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자> 경동시장에서 맞이한 봄



아침, 저녁으론 다소 쌀쌀하지만 서서히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익숙하지 않게 부드럽고, 환하게 내리쬐는 햇볕은 익숙하지 않게 따뜻하다. 두꺼운 외투를 벗어야 할 정도다.
곧 있으면 일본에 간다. 첫 해외여행. 때문에 여권을 만들었다. 구청에서 일하시는 작은아빠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신청할 수 있었다. 며칠 뒤, 여권이 나오는 날이다. 구청에 찾아가 작은아빠께서 미리 받아 놓은 여권을 주셨다. 벌써 두근두근(다음호 ‘다은이의 일본 여행기’ 기대하시라~). 작은 아빠께서 사주신 맛있는 부대찌개를 먹었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따뜻하니 낮잠이나 자면서 봄을 즐기기엔 딱 좋은 날이다. 하지만 이렇게 봄을 즐기는 것 말고 또 다르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봄을 아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재래시장이다.



우리가 사는 곳 어디에나 있는 재래시장에 가면 산뜻한 봄나물 냄새와 제철과일의 향기 물씬 풍기는 봄날의 정취를 다른 어느 곳보다 빨리 그리고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봄날의 정취도 느끼고 구경도 하고 봄나물도 살 겸해서 경동시장을 찾았다.
경동시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중의 하나다. 한약재를 파는 약재상들과 한의원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약령시장, 그리고 싱싱한 해산물들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청량리수산물시장, 과일과 야채 등을 파는 청량리청과물시장, 청량리시장 등이 뚜렷한 구분 없이 이웃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내가 일하는 신문사와 집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어 평상시에도 자주 들르는 곳이다. 그 유명한 할머니 냉면과 족발, 닭똥집튀김 등도 바로 이곳에 오면 아주 싼 가격에 실컷 먹을 수 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우리 아빠의 단골 코스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 뿐 아니다. 온갖 먹을거리들과 구경거리들로 가득하다. 말 그대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 전철역 입구를 빠져나오자마자 입이 쩍 벌어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인 수많은 사람들. 시장을 가득 메우고 그도 모자라 인도는 물론 차도까지 점령하고 있는 상인들. ‘구경은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 하겠다’란 걱정부터 앞선다.
용기를 내서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어디에선가 코를 자극해오는 향기…. 향기를 따라 자연스레 발걸음이 옮겨졌다. 봄을 맞아 탱글탱글하게 잘 익은 제철과일들이 향기의 근원지였다. 모과, 오렌지, 딸기, 청포도, 바나나 등. 물감이라도 뿌려놨나?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색깔들이 너무 예쁘다.
워낙 과일을 좋아하는 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따라 유독 나를 유혹하는 과일이 있었으니…바로 딸기다. 수줍은 듯 빨갛게 잘 익은 딸기, 딱 봐도 달고 맛있게 보였다.




장사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우리 집 딸기가 제일 맛있다”며 손님을 끈다. 그 중 마음에 드는 곳에서 4000원을 주고 한 팩을 구입했다. 다음 날 아침식사 시간 엄마가 씻어서 내온 딸기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봄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다음은 나물이다. 나물은 뭐니 뭐니 해도 봄나물이 최고다. 겨울동안 꽁꽁 얼었던 땅이 봄이 되어 서서히 녹으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나물들.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곳 시장에는 봄나물의 으뜸인 달래와 냉이, 쑥은 물론 봄동, 돌나물, 미나리, 시금치, 보리순, 치커리, 햇마늘 등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나물들이 저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그 중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건 돌나물. 꽤 큰 소쿠리 가득 담긴 돌나물이 천원이라니. 돌나물은 밥에다가 초장만 넣고 쓱싹 비벼먹으면 정말 맛있다!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인다.



다음은 시금치다. 시금치를 파는 할머니의 ‘요즘 나오는 시금치가 가장 맛이 달다’는 설명이 없어도 파릇파릇 싱싱한 모양새가 그걸 증명한다. 일명 섬초라고 부르는 데 섬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이겨낸 시금치라고 했다. 한바구니에 천원. 양도 엄청 많았다.
“할머니, 시금치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상관없지~. 내 얼굴만 안 나오면 되지~. 근디 시금치를 찍어서 어디다 쓴다고? 허허허”라는 시원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봄동. 옆으로 쫙 퍼진 보잘 것 없는 모습. 때문에 처음엔 ‘이게 뭐지? 시들시들해 보이네’ 했다. 하지만 어딘가 힘이 느껴졌고, 다음날 아침 엄마의 손을 거쳐 밥상에 올라온 걸 보고서야 ‘아, 이거구나~’하고 알 수 있었다. 바로 겨우내 추운 눈과 바람을 맞으며 자라난 월동배추다. 그래서인지 크기는 작지만 무척 싱싱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향긋하고 단 맛이 입안 가득 채워졌다.



정신없이 나물과 과일도 사고, 사진도 찍고 하다 보니 어느새 두 손엔 보따리가 한가득. 그때 멀리서 들리는 소리 “고구마가 이천원~!!” 고구마를 무척 좋아하는 나. 하지만 겨울엔 껍질을 까기도 힘들 정도로 크기가 작은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아주 토실토실하니 적당한 크기에 때깔도 좋은 저 호박고구마들이 이천원??!!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이미 두 손엔 고구마를 끼워넣을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고구마는 다음에 데려가기로 약속한다.
특히 다음날 아침, 식탁을 가득 채운 봄나물들로 인해 한동안 까칠했던 입맛도 완전히 되돌릴 수 있었다는 사실. 단 한가지 다이어트에 문제가 된다는 점을 빼곤 말이다.




봄이 오고 있다. 들판에선 벌써부터 온갖 생명의 부활 소리가 합창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이곳 경동시장엔 이미 봄이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오감을 만족시키며 봄을 즐길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재래시장 나들이란 생각이다. 오색 찬란 저마다의 예쁜 자태에 눈도 즐겁고, 향긋한 냄새에 코도 즐겁고, 달콤한 맛에 입까지 즐거우니 말이다.
굳이 어디 멀리 봄나들이 갈 생각하지 말고 우리 주변 아주 가까이 있는 재래시장에서 봄을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 특히 봄나물은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나타나는 춘곤증에도 효과적이라고 하니 말이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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