한 친구를 예로 들었다. 그는 “성적 때문에 우는 학생은 늘상 있는 일이고, 밝았던 성격조차 내성적으로 변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친구 중에 A라는 아이가 있다. A는 B와 단짝이었다. 그런데 B가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서 둘의 점수 차이가 벌어졌다. 둘의 부모님도 서로 친했었는데 A네 부모님이 이제 B와 A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만 되면 공부하라고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A는 성적 얘기만 나오면 울면서 집나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어쩌다가 학생들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그는 “주변의 상황 인식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전반적 분위기가 너무 대학 진학으로만 치중을 하니까 고등학생들 대부분의 꿈이 그저 ‘좋은 대학 가기’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공부는 왜 하니?” 그러면 단 한가지 “좋은 대학 가려고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좋은 대학은 왜 가니?”라고 물으면 “우리나라가 그렇잖아요. 돈 많이 벌어야죠” 라는 대답이 대부분….
그는 “학생들의 꿈이 사라져가고 있다. 학교에선 학생들의 적성을 키워주질 않는다”고 했다. 이렇듯 주변에서 ‘대학, 대학’하다 보니까 부모님들도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을 못가면 사회생활이 힘들어질 거야’라고 인식한다.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선생님들의 경우 학생들을 등급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얘는 ㅇ등급, 쟤는 ㅇ등급’ 식으로 분류해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나이 드신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편애하기까지 한다.
그는 “학교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들어가는 특별반까지 있다”고 했다. 야자시간에 전교 상위권 아이들만 좋은 독서실 자리를 마련해 자습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특별반도 탈퇴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쉬는 날도 없고, 휴일은 물론 공휴일까지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공부를 하려면 돈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요즘은 ‘돈 없는 사람은 대학가기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책값 역시 싸게는 1만원에서 2∼3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책을 몇 권 씩 사야 되는 현실이니 말이다.
그는 “게다가 요즘 학생들은 인강(인터넷 강의) 세대인데 어느 유명한 인강은 한 과목 당 한 달에 20여만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서 “비싸서 안 듣고 싶지만 안 들으면 불안하니 싼 인강을 찾아 듣는다”고 했다.
이제 고등학생들의 모든 건 ‘성적’이 차지했다. 그는 “중학교 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때도 2대 8이었다. 2는 공부, 8은 사생활 이야기. 하지만 이젠 8대 2이다. 8이 공부, 2가 사생활 이야기”라고 했다. 이만큼이나 성적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엔 성적이 떨어져 자살을 하는 학생도 적지 않은 게 요즘의 실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적, 등급에 목을 매어야 하는 것일까? 그는 “우선 우리 학교에서 야자시간을 자율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서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전반의 인식인 것 같다. 너무 상위권 대학 생각만 하지 말고, 학생들의 꿈을 위해 적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요즘 간혹 TV에 등장하는 ‘장인’들 역시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하는 직업이라 인식이 되어버려 안타깝다”고 했다.
한창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미래를 꿈꿔야 될 고교생들이 성적 하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 하고 있다. 그들의 꿈이 ‘대학’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 언제까지 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공부에 ‘올인’해 좋은 대학만 고집하게 할 것인가? 좋은 대학에 가는 학생들이야 말로 꿈을 이루는 것이고, 이후의 삶에 대해 만족을 할 수 있을까? 사회, 우리들의 생각부터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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