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자> 봄이 한창인 청계천 둘러보기-1회






오전 10시 45분. 사무실을 나섰다. 오래된 건물. 4층에 신문사가 있다. 낡고 오래됐지만 그래도 <위클리서울>의 탄생 때부터 함께 해준 고마운 건물이다.
일부 사람들이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계단을 내려가 1층 현관문을 나선다. 자그마한 주차장엔 검은색 SUV차가 서있다. 1층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 앞, 야채를 파는 리어카가 보인다. 살이 튼실하게 오른 무와 배추, 양파 등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리어카가 움직인다. 60대로 보이는 노란 모자를 쓴 아저씨가 리어카를 끈다. 리어카는 골목길로 총총 사라진다.
햇살은 따스하다. 바로 앞 국수집은 한산하다. ‘어려울 땐 비비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조금 지나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줄을 선다. 어려운 때라서 비비고 싶은 탓일 게다.
조그만 골목 사거리를 지난다. 모퉁이, 허름한 포장마차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떡볶이 등 분식을 파는 곳, 또 하나는 토스트를 파는 포장마차다. 기자도 가끔 이용한다. 분식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부부의 얼굴이 밝다. 기분이 좋아진다.
바람이 분다. 차다. 햇살은 여전히 따뜻하다. 큰 도로가 나온다. 우회전하면 청계천 방향이다. 길 건너편은 동대문우체국이다. 뒷마당에 꽃이 피어있다. 목련이다.
대로변 차가 쌩쌩 달린다. 바람을 일으킨다. 햇살은 따뜻하다. 왼쪽으로 서울풍물시장 간판이 서 있다. 만국기가 펄럭인다. 1년 내내 펄럭인다.












11시, 청계천로가 나온다. 다리가 있다. 황학교다. 노란 학이 노니는 다리란 뜻이다. 다리 건너엔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구친 건물이 웅장하다. 몇 년 전, 서민들을 몰아내고 들어선 주상복합 아파트다. 보기만 해도 기가 죽는다. 아래층엔 이마트가 들어서 있다. 버거킹 간판도 보인다.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넌다. 황학교 바로 옆. 청계천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계단이다. 11시 5분. 빙글빙글, 계단을 내려간다.
흰 나비가 지나는 이들을 희롱한다. 녹색의 물이 흐른다. 청계천 탐방의 시작이다. 살곶이 다리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 물가에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도 다투듯 연록의 잎을 내놓고 있다.
다리를 건넌다. 찔레나무 옆 청둥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을 친다. 짝은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5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월척 잉어 세 마리도 물속을 노닌다. 다리 위에선 비둘기 한 쌍이 먹이를 찾는다. 돌하르방 옆 의자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쉬고 계신다. 미동도 않는 모습이 돌하르방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게 만든다.
어린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유치원생들이다. “수연아, 수연이 줄 어딜까? 줄 잘 서야지~” 선생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다. 개나리 핀 울타리 아래 봄 햇살 마중 나온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다. 귀엽다.











11시 20분, 비우당교다. ‘비를 피하는 집’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단다. 학처럼 생긴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한가로이, 외롭게 물속을 거닐고 있다. 긴급보수 트럭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전기차도 지나간다. 청소차다. 모래바람이 또 일어난다.
연록의 풀들이 군락을 이뤄 자란다. 그 위로 다리 기둥 세 개가 서있다. 청계천 복원 전 고가도로를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라고 한다. 복원을 기념하기 위한 거란다. 바로 옆으론 성북천이 이어진다. 정비작업이 한창이다.
흰 나비 한 쌍이 난다. 저 나비는 알까, 청계천의 역사를…. 복원 전 청계천에 깃들여있던 서민들의 애환을…. 물은 흐른다. 오른 쪽으론 왕십리 뉴타운 모델하우스가 서있다. 하늘을 찌른다.
무학교를 지난다. 학이 춤추는 다리다. 산책로에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뒷짐 진 아저씨도, 등산복을 입은 일단의 아주머니들도 보인다. 아주머니들은 얼굴에 자외선 차단 마스크까지 쓴 채 중무장을 하고 있다.
물가에 무언가를 심는 청계천 관리공단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가가서 물어보니 물봉선화란다. 올해 처음 심는 것인데 청계천에서 잘 자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곁들여 진다. 비우당교 옆에서 찍었던 새의 이름을 알아냈다. 왜가리란다.
찔레나무가 흐드러지게 자라고 있다. 11시 40분, 두물다리 근처다. 동화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호박마차가 눈길을 끈다. 두물다리는 남녀의 사랑을 상징하는 다리라고 한다. 청혼의 다리라고도 부른다. 다리 옆엔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는 곳과 연인 끼리 자물쇠를 걸어놓은 곳도 마련돼 있다.










그 먼 옛날, 이곳 청계천 변에 있던 판자촌 집을 재현시켜 놓은 구조물도 보인다. 시커멓게 생긴 게 누추하기보다는 상당히 고풍스러워 보인다. 그 바로 옆 강가엔 버들강아지가 무리지어 폈다.
건너편으론 지천이 보인다. 정릉천이다. 위로 거대한 몸체의 고가도로가 지난다. 오른 쪽은 서울시시설관리공단이다. 지금부터 청계천은 고가도로와 함께 흐른다. 이름 모를 손톱만한 보라색 꽃들이 부는 바람에 떨고 있다. 음지의 담쟁이 넝쿨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바로 건너편 양지의 담쟁이 넝쿨은 한껏 잎들을 내민 채 햇볕 나들이에 바쁘다. 겨울과 봄, 음지와 양지의 극명한 엇갈림의 현장이다.
고산자교가 나온다. 다리에 가려버린 햇빛. 바람이 더욱 차다. 바로 앞에 넓은 공터가 있다. 고산자교 문화광장이다. 누군가 기자를 부른다. 청계천 관리인이란다. 사진을 찍고 무언가를 적는 기자가 이상해 보였는지 무슨 목적으로 왔는가를 물었다. 신문사에서 나왔다고 하니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다. 기본적인 인적사항부터 나온 이유는 무엇이냐 등등 질문이 이어진다. 기자인 내가 오히려 취재를 당하는 기분이다.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느냐고 했더니 위에 보고를 해야 된단다. 얼쑤!
11시 50분. 고산자교 끝자락에 있는 돌로 된 징검다리를 건넌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징검다리 건너엔 찔레나무 군락이 있다. 조금 지나면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날 것이다. 벌써부터 그윽한 찔레꽃 향이 그리워진다. 바로 옆 밑둥이 무참히 잘린 아카시아 나무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종말이다. 왕십리 뉴타운 사업 때문에 쫓겨난 철거민들을 보는 듯하다.







돌아오는 길, 조팝나무 꽃이 하얗게 폈다. 팝콘이 떠오른다. 슬슬 배가 고파진다. 서울풍물시장에 들러 배나 채워야겠다. 나른한 봄날 한낮이다. 다음에는 고산자교 끝자락부터 살곶이 다리 쪽으로 두번째 탐방에 나설 계획이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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