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투입, 청문회 개최 ‘4월 위기설’

부실 저축은행을 휩쓸고 간 ‘뱅크런’(저축인출사태) 회오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금융감독원 등 관련 기관들의 수장이 줄줄이 청문회에 설 전망이다. 정부가 더 이상 문 닫는 저축은행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상반기’라는 한시적인 단서가 붙었다.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가 양산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의 약속이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을 만큼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점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업계에선 청문회가 시작될 경우 분식회계와 허위 공시 등 저축은행 업계에 만연해 있던 문제들이 양파 껍질 벗기듯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2011년 금융권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부실 저축은행 사태 후폭풍을 취재했다.



저축은행 업계가 또 다시 싸늘하게 얼어붙고 있다.

국회는 조만간 부실 저축은행 문제를 다루기 위해 청문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부산 저축은행의 영업 정지 사태 뿐 아니라 다른 곳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 등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실패와 이 과정에서 불법 로비는 없었는지, 누가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더욱이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핵심인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최종 합의가 됨으로써 공적자금 투입은 불가피하게 됐다. 당초 정부, 여당안은 금융권만의 돈으로 10조 원을 조성한다는 이었지만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야당안을 막판 받아들여 절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대출액 73%가 PF"

부실 저축은행에 투입되는 자금은 정부와 예금보험공사가 재원을 함께 마련할 방침이다. 해마다 예금보험료 가운데 45%를 가져오고 여기에 정부 출연금을 5% 더하는 방식으로 기금이 조성될 예정이다.

이처럼 금융권 부실을 정리하는 데 다시 세금이 투입되는 터여서 저축은행에 대한 감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도가 높을 전망이다. 그 동안 문제점을 알고도 고름이 터질 때까지 방관했던 금융당국도 융단 폭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부산 저축은행 등 저축은행들의 방만한 경영 행태를 알고 있었던 감사원도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경태 민주당 의원은 “감사원측으로부터 지난해 저축은행 감사결과에 대한 비공개 브리핑을 받은 결과 지난달 영업 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당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비율이 전체 대출액의 73%에 달하는 등 당시에도 부실 위험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청문회를 통해 각종 사실들이 밝혀질 경우 그 동안 ‘쉬쉬’ 돼 왔던 저축은행 업계의 문제점도 고스란히 수면 위로 드러날 전망이다. 저축은행 업계를 대변하는 저축은행 중앙회 관계자는 <위클리서울>에 “저축은행 부실은 건설경기 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다”며 “그 과정에서 불법은 결코 없었다”고 말했다.

‘대주주 횡포’ 도마에

하지만 정치권과 업계에선 저축은행의 불법, 편법 행위가 관행처럼 이어졌고 이를 묵인한 정부의 실책까지 겹치면서 재앙을 초래했다는 게 중론이다.

조 의원은 이와 관련 “저축은행 사태는 저축은행과 금융당국 등 정부기관의 유착관계가 빚어낸 인재라는 정황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며 “청문회를 통해 이런 부분들이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문회엔 일단 금융당국 책임자들과 저축은행의 대주주들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전광우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저축은행으로 옮긴 금감원 출신들도 저울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공개적인 심판대가 시작될 경우 문제가 될 저축은행의 관행도 여러 가지가 얘기된다. 우선 대출자의 의사에 반해 예금 가입 등을 강요하는 구속성 예금, 이른바 ‘꺾기’가 거론된다. 저축은행 일부에선 최대 30%까지 꺾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대출액의 1%를 초과하는 강제 예금을 ‘꺾기’라고 본다. 시중은행 등에서 대출이 어려울 경우 저축은행으로 발길을 옮기는 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축은행 대출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7등급 이상의 저신용자가 적지 않았다.

개별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도 간과할 수 없다. 많은 경우 지배구조가 취약해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한 저축은행들은 대주주의 횡포가 줄을 이었다. 주용식 저축은행중앙회장도 한 인터뷰에서 “(이런 구조가) 신속한 의사 결정이나 자금지원 면에선 강점이 있는게 사실이지만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며 “불법행위 발견 시 대주주나 경영진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경영인의 독립성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량을 넘어서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체 저축은행 자산 86조9000억원 중 PF 대출은 12조원에 이른다. 이 중 1/4 가량인 3조원 정도가 부실로 평가받는다.

현재 연체중인 PF 대출은 1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어서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지만 언제든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금융권의 PF 대출 연체율은 12.84%로 전년말(6.37%)에 비해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근본적 해결 방법인 부동산 경기가 언제 좋아질지도 예상이 쉽지 않다.

“말로는 서민, 서민 하지만…”

이미 올 들어 쓰러진 7개의 저축은행과 ‘뱅크런’(예금인출) 사태의 주원인도 부동산 침체와 이로 인한 PF 대출이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한 저축은행들의 지난해 말 PF 대출 비중에 따르면 부산솔로몬저축은행(16.90%)과 대영저축은행(16.27%), 현대스위스(14.14%), 솔로몬저축은행(14.03%) 등이 PF 비중이 높은 곳이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 총 352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저축은행 자산규모 1위인 솔로몬 저축은행(565억원)을 비롯 한국(249억원), 부산(222억원) 저축은행 등이 적자를 기록했다. 업계 1위부터 20위 까지 중 적자를 본 곳은 모두 8곳이었다.

때문에 청문회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PF 과정의 불법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불가피하다. 저축은행과 PF를 하는 건설업체의 경우 시중은행과의 거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성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자도 비싸다. PF 진행 과정에서의 정당한 절차와 관리 여부가 핵심 사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 등 영세상인들에겐 철저하고 완벽한 보호장치를 하면서도 대기업엔 허술한 대출을 해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그래야 실적도 오르고 순위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제2의 예금인출사태’ 우려

성과에 치중할 수 없는 풍토에서 ‘분식회계’와 ‘허위공시’도 집중적으로 검토될 사안이다.

업계 상황이 안 좋아지는 가운데 부실로 찍힐 것을 두려워한 저축은행들이 분식회계 등 편법도 저지르고 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금과 같은 불신 상황에선 실적이나 재정 상태가 조금만 안 좋아져도 예금 인출 사태로 이어질 우려가 적지 않다. 때문에 대손충당금을 덜 쌓고 순이익을 많이 내는 방법을 저축은행들이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량 저축은행 기준인 BIS 비율 8%도 저축은행들을 무리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저축은행들이 당장 살아남기 위해 분식회계와 허위 공시를 통해 진실을 숨길 경우 훗날 다가올 재앙은 지금까지의 수준을 훨씬 상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 동안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저축은행 감독에 소홀했던 금융당국도 앞으론 엄격한 잣대를 갖다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연초까지 거세게 불었던 저축은행 사태는 공적자금 투입과 청문회를 개최로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설 전망이다. ‘4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는 업계에서도 “희생이 크겠지만 이 참에 털 고 갈 것은 털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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