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이의 양평 산골에서의 텃밭 농사일 거들기 4회







오늘따라 짐을 싸는데 기분이 좋다. 양평을 가기 위한 짐인데도 말이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기분이 좋다. 콧노래도 절로 나오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내가 득도라도 한 것일까.^^
양평에 가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릴 겸 도구들을 챙겼다. 그런 내가 보기 좋았는지 아빠도 들떠있는 모습이다. 아, 내 룸메이트! 6년씩이나 나와 함께 생활하고 함께 잠도 자는 커다란 판다곰 인형도 챙긴다. 판다곰은 나보다도 덩치가 더 크다. 워낙 판다곰을 좋아해서 아빠가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빠 “하여간 8차원이라니까”라며 웃는다. 이번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출바알!! 항상 엄마는 운전석, 아빠는 조수석, 뒷자리는 모두 내 차지다. 오늘은 옆에 판다곰이 앉긴 했지만.^^
창문을 완전히 내리고 따뜻한 바람을 한껏 맞아본다. 정말 겨울엔 ‘칼바람’이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였는데 이젠 ‘머시멜로우’ 같은 바람이 얼굴을 간질인다.(나만의 표현^^) 뭔가 달콤하면서도 포근하고 부드러운…. 머시멜로우, 딱 정확한 표현이다.





금요일 다소 이른 오후여서 그런지 도로도 전혀 막히지 않는다. 부는 바람을 한껏 즐기면서 이어폰을 꽂는다. 보통 때 같으면 거의 실신 수준으로 잠을 자며 갔을 텐데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엔 잠자는 시간조차 아깝다.
차는 내부순환도로를 거쳐 태릉, 구리시, 남양주시 덕소 등지를 지난다. 오른편으로 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얼마 전 내린 비 때문인지 물 색깔이 어둡다. 흙탕물이다. 4대강 사업 때문에 보가 무너지는 등 문제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데 이 역시 그 때문은 아닐까.
쉴 때는 쉬자.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른다. 팔당터널이 나온다. 창문을 올린다. 모두 4-5개의 터널을 지난다. 갑자기 시야가 트인다.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가 있는 조안면이다. 다시 창문을 내린다. 아까보다 더 싱그러운 기운이 차안으로 밀려들어온다. 터널 몇 개 지났을 뿐인데 공기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기분 좋다. 여전히 입에선 노래가 나온다. 양수리, 두물머리를 지난다. 가끔 들르는 곳이다. 화단에 심은 허브도 이곳에서 산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 노래와 풍경감상에 빠져 있다가 결국은 잠 속으로….==;





눈을 뜨니 양평 읍내 마트다. 3일간 먹을거리 몇 가지를 산다. 그리고 산골 집으로 고고!! 5분여 뒤 집 마당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만의 화단 확인 작업부터 들어간다. 와! 드디어 지난주보다 눈에 띌 정도로 싹이 많이 자랐다. 다는 아니지만 봉선화와 과꽃도 꽤나 올라왔다. 또 한쪽에 심어놓은 허브 세 송이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파리 하나를 뜯어 코에 대보니 향긋한 냄새가 온몸으로 퍼진다. 이제 키우는 재미 좀 생기는 것 같다.^^
엄마, 아빠를 도와 차에 실린 짐을 옮긴다. 집 안으로 들어가 팔 걷고 청소기도 돌린다. 열심히 청소한 뒤에는 즐겨보는 음악프로 속으로 풍덩. 헌데 아빠가 자꾸 부른다. “아빠 배고프다~ 그거 언제 끝나니?” 오늘은 주방장이 되는 날! 직접 특별식 해물스파게티를 만들기로 했다. 양평읍내에서 새우, 오징어, 스파게티면 등 재료들도 사왔다.
음악프로가 끝난 뒤 나만의 음식 만들기에 도전!! 앞치마까지 입고 재료부터 다듬기 시작했다. 오징어와 새우를 깨끗이 씻어 손질하고, 야채도 씻어서 먹기 좋게 잘랐다. 면을 삶는 동안 야채와 해물을 볶고, 다 삶은 면을 소스와 함께 볶은 야채에 부었다. 약한 불에서 좀 더 볶아주면 끝.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어라? 그런데 그 사이 아빠가 행방불명되셨다. 집안과 텃밭 이곳저곳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전화를 건다. 세상에나∼!! 그새를 못 참고 윗집에 올라가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계신단다. 윗집엔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신다. 텃밭에 나가 일을 하던 중 때마침 만난 할아버지와 의기투합, 할머니가 직접 담그신 막걸리를 먹기로 했고 바로 고고! 하신 것이다.






스파게티가 완성됐으니 빨리 내려오라는 말에 아빠 한술 더 뜨신다. 싸갖고 올라오라는 것이다. 할 수 없지…. 엄마가 스파게티를 그릇에 담아 올라가셨다.
한참 뒤 내려오신 아빠. “야, 우리 다은셰프 스파게티 요리사 해도 되겠던데….” 뒤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아주 맛나게 드셨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뿌듯했다. 다음엔 다른 요리도 도전해봐야지! 설거지까지 기분 좋게 마무리를 했다.
청소에 요리에 빨래까지. 온몸이 나른해진다. 잠시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잠 속으로 풍덩!
아침. 지난 밤 꿈을 꿨다. 많이 잤는데도 피곤하다.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벌써 10시다.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마당 잔디밭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있다. 그런 아빠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전에 마당가에 뿌렸던 코스모스의 싹이 텄기 때문이란다. 아빠가 꽃 중에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 집에 들어오는 길가와 마당가에 코스모스 씨를 잔뜩 뿌려놓았다. 이제 조금 지나면 도로가에 무더기로 피어난 코스모스 군락처럼 화사하게 피어나 가냘픈 몸을 흔들며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을 것이다. 관상용으론 인기 만점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밭에 나갔다. 2주전 심은 감자의 싹이 드디어 비닐 구멍 사이로 쑥쑥 올라왔다. 성장이 엄청 빠르다. 한 주 늦게 심은 참외 모종은 좀 시들해 보인다. 혹여나 이대로 시들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오늘은 내가 가장 원했던 고구마를 심는 날이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뒤 읍내에 나갈 계획. 고구마 모종과, 고추모종, 고추모종 지지대 등을 사기 위함이다. 피곤해서 집에 그냥 있겠다고 우겼다. 끌려갔다. 하지만 읍내에 나오자마자 눈에 띄는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삶은 옥수수. 아빠를 졸라 사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읍내 종묘상에는 한창 밭농사를 시작할 때여서인지 모종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린 피망, 고추, 고구마 모종 등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엄마와 아빠는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나는 좀 더 쉬다가 팻말 만들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초보 농사꾼인데다 워낙 많은 종류의 씨앗과 모종들을 심어놓다 보니 이름을 붙여놓지 않고서는 뭐가 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미리 직사각형으로 잘라놓은 나무판자에 집에서 가져온 유성매직으로 또박또박 이름을 썼다. ‘상추’ ‘비타민채’ ‘고추’ 등등. 나무기둥까지 만들어 텃밭에 모두 박아놓으니 꽤 그럴싸해보였다. 이렇게 밭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하루가 빠르게 저물었다.






다음날 아침, 몸이 안 좋다. 우선은 씻고 보자. 샤워를 한 뒤 방에 누웠다. 밥 생각이 없다. 앉아있을 힘도 없다. 엄마의 고기유혹, 과일유혹에도 끌리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나는 음식 한 가지. 바로 짬뽕이다. 워낙 산골이라 달랑 짬뽕 한 그릇 시키기는 미안하다며 아빠의 해물자장면까지 가세했다. 그나마 좀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마당으로 나섰다. 남은 풀들을 뽑고 잔디가 파인 부분에 다른 곳의 잔디에 열린 씨를 따서 심자는 아빠의 제안. 몸이 정상은 아니었지만 아빠의 일을 돕기로 했다. 잔디마다 조그맣고 까만색의 씨앗들이 달려있다. 손톱을 이용해 주욱 긁으면 손바닥 안에 모이는 씨들. 잔디가 손상돼 드러난 흙 위에 뿌려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 어렵진 않았다. 그래도 날씨가 더워져서인지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이제 서울에 갈 시간이다. 전날 심은 고구마 모종은 아직까지도 힘이 없다. 저러다가 참외모종과 함께 시들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다. 다음 주에 와서 바로 확인해 봐야겠다. 고추와 다른 채소들은 제철을 만난 듯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꽃이 피었던 딸기모종엔 새빨간 열매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직 좀 작긴 하지만 조만간 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차음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요즘이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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