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내 친구 아름이



생각할 때마다 흐뭇해지는 친구가 있다. 내 친구들은 비록 그 수가 얼마 되진 않지만, 하나하나 제 주관이 뚜렷하여 무엇을 하더라도 어련히 잘 해내겠지 하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대개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머니 마음만큼 흐뭇해진다. 물론 그중에는 슬몃 걱정이 올라오는 친구도 더러 있다. 우아름. 아름이가 내겐 그런 존재였다.
아름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여걸’, 딱 그것이다. 그녀는 깜짝 놀랄 만큼 예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찬찬히 뜯어본다면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여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황소처럼 커다란 눈에 시원하게 높은 콧대나 꼬리를 조금 내린 앙다문 입. 예쁘다기보다는 잘생겼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아이다.
하지만 이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은 대개 소녀다운 해사함이 아니라 기숙사 노처녀 사감만큼이나 앙칼지고 뚱한 것들이다. 평상시 무표정이 약간 뚱한 표정이라 여러모로 손해를 많이 본다. 조금은 큰 얼굴에 골격까지 큰 편이라 뚱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영락없이 화가 난 모양으로 보인다. 다만 아름이는 생각 없이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웃을 때조차도 푸하하하 큰소리로 걸걸하게 웃어젖히니 이건 뭐 여자 장비가 따로 없다. 성격이 시원시원하여 좋을 때가 많다만,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아름이에 대해 시끄럽고 깐깐하고 기가 센 아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연예인 중에 찾아보면 이경실, 그 사람이 아름이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한 느낌이다. 이경실이 텔레비전 속에서 가끔 무표정하게 눈을 치켜뜨고 누군가를 노려볼 때면 아름이 생각이 난다. 친어머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말 비슷하다.
뭐, 첫인상이야 차차 바꾸면 되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많은 아이들이 아름이를 오해하고 친히 지내는 것을 꺼려했지만, 결국 그녀의 곁에 남은 친구들은 아름이의 성격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호탕한 아이. 만나면 만날수록 괜찮은 아이다.
아름이는 장비 같은 아이지만 의외로 소녀다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소녀답게 구는 것이 간지럽다 생각하는 것인지 좀처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고, 놀이공원의 요란한 동물 머리띠 같은 것을 동경하고, 레이디 취급을 받는 다른 여자아이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냥 좋으면 좋다 하면 될 것을 두 번 세 번은 거절하고 나서야 못이기는 척 받아든다. 그래 놓고서는 헤-하고 기분을 숨기질 못한다. 옆에서 보면 참 귀엽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요즘에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다. 아름이와 나. 스물 셋이다, 벌써. 물론 많은 나이는 아니다. 뭣도 모르는 철부지일 뿐이지만, 대학교 내에서는 이미 ‘할머니’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고학번이다. 내 신입생 때도 그랬었던가 싶을 정도로, 동생들이 내뿜는 발랄한 에너지가 감당이 안 될 정도다. 그네들이 풋풋하게 연애도 하고 또 스무 살답게 팔짱을 끼고 캠퍼스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 단 몇 년 사이에 나는 이렇게도 가라앉았나 하고 돌아보게 된다.
아름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아름이 그 아이는 스물 셋이 된 지금까지 모태솔로라는 것이다. 모태솔로. 아름이에게 캠퍼스 커플은, 부러움을 넘어 저주의 대상이다. 그런 아름이의 모습에서 스물셋 꽃다운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도 B사감의 모습이 겹친다. 아, 아름아. 이것은 참말로 문제다.
아름이의 첫 인상은 남자들이 다가오길 꺼려하는 대표적인 여성의 이미지다. 소녀다운 구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기도 엄청 세보여 잘못 걸렸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느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들로서는 엄청 억울하다. 잘생긴 덕에 처음 호감을 보이는 남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간질간질한 상황에 처하면 아름이 맘 속 장비의 자아는 자신을 지키고자 어마어마한 방어체제에 돌입하는 모양이다. 누군가 호감을 보이고, ‘너 예쁘구나!’ 이런 말이라도 할라치면 아름이는 곧 정색을 하고 만다. 그러니 상대방이, ‘어? 나를 싫어하나?’하고 오해를 해버리는 것이다. 그녀와 썸씽이 있던 남자들은 대개 한 달을 채우질 못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난다.
이렇게 대학 삼년을 보냈다. 이제는 그녀의 모습에서 초조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평생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죽는 것 아니냐고. 그녀 스스로 꽁꽁 숨겨놓은 소녀의 자아 역시 많이 지치고 말았다. 가끔씩 툭 튀어나오면 다들 기겁을 해버리니 아름이가 더 깊은 곳으로 숨긴 탓이다. 핑크색 머리띠라도 하는 날에는 “아악, 그게 무슨 짓이야!!!”하는 반응이니 가뜩이나 자신의 소녀성을 간지러워하는 아이가 다음부터 그 머리띠에 손이라도 대겠는가 말이다.



내 생각엔, 그녀가 일단 남자친구를 만들기만 하면은,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것 같았다. 남자친구 앞에서 소녀가 되는 것이야 흉이 될 일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일단 남친을 만들기만 하면 어찌 돼도 될 것 같은데, 아름이 성격을 견뎌 내줄 위인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대로 그 기집애 스스로 알아서 하겠지 하고 기다리다간 노처녀로 늙어죽을지도 모른다. 여자인생 상승곡선, 그 정점에 이르러서도 모태솔로라면 까마득 내리막길인 나중에는 과연…. 내 친구가 정말로 B사감이 되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개팅을 잡았다. 억지로 강요하듯 잡은 것이지만 역시 싫지 않은 눈치다. 이것저것 물어온다. 질문에 답을 해주고, 한 가지 약속을 시킨다. 절대절대절대로 본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완전 폭풍내숭을 떨고 오라고. 알았다고 한다. 영 못미덥지만 어쩌겠는가. 마지막까지 거듭거듭 약속하고 나서도 이 장비 녀석이 소개팅 전선에서 잘 해낼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이것이 친구를 걱정꾸러기로 만들고 있어. 으휴.
소개팅 당일, 두근두근한 기분으로 어땠었는지 물어보았다. 어째 아름이보다 내가 더 설레발이다. 내가 시킨 대로 폭풍내숭의 끝을 보여주고 왔다고 한다. 뭐 먹고 싶냐는 말에 아구찜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파스타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아름이. 요 귀여운 걸 남자들은 왜 모르나 몰라.
아름이를 소개해 준 선배에게 물어봤더니 아름이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고. 아름이는 뭘 좋아하니, 아름이 영화 스타일은 뭐니, 쏟아지는 질문 공세. 너무너무 귀찮지만, 뭔가 흐뭇한 기분이다. 잘 됐으면 좋겠다!
B사감이 아니라, 소녀다운 아름이. 상상이 잘 되진 않지만, 그런 아름이라면 얼굴을 떠올렸을 때 걱정 한 점 없이 흐뭇하기만 할 것 같다. 평생 모태솔로로 늙어죽을 거라며 외로움과 초조함에 푹 절은 김치 같은 모습으로 더는 날 걱정시킬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정말 진짜로, 잘 됐으면 좋겠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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