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이의 양평 산골에서의 텃밭 농사일 거들기-2회





어김없이 ‘끌려간’ 양평에서의 토요일 아침이다. 휴일엔 허리가 아플 정도로 늦잠을 자야 되는 내 철칙(?)을 무시하는 듯 눈부신 햇살이 창을 타고 들어와 나를 깨운다. 툭, 탁, 툭, 탁…빗소리도 들린다.
‘조금만 더 자자…ㅠ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시간을 연장해보려고 하지만 결국엔 못 이겨 일어난다. 그래도 꽤 오래 잤는지 몸이 뻐근하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때마침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밭일을 한 것이리라. 언뜻 현관문 사이로 비치는 밖의 모습. 비가 내린다. 분명 토요일 비가 내린다는 나의 주장을 간단하게 무시한 아빠. 결국엔 비를 맞으며 밭일을 했나보다. “방사능 비 맞아도 돼?”라는 내 질문에 “여기는 시골이라 괜찮아”라는 아빠의 다소 억지스러운 답변이 돌아온다.
열어둔 현관문으로 상큼한 농촌의 봄 향기가 스며들어온다. 깊숙이 숨을 들이켠다. 기분이 상큼해진다.





그 사이 엄마는 아침밥을 준비했다. 마당과 밭 주변에 무더기로 자라있는 원추리가 밥상에 올라왔다. 나긋나긋 삶아진 연푸른색 나물에 엄마의 손맛이 더해져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이런 것도 먹는 구나…’ 맛도 괜찮다.
항상 그랬지만 이곳 양평에 내려올 때마다 우리 가족은 나물을 많이 뜯어먹는다. 이른 봄 사방에 지천으로 깔린 달래와 냉이, 돌나물, 돌미나리에서부터 우엉, 머위, 원추리, 두릅 그리고 예전에 심었던 상추와 시금치 등등의 어린 싹까지…. 내려올 때마다 따로 반찬을 살 필요가 없는 말 그대로의 ‘웰빙 밥상’이 마련된다.
그렇게 원추리, 돌나물 등과 함께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씻지도 않은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을 켰다. 비가 와서 밭일도 할 수 없다.





한참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아빠가 부른다. 비가 그쳤으니 잠깐 나와서 내 화단을 정리하자는 것이다. 전에 돌로 대충 쌓아 간신히 구색만 갖춰놓은 나만의 화단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아빠가 돌을 모아왔다. 혹시라도 비가 더 내릴까봐 아빠의 ‘방수점퍼’를 입고 나갔다. 원래 쌓아놨던 허술한 돌멩이를 치우고 큰 돌을 밑에 깐 뒤, 위에 작은 돌멩이들을 얹는 형식으로 ‘대공사’를 진행했다. 어릴 적 했었던 블록쌓기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차곡차곡 쌓다보니 점점 틀을 갖춰가는 화단의 모습. ‘휴~’ 나름대로 그럴싸한 모양의 화단이 완성됐다. 이제 화단 안의 잡초를 뽑을 차례. 엄마까지 가세해 도와줬다. 한참을 쭈그려 앉아 ‘화단 보수공사’에 몰두했다.
아, 잡초를 뽑던 중 잡초 사이에 꽁꽁 숨어 있던 친구를 만났다. 바로 달팽이다. 처음엔 큰 달팽이 다음엔 조금 작은, 그리고 더 작은 달팽이…이렇게 3마리.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지만 털 알레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처지. 그래 털도 없고 깨끗하고 귀엽기까지 한 달팽이를 키워보자.





집안으로 냉큼 들어가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된 조그마한 상자를 들고 나왔다. 새로운 환경이 낯설지 않게 달팽이가 있던 곳의 잡초를 뜯어 상자바닥에 깔아주었다.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뚜껑을 닫아 놨다. 아빠가 달팽이들 숨 막혀 죽는다며 뚜껑에 구멍을 슝슝 뚫어줬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달팽이들은 금방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졌는지 변도 보고, 구석구석 자리를 찾아 잠이 들었다.
다시 비가 내린다. 오늘은 서울에서 큰집 식구들이 오는 날이다. 어차피 밭일은 포기한 뒤 큰집 식구들 마중도 할 겸, 용문에서 오일마다 열리는 용문오일장도 둘러 볼 겸 용문면에 가자는 아빠. 귀찮다. 끝까지 안 가겠다는 나를 결국엔 차에 태워 출발…. “비 오는 데 무슨 장이 열려?ㅜㅜ” 투덜대다 잠시 뒤 잠속으로 풍덩.
눈을 떠보니 용문역 앞. 용문역은 서울에서 오는 중앙선 전철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지난해 아빠 엄마와 이곳으로 걷기여행을 온 기억이 새롭다.
엄청나게 비가 쏟아진다. 역시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탓에 용문장이 열리지 않았다는 아빠의 얘기.
“내 말이 맞잖아! 귀찮게 데리고 와가지고 이게 모야 ㅜㅜ.”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차 밖으로 나가는 아빠, 그 뒤를 따르는 엄마. 용문역 바로 앞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로 간다. 포장마차 앞에 “막걸리 한잔에 1000원!”이란 글귀가 붙어있다. 우산을 쓴 채 길거리에 서서 1000원짜리 막걸리 한잔을 맛있게도 마시는 아빠, 어묵튀김을 먹는 엄마…대단한 엄마와 아빠다. 그런데 분명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인데 막걸리를 팔아도 되는 거야? 자세히 보니 이곳 포장마차에선 두릅 등 인근 산에서 채취한 나물도 팔고 있다. 없는 게 없는 포장마차.
그러는 사이 큰엄마와 사촌동생 수빈이가 도착했다. 큰아빠는 일이 있으셔서 나중에 승용차 편으로 오신단다. 양평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텔레비전을 켰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양옆에 수빈이와 큰엄마가 있다는 것. 텔레비전을 보는데 문뜩 수빈이와 치킨이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의기투합. 어른들을 조른다. 결국 승낙. 이곳저곳 치킨 집을 수소문해 전화를 건다. 그런데 이게 뭔일? 이곳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 배달을 해주겠다는 치킨 집이 없다.
결국 마침 장을 보러 읍내에 나가는 길에 사오겠다는 엄마와 아빠. 나와 수빈이는 집에 남고 아빠, 엄마, 큰엄마는 장을 보러 양평읍내에 나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치킨. 수빈이와 나는 “치킨이 늦네…”를 연달아 외치며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드디어 도착. 아빠의 손에 들려있는 두 상자의 치킨. 냉큼 상을 차리고 먹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치킨을 먹어치웠다. ‘역시 비오는 날엔 치킨이야’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치킨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큰아빠가 오셨다. 아빠는 옆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까지 불러 거실에서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치킨으로 배를 채운 수빈이와 나는 삼겹살은 손도 대지 못하고 텔레비전만 보다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 날. 수빈이와 큰아빠는 아빠에게 이끌려 아침 일찍 뒷산에 다녀왔다고 했다. 늦게 일어난 나는 비몽사몽 상태로 씻고 밥상 앞에 앉았다. 밥을 먹는 도중에도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산에 갔다 온 아빠, 큰아빠, 수빈이는 입맛이 나는지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밥을 다 먹은 뒤 아빠와 엄마, 큰아빠와 큰엄마는 전날 사온 각종 씨앗을 들고 밭으로, 나와 수빈이는 꽃씨를 들고 전날 작업해뒀던 화단으로 갔다. 수빈이와 함께 꽃씨를 심을 생각이다. 처음에 나오기 싫다던 수빈이는 내가 하는 게 재밌어 보였던지 어느새 장갑을 끼고 옆에 와 쭈그려 앉는다. 아빠와 큰아빠가 흙을 퍼 와서 화단을 높게 북돋아주었다. 골고루 흙을 잘 편 다음 우린 그 위에 허브 모종 세 송이와 접시꽃, 봉선화, 금낭화 씨앗 등을 심었다. 심고 나서 보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화단이 완성된 뒤 큰집 식구들이 먼저 서울로 올라갔다. 수빈이가 다음 날 학교에서 수련회를 간단다. 올라가 준비를 해야 된다니 서둘러 갔다. 슬슬 우리도 갈 준비를 했다.




아니 그런데, 아빠가 옆집아저씨와 또 술을 마시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며칠 뒤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쉬운 마음에 조금 더 회포를 풀려는 것이다. 빨리 서울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툴툴 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해하려고 했다.
이번엔 내려와서 화단을 완성하고 올라가 무언가 이뤄놓고 간다는 뿌듯한 느낌이 든다. 다음 주면 싹이 나고, 좀 더 따뜻해지면 예쁜 꽃이 피겠지? 하지만 다음에 또 내려올 생각을 하면…에휴~.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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